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라면땅 200원, 쫀드기 100원
버스가 오기까지 15분
기다리는 애들은 2명.
2.
산타할아버지,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H.O.T. 오빠들 카드 받게 해주세요.
카운터 왼쪽에 있는 강타오빠 카드 받게 해주세요.
3.
요즘은 문구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니, 내가 못 찾는 건가?
나는 피아노학원, 은영이는 미술학원. 원우는 태권도 학원. 사실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학원을 다니고 싶어서 다니는 게 아니라 학교가 너무 멀다. 걸어서 35분이다. 초등학생한텐 엄청 멀다.
종례를 마치고 바로 후문으로 나와서 문구점 앞에 기다리면 30분 뒤에 학원 버스가 온다.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어서 우리는 꼭 문방구에 들린다. 왜냐하면 피아노 연습은 꽤 힘이 든다. 선생님이 자꾸 손가락을 계란 쥐듯이 하라고 하신다. 그런데 나는 손이 작고 건반은 크다. 한 음계를 건너서 쳐야하는 모차르트 책은 정말 미치겠다. 이 에너지를 쓰려면 라면땅은 필수다. 생라면에 스프를 솔솔 뿌려서 또각- 하고 부셔주는 라면은 진짜 맛있다. 가끔 아주머니가 큰 조각을 주시면 세상 행운이 다 나에게로 온 것 같다. 문방구는 내게 다음 전투를 대비하기 위한 에너지충전소다.
1999년 5월 어느날.
사촌언니네서 본 H.O.T. 오빠들이 정말 멋있다. 나는 그중에서 강타오빠가 제일 잘 생긴 것 같다. 거기다가 노래도 잘 한다. 강타오빠의 사진을 머리맡에 두고 자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25일 전이다. 산타할아버지께 빌어본다.
문구점 왼쪽에 있는 강타오빠 카드를 정말 갖고 싶어요.
강타오빠가 이글거리는 눈빛을 내뿜으며 손을 펼치는 사진. 그 멋있는 사진을 가지면 엄마 말도 잘 들을 거고, 아빠 다리도 주물러드릴 거다.
동생이랑 싸우지도 않을테야.
문방구는 내게 희망의 공간이자 사랑스러운 곳이다.
1999년 12월 어느날.
6공 다이어리 속지를 사고 싶은데, 문구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학교 바로 앞의 문구점에는 EBS 교재만 팔 것 같다. 그마저도 아이들 등교시간 및 하교시간 외엔 잘 운영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꽉 찬 공간에서는 쇼핑하고 싶지 않다. 나는 한 명인데 아이들은 수십 명이라 애들 질문에 모두 대답하기가 버겁다.
내 시간을 갖고 천천히,
2022년을 위한 쇼핑을 하고 싶다.
작년까진 교보문고에 가서 다이어리를 사곤 했는데, 여수엔 큰 서점이 안 보인다.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집 앞의 문구점에 가본다.
다이어리 속지는 따로 팔지 않는다고 한다.
매대에는 티비만화 캐릭터로 추측되는 캐릭터 카드가 진열되어 있다.
흐엑, 3천원이다. 초등학생이 3천원을 어떻게 써?
그 외엔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라인캐릭터로 색칠된 문구류가 있다. 캐릭터값이 상전이다.
그래도 아이들을 위한 문구점은 있네.
성인을 위한 문구점은 어디에 있을까
2021년 12월 어느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