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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잘쓰는헤찌 Dec 03. 2021

아버지의 그늘

가정폭력

“잘못했단 말 한마디만 해!”

성운은 쓰고 있던 안경을 거칠게 벗어던지고 냅다 소리를 지른다. 목이 졸린 채로 켁켁대던 아버지는 선생님이 달려가고 나서야 성운의 무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성운의 흐린 시야 너머로 선생님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분명 목을 감싸던 아버지가 바닥에 있었는데, 어린 후배가 목을 감싸고 있다. 그 후배는 두 무릎을 가슴 쪽으로 한껏 끌어올린 다음에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

“무슨 일이 있었어?”

성운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흰 벽에는 길게 이어진 선 하나가 내려와서 벽을 갈라놓고 있다. 단절이란 저런 것일까.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단절은 얼마나 나의 숨을 갈아먹는 것일까.

 

멍하니 있던 성운이 조용히 입술을 뗀다.

“선생님은 죽음의 공포를 느껴본 적이 있어요?”

“어?”

“같이 있으면 숨 막힐 것 같은데, 나를 숨막히게 했던 아버지가 진짜로 내 목을 졸랐을 때 공포스러웠어요.”

성운은 여전히 허공을 멍하니 바라본 채 이야기를 이어간다.

“내 목을 조르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어요. 얼른 돈 벌어서 독립하면 되니까. 그런데 엄마가 죽었어요. 아빠는 매일 취해있었고, 술만 마시면 엄마를 때렸어요. 술 취한 아빠한테 맞던 엄마가 집에서 쓰러졌어요. 그러고는 영원히 못 일어났어요.”

“아까 후배한텐 왜 그랬어?”

“아빠가 엄마를 죽인 날, 엄마가 방귀를 꼈어요. 아빠는 술맛 떨어지게 밥상머리에서 방귀를 끼냐고 했고 엄마는 나오는 걸 어쩌냐며 싸움이 시작됐어요. 처음에는 옷걸이로 엄마를 따라다니며 때리다가 나중엔 머리채를 잡고 바닥에 내려쳤어요. 그리고 엄마의 큰 키가 고꾸라지더니 그대로 가셨어요.”

“그게 아까 걔랑 무슨 상관인데?”

“아까 걔가 방귀를 꼈을 때 제가 예의 좀 지키라고 인상을 썼더니 걔가 나오는 걸 어쩌냐고 그랬어요. 그날이 생각났어요. 제가 어쩔 수 없이 아빠를 닮았나봐요. 피는 못 속이나 봐요. 후배가 미안하다고 제대로 인사 안하는 것에 분노한 것인데… "

성운의 시선이 벽을 타고 주륵 내려오더니 이내 발끝에 머문다. 내 눈빛도 그 발끝을 따라간다. 성운의 오래된 양말은 천이 헤져서 군데군데 실이 늘어져 있고, 성운의 앙상한 엄지발가락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동동 떠 있다. 그 동동 떠 있던 엄지발가락이 이내 바닥에 내려오더니 성운이 말을 이어간다.

“부검의는 병사래요. 맞아서 죽었는데, 심혈관계 질환으로 추측되는 병사래요. 엄마가 이제 45살인데 말이 돼요? 엄마 사망신고를 하고, 가족관계증명서를 뗐어요. 근데요,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남겨진 동생만 불쌍하지, 부모님이 불쌍하진 않았어요. 엄마는 맞으면 제게 화풀이했거든요. 엄마가 맞는데 말리지 않고 보고만 있다고 엄마는 나를 또 때리셨어요. 눈물도 나지 않았고, 그냥 아무 느낌이 안 났어요.”

성운의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눈이 시뻘겋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독립을 하고도 아버지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는 폭력피해자로서의 지속적인 상담과 지원 아래 편안함을 차츰 찾아갔다.

폭력은 차츰 숨을 갉아먹는다. 영혼을 갈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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