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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잘쓰는헤찌 Feb 28. 2022

봄과 만나는 꽃샘 추위

봄,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었다.

‘봄’. ‘봄’하면 무엇이 생각나나요? 

만물이 생동하는 시작이기도 하고요.

푸릇한 새싹들이 떠오르기도 해요. 

또한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패딩에서 벗어나

파스텔 색감의 봄옷도 사고요.

그 옷을 입고 아름다움을 뽐내며 설레는 사랑을 꿈꾸기도 해요. 


이렇게 ‘봄’은 여러 느낌을 주지만

저는 벚꽃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나요. 

아름답게 만개했다가 이내 빠르게 져버리는 꽃. 

그러나 너무나 아름다워서 자꾸 생각이 나는 꽃이에요. 

제 고향 집은 강변을 끼고 있어요.

분지인 도시인데 강을 끼고 있다는 건 엄청나게 매력적이에요. 

그 강변을 따라 벚꽃 나무가 심어있어요. 

우린 이걸 ‘백천 벚꽃길’이라고 부를 거예요.


이 백천 벚꽃길은 유독 하얀 꽃잎이 많이 올라와요.

나뭇가지에 솜사탕이 뭉게뭉게 달려있으면

수줍은 연인들이 팔짱을 끼며 웃고,

유모차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나도 그랬어요.

꼬꼬마 시절 교복 치마를 입던 소녀 시절에도,

성인이 되어 엄마 귓등에 벚꽃 잎을 얹어 주던 숙녀 시절에도, 

누군가의 연인으로 그 산책길을 나란히 걷던 아가씨 시절에도 그랬어요. 

진해의 군항제나 안동의 월영교 등 벚꽃 명소는 많았지만

 하나도 부럽지 않았어요.

우리 집 강변을 따라서 있는 벚꽃길은 정말 예쁘고,

가장 커 보였고, 사랑스러웠으니까요.

그곳을 걸으면 마치 선녀가 된 것처럼

하얀 꽃잎을 걷는 기분이 들었어요. 

매우 환상적이었죠.

따뜻한 눈밭을 살포시 밟는 느낌도 났어요. 


‘봄’의 벚꽃. 

그 해도 그랬어요.

다른 점이 있다면 그 해는 ‘백천 벚꽃길’을 벗어나 

아양교 벚꽃길로 갔어요.

수많은 연인이 서로의 어깨에 기대며 꽃내음에 취해있었고,

그날은 그의 생일과 겹쳐서 더욱 완벽했어요.

 우리는 눈 부신 햇살과 듬성듬성 그늘을 주는 벚꽃 나무 아래에서

나란히 스케이트보드를 탔어요.

 흐드러진 벚꽃길을 따라 보드를 탔어요.

따뜻한 아메리카노의 온기와 같은 훈훈함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어요.

이내 햇살은 뉘엿뉘엿 넘어갔고,

우리는 바람을 막아줄 텐트도 쳤어요.

그리고 일렁이는 가로등 불빛과 어우러지는 밤하늘을 구경했어요.

옅게 퍼지는 가로등 불빛은 마치 불꽃놀이처럼 느껴졌고,

황홀했으며 낭만적이었어요. 

그것이 ‘봄’이었어요.


그러나 오랫동안 황홀할 것 같던 그해의 기억은 툭- 하고 끊어졌어요.

서로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각자 당기려다가

 너무 팽팽해졌나 봐요.

그의 친구가 내게 말했어요. 

그가 아양교 벚꽃 나무 아래 한 여자랑 있었는데,

표정이 내내 안 좋았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해요.

진실은 모르겠어요.

정말 나만 행복한 시간이었는지 아니면

이간질하려는 친구의 속셈이 있는지는 몰라요.

우리가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만 몰랐던 거예요.

그렇게 벚꽃길은 내게 아픈 기억으로 남았어요.

그해 봄의 벚꽃은 핑크빛으로 거짓말처럼 물들었다가

이내 사라지고 마는 연기와 같았어요. 


그 후로 나는 삶의 터전을 새로 옮겼어요.

이사를 했어요. 

이사한 집에서 일어나면 제일 먼저 양치질을 해요. 

입에 머물렀던 이전의 기억을 지워내 버리듯

칫솔부터 집어 들어요. 

그리고 요가를 하고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잔 내려 매일 신문을 읽어요.

신문에서 재잘대고 있는 사람들의 세상살이에 

때론 웃었다가 때론 화도 내요.

이후 비타민을 챙겨서 먹고 옷을 갈아입은 후

아침 식사 준비를 하러 갑니다. 


그렇게 꿋꿋하게 일상을 살아갔어요.

작은 일상이 모여 나의 내일을 만든다고 생각했어요.

그 정성이 통하기라도 했을까요? 다시 봄의 벚꽃이 기대됩니다.

살랑이는 봄 원피스를 입고 벚꽃 구경을 하고 싶어요.

새로운 집 주변에도 벚꽃이 많이 핀다고 해요. 

우리네 인생과 같은 오르막길을 따라서 가다 보면

벚꽃 나뭇가지가 서로 맞대어 있대요.

결혼식장에서 칼을 맞대고 예도를 준비하는 군인들처럼

화려하다고 해요.

아참, 봄에 매화도 예쁘대요.

섬진강 줄기를 따라서 3월에 열리는 광양의 매화 축제도

감탄을 자아낸다고 합니다.

전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개최되는 꽃 축제라고 하네요.

 내가 있는 곳은 봄의 아름다움을 먼저 맞이하는 곳인가 봅니다.

잠깐의 꽃샘추위와 같았던 나의 봄 기억아,

이제 꽃을 시샘하는 시간은 가고 새롭게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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