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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잘쓰는헤찌 Jan 09. 2022

정리의 뫼비우스

정리의 습관

“2시간에 45만원이더라고요.

직원 열명 정도가 와서

정리를 해줬어요.


 그분들의 인건비라 생각하면

적절한 금액이긴 한데,

그래도 비쌌어요.”

지역 맘카페에 달린 댓글이었다.

‘공간정리 서비스’를 부르고

지불했다는 금액이다.


2시간이면 보통 방 2개 정도가

가능하다고 한다.

지역 맘카페, 블로그를 기반으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이 분은

‘결국엔 정리가 답이다'

라는 슬로건을 걸고 있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

카톡을 보내본다.

[안녕하세요. 블라블라. 정리왕님의 사무실에서 10분 거리에 살고 있습니다. 블라블라. 저도 정리왕님과 같은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블라블라. 제가 아직 취업준비생이라 직원 두 세분 정도만 오셔서 제 방 하나만 해주실 수 있을까요? 시간도 1시간만, 죄송하지만 금액도 25만원으로….]

결과적으로는 읽씹을 당했다.

 간혹 홍보차 무료로 정리를

해주시기도 하셨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제안해 보았다.

그 당시의 나는 수입이 없어서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만큼 정리는 어릴 적부터

내게 영원한 숙제였다.

그러나 정리를 못하는 사람도 규칙은 있다고 한다. 나도 내 나름의 규칙은 있었다. 내 방의 문을 열면 키가 큰 책장이 보인다. 책장에는 각종 자기계발서부터 시작하여 어마어마한 양의 전공 서적, 그리고 몸과 관련된 해부학이나 생리학 서적이 있다. 그들은 미처 토해내지 못한 만복상태와 같았다. 그득그득 차 있었다. 책장 바로 옆에는 슈퍼싱글 침대가 있다. 책을 읽으면서 잠들기 위한 나의 설계였다. 그 침대 밑에는 나의 무게와 세월의 무게를 견디는 서랍형 프레임이 있다. 내가 그동안 써왔던 일기와 이벤트로 사용하는 가발 등이 있다. 나는 그러한 추억들을 버리지 못하여 매일을 그 추억들 위에서 잠들었다.

방 발코니는 어떤가. 웅장하게 큰 클래식피아노가 있다. 피아노가 있어서 다른 물건은 놓을 수 없다. 그러나 발코니는 바깥의 온도를 그대로 머금는 공간이었다. 연주하는 횟수보다 방치하는 기간이 더 길었다.

내 방에 결국 자리잡지 못한 책상, 화장대, 옷장은 거실과 안방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외출을 한번 하려면 32평 아파트를 다 돌아다녀야 했다. 남동생 방만 빼고 내 물건은 집안 전체에 널부러져있었다.

정리 못하는 습관은 비단 물건 뿐만 아니었다. 작은 엄나는 나를 바라보며 은근히 우리가족을 비꼬았다. 그러나 나는 상황을 정리하지 못했다. ‘그래도 친척 어른이니까’라는 생각에 웃으며 회피하기 바빴다. 그리고 바람핀 걸 들킨 남자친구에게는 화만 낼 뿐, 끝내는 정리하지 못했다. 남은 애정에 바로 정리하지 못했다. 또한 몇 년 째 만남을 이유없이 미루는 친구에게는 ‘그래도 우린 친구니까'가 되었다. 그뿐이겠는가. 이중 약속이 잡히면 음식을 버리지 못하여 두 끼를 꾸역꾸역 먹었다.

정리는 늘 하고 싶었고, 정리는 늘 딜레마처럼 내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일말의 망설임이 늘 나를 머무르게 하였다.

그러다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한 5,6년 전부터는 상황을 바꿔보고 싶었다. 별 계획을 한 건 아니었다. 나는 계획적인 사람이 못 되었고, 일단 부딪혀보는 사람이니까 우선 행동부터 하였다.

그냥 헬스장을 등록했다. 오랜 수험생 생활로 82kg가 되었다. 등록한 김에 운동을 해보고 싶어서 보디빌딩 선수가 되겠다고 말했다. 트레이너마저 처음엔 비웃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루었고, 내 몸이 정리되니 느낌이 참 상큼헀다.

그냥 수영장을 등록했다. 어릴 적, 해수욕장 파도에서 쓸려간 뒤로는 마시는 물도 목욕탕도 싫었다. 등록한 김에 끝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마스터즈 수영반, 다이빙 자격증까지 갔다. 바닥에 발 떼는 게 무서웠다. 남아서 강사님 손잡고 유아풀을 돌았던 때를 생각하면 참 귀엽다. 트라우마가 정리되니 용기가 생겼다.

그냥 재회플랜을 결제했다. 150만원씩 두번, 300만원이었다. 바람 핀 놈이랑 잘해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내가 정리하는 방법을 모르겠으니 복수하고 버리고 싶었다. 남은 애정을 정리해버리니 그 친구가 매달렸다. 그 모습은 아직도 우습다.

갑자기 정리 욕구가 샘솟고 5,6이 흐른 지금. 내 방은 계속 정리가 되고 있다. 정리의 세계는 무궁무진해서 끊임없이 배워야하고 실천해야 하며 깨달아야 한다. 그를 전문화하기 위하여 신랑과 함께 ‘정리수납전문가 1급’ 강의를 수료하고 있다.

도서 ‘청소력'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다.

[현재, 과거, 미래의 시점으로부터 당신이 새롭게 태어나려 하는 것을 방해하는 마이너스 에너지를 제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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