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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잘쓰는헤찌 Feb 21. 2022

순환되지 못한 차가움

시원함 그리고 차가움

주먹만 한 크기가 세차게 움직인다. 두꺼운 근육으로 되어 있는 이것의 내부는 2개, 또 2개로 구성되어 있다. 혈액은 끊임없이 들어온다. 그리고 끊임없이 튕겨서 나간다. 자전거 바퀴에 공기를 넣는 펌프처럼, 혈액은 공기가 되어 온몸으로 이동한다. 제 갈 길을 가던 혈액이 갑자기 멈춘다. 이동에 장애가 발생했다. 아 또 시리네-

“현재까지 정확하게 밝혀진 원인은 없습니다.”
‘원인이 없는 결과가 있나?‘
궁금증을 안고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온다. 추위에 노출된 피부조직은 또 얼었다. 혈액 공급이 없어진 것이다. 그렇다. 나는 수족냉증 환자다. 차가운 곳만 아니라 따뜻한 곳에 있어도 시리다. 담요를 칭칭 두르거나 살을 찌우면 좀 낫다. 그러나 임시방편일 뿐이다. 엄마도 손발이 차다. 나도 어릴 때부터 차다.
이런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작년 한 해는 나에게 참 차가운 해였다. 아니, 따뜻함이 6이었다면 차가움이 4인 해였다. 포근한 경험이 더 많았지만 시린 감정은 코끝의 바늘처럼 유달리 시큰하게 남았다. 아니, 차가움은 1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한 해를 보내고 되돌아보니 차가움은 4였다.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한 채 몰아 붙였던 것이다. 열심히 펌프질하던 심장은 그만 방전이 되어 멈춰버렸고, 나는 극심하게 시렸다. 자주 두통을 앓았고, 먹기만 하면 소화불량에 가슴을 쳤으며 순환이 되지 못한 몸은 엄청나게 부었다. 지금부터는 다독에서 밝히지 못했던 이야기를 건네려고 한다. 아니, 글쓰기 멤버에게라도 정정하고 싶었는데 매번 타이밍을 놓쳤다. 아니, 타이밍이 올 때마다 나는 두려워 얼었다. 달싹거리던 입은 ’별 거 아니란 생각‘과 ’지금 해야 한다‘는 생각이 교차하며 그대로 머물러버렸다. 사실 별 건 아니다. 그러나 내가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쿠션어를 까는 것을 보면 내가 나를 아직 용서못했나 보다. 나는 공개채용을 통하여 사립에 들어갔었다. 밤늦게 야근하는 일도 꽤나 즐거웠고, 매일 아침이면 행복했다. 나의 상사는 항상 내 편이었고, 우리는 한 팀이란 생각으로 서로의 업무를 도왔다. 우리의 아이디어는 매번 채택이 되었고, 계속되는 회의와 야근에 모두가 웃었다. 그만큼 보람이 컸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는 없었다. 사립의 특성상 지역을 옮길 수 없었다. 남편도 지역을 옮길 수 없었다. 고민 끝에 나는 사직을 하였다. 모두가 주말부부로 있으면 된다고 말렸지만, 내 마음이 그걸 원하지 않았다. 남편은 3번을 환승하고 6시간에 걸쳐서 기차를 타야 내 직장에 올 수 있었다. 24시간도 같이 못 있는 아쉬움에 매번 무거운 솜덩이가 된 마음, 그리고 기차 창문 너머로 눈빛 한 번이라도 더 맞추려고 버둥거리는 삼류영화는 그만 찍고 싶었다. 그래서 사직했다. 어차피 내 일은 전국적으로 똑같을 거라 믿었다. 그렇다. 나는 작년부터 계약직이 되었다. 그래서 이동 내신을 쓰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고, 함부로 말하지 못하였다. 내가 하는 업무는 중등교육이 맞는데, 일반 회사원들도 직업을 물으면 굳이 기간을 말하지 않는다. 나 자체로 내 가치가 있는 건데 왠지 모르게 작아졌다. 시골일수록 내 직업을 높게 평가한다고 했던가. 그게 나를 더 작아지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마음은 나를 채찍질하기 시작했고, 소통이 어색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을 보러 가는 주말이면 죄송한 마음이 커졌다. 부모님은 언제나 나의 의견을 존중하신다. 손바닥만한 팬티를 입고 근육 자랑한다며 친구들에게 말씀하실 정도로 내 모든 선택을 존중하셨다. 그러나 내가 ’나‘랑 화해하지 못해서, 내 자신과 순환하지 못해서 모든 관계에서 적응이 참 힘들었다. 그래서 올해는 쉼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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