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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잘쓰는헤찌 Nov 12. 2021

독서의 본질

독서란 무엇일까

넓은 운동장에 내가 덩그러니 있다.
굵직한 등나무는 따가운 햇살에 그늘을 만들어주고,
그 곁에는 내가 덩그러니 있다.
 
친구의 판화수업은 2시간 뒤에 끝난다.
오늘은 친구랑 만나게 되면 god 노래를 개사할 것이다.
오빠들 노래를 크게 틀어놓은 뒤 하나하나 가사를 다듬어서 놀 것이다.
 
나는 따끈하게 데워진 등나무 기둥에 살며시 기대어본다.
그리고는 빳빳한 책을 한 권 꺼내든다.
내가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동안은 곧잘 책을 읽었다.
파란 하늘 속에 둥둥 떠있는 구름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며 살금살금 움직이는 동안 나는 책을 읽었다.
친구를 기다릴 때면 가장 시간이 잘 가는 방법 중 하나가 책읽기였다.
이 날의 책은 신간 코너에서 가져온 것 중 하나이다.
책장을 한 장 넘기면 작가의 경험을 어렴풋이 알게 되고,
또 한장 넘기게 되면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그렇게 한 장씩 넘기다보면 다음 내용이 예측되고,
작가의 세계에 완전하게 젖어들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된다.
 
툭툭-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친구가 내 팔뚝을 치고 나서야
독서와의 끈을 놓게 된다.
독서는 친구들이 전부 학원을 가고,
나 혼자 있게 되면 내가 선택한 ‘시간보내기’ 방법이었다.
 
학원 대신 책 읽으며 기다렸던 게 계기가 되었을까.
나는 20년 전의 내게 책읽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나와 같은 꼬맹이들에게 책읽기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
 
독서의 목적에는 첫째 학업을 위한 독서, 둘째 여가를 위한 독서,
셋째 교양 목적, 넷째 문제해결, 다섯째 대인관계 목적이 있으며
독서의 본질은 독서의 본질이나 글의 가치 등을 고려하여 좋은 글을 선택해야 한다.
또한 동일한 화제의 글이라도 서로 다른 관점과 형식으로
표현됨을 이해하고 다양한 글을 주제통합적으로 읽어야 한다.
 
라고 말이다.
그렇다.
책 읽기와 관련된 독서 지문을 암기시키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날 한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최근에 재밌게 읽은 책은 뭐예요?”
바로 생각나지 않았다.
최근에 읽은 책이라…
의사소통을 위한 국어교육론? 작문 교육론?
 
아이들에게 수업시간엔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정작 담당교사인 나는 안 했다.
동아리 시간엔 책 읽을 시간을 주면서 

나는 그 시간에 행정공문을 처리하고 멍 때리기 바빴다.
“책을 읽어야겠어"
결심이 섰다.
처음은 매일 퇴근 후에 도서관에 가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나약했던가.
한 2주 하니까 이것 또한 의무감이 되어 독서가 즐겁지 않았다.
나는 목적이 없는 독서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밀리의 서재 1년 치를 결제했다.
언제든지 휴대전화로 읽을 수 있고, 

한번에 십만원을 결제하니 포기하지도 않게 되었다.
출퇴근 시간에는 오디오북으로 들을 수 있었고, 

작가의 간접 경험을 통하여 강의나 글쓰기에 활용하기에 좋았다.
그러나 신상 책들의 업로드가 늦다는 점에서는 

얼리어답터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였다.
다시 독서를 시작했을 때는 업무에서 벗어나 진짜 목적없는 책읽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도서관 투어와 밀리의 서재 읽기를 병행했다.
내가 그날 하고 싶은 방법으로 책읽기를 하면 됐었다.
어느날은 도서관에 가고 어느날은 편하게 누워서 밀리의 서재를 읽었다.
주말 어느날은 북카페에 가서 쇼파에 찹살떡처럼 녹아내려 책을 읽었다.
 
내가 가장 크게 얻은 건 정서적안정이었다.
소망이 우수수 떨어지는 날, 딸에게 주는 레시피처럼 책에게서 사랑받는 느낌이 들었다.
서늘한 바람이 피부를 얼려버리는 초겨울, 포근한 독서로 마음을 녹여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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