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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잘쓰는헤찌 Dec 13. 2021

학교 앞 문방구

문구점의 추억

1.
라면땅 200원, 쫀드기 100원
버스가 오기까지 15분
기다리는 애들은 2명.

 2.
산타할아버지,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H.O.T. 오빠들 카드 받게 해주세요.

카운터 왼쪽에 있는 강타오빠 카드 받게 해주세요.

3.
요즘은 문구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니, 내가 못 찾는 건가?


나는 피아노학원, 은영이는 미술학원. 원우는 태권도 학원. 사실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학원을 다니고 싶어서 다니는 게 아니라 학교가 너무 멀다. 걸어서 35분이다. 초등학생한텐 엄청 멀다.

종례를 마치고 바로 후문으로 나와서 문구점 앞에 기다리면 30분 뒤에 학원 버스가 온다.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어서 우리는 꼭 문방구에 들린다. 왜냐하면 피아노 연습은 꽤 힘이 든다. 선생님이 자꾸 손가락을 계란 쥐듯이 하라고 하신다. 그런데 나는 손이 작고 건반은 크다. 한 음계를 건너서 쳐야하는 모차르트 책은 정말 미치겠다. 이 에너지를 쓰려면 라면땅은 필수다. 생라면에 스프를 솔솔 뿌려서 또각- 하고 부셔주는 라면은 진짜 맛있다. 가끔 아주머니가 큰 조각을 주시면 세상 행운이 다 나에게로 온 것 같다. 문방구는 내게 다음 전투를 대비하기 위한 에너지충전소다.
1999년 5월 어느날.

 

사촌언니네서 본 H.O.T. 오빠들이 정말 멋있다. 나는 그중에서 강타오빠가 제일 잘 생긴 것 같다. 거기다가 노래도 잘 한다. 강타오빠의 사진을 머리맡에 두고 자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25일 전이다. 산타할아버지께 빌어본다.

문구점 왼쪽에 있는 강타오빠 카드를 정말 갖고 싶어요.

강타오빠가 이글거리는 눈빛을 내뿜으며 손을 펼치는 사진. 그 멋있는 사진을 가지면 엄마 말도 잘 들을 거고, 아빠 다리도 주물러드릴 거다.

동생이랑 싸우지도 않을테야.

문방구는 내게 희망의 공간이자 사랑스러운 곳이다.
1999년 12월 어느날.

 

6공 다이어리 속지를 사고 싶은데, 문구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학교 바로 앞의 문구점에는 EBS 교재만 팔 것 같다. 그마저도 아이들 등교시간 및 하교시간 외엔 잘 운영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꽉 찬 공간에서는 쇼핑하고 싶지 않다. 나는 한 명인데 아이들은 수십 명이라 애들 질문에 모두 대답하기가 버겁다.

 내 시간을 갖고 천천히,

2022년을 위한 쇼핑을 하고 싶다.

작년까진 교보문고에 가서 다이어리를 사곤 했는데, 여수엔 큰 서점이 안 보인다.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집 앞의 문구점에 가본다.

 다이어리 속지는 따로 팔지 않는다고 한다.

매대에는 티비만화 캐릭터로 추측되는 캐릭터 카드가 진열되어 있다.

흐엑, 3천원이다. 초등학생이 3천원을 어떻게 써?

그 외엔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라인캐릭터로 색칠된 문구류가 있다. 캐릭터값이 상전이다.

그래도 아이들을 위한 문구점은 있네.

성인을 위한 문구점은 어디에 있을까
2021년 12월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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