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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잘쓰는헤찌 Mar 10. 2022

첫 대선 투표와 선거

국민의 공적인 권리

“다들 비키소! 아가씨 먼저 드가야 한다.”

백발의 어르신들이 일사분란하게 길을 터준다.

홍해 바다를 갈랐다는 모세의 기적이 이런 건가.

나는 모두의 배려 속에서 1등으로 대선 투표를 마칠 수 있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 치르는 대선이었다.

대선 투표소는 872세대가 거주하는 우리 아파트 단지의 관리사무소. 

이곳에서 총선이든 대선이든 모든 투표가 이루어진다.

다리가 불편하여 빨리 투표하고 집으로 가려고 했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의 줄이 길게 늘어 서 있었다.


나는 한 달째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무릎에 찬 피와 부기가 잘 빠지지 않았다. 그래도 천성이 호기심 많고 이것저것 경험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휠체어를 타고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마주치는 지역민들은 참 정이 많았다. 나를 발견하면 다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가 길을 비켜주고 몸을 일으켰다. 지하철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길만 힘들었을 뿐, 전동차 안으로 들어서면 서로 일어나서 나를 앉혀주었다. 노약자석에 앉아계시던 어르신들까지 일제히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해주셨다. 20대에 노약자석의 노인 분들을 일으켜 세우고 앉은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내가 불편해하면 그분들은 ‘아가씨~ 됐심더~ 내 평소에 젊은 사람들한테 받은 양보가 훨씬 많데이~ 저거들도 회사 다니고 피곤할낀데 다 일나 서준다카이“ 이뿐인가. 영화관에 가면 휠체어는 가장 앞자리로 예매를 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내 주위로 목과 다리를 공굴 수 있는 쿠션을 잔뜩 놓아 주었다. 이렇듯 나에게 선거란 배려가 연속으로 이어진 날 중 하나여서인지 좋은 이미지로 남아있다. 떠올리면 배시시 웃음이 나는 그런 기분 좋은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백발의 노인들이 일제히 좌우로 갈라지는 모습은 이런 표현이 적절할진 모르겠지만 너무나 귀여우셨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이 지난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때보다 조금 더 생각이 자란 탓일까. 그때만큼 배시시 웃음이 나진 않는다. 나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직종이라 정치에 대하여 잘 몰랐다. 직장에서는 물론이고 친구들끼리도 정치에 관해서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그저 인스타에 투표소 인증 사진을 올리는 게 우리들의 정치 이야기라고 할까나. 사실 대부분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정치란 그저 아재들이 얼큰한 김치찌개에 소주를 마시면서 안주 삼아 하는 얘기인 줄만 알았다. 그도 그럴 듯이 우리 부모님이나 친척 어른들이 굳이 정치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심지어 내가 대학생 때 서거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진보인지 보수인지 무슨 정책을 추진했는지 몰랐다. 이사 오고 나서 정치에 관심이 많은 직장동료나 남편의 지인들 덕에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들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선거나 정치라는 주제는 내겐 좀 설익은 주제이다. 아마 중고등 및 대학교 시절에 정치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던 선생님들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선거는 우리의 주권이니 기권표를 찍더라도 꼭 하라는 말씀에 중요성은 알았지만 몇 장의 선거 홍보 책자만으로 혼자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선거 교육은 중고등학교에서부터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사회 교과 과목에 있었을 것이고, 선거의 날이나 다른 행사에서 계기 교육으로 하지 않았을까? 사실 그것들을 제외하더라도 전교 학생회가 선거의 모습과 닮아있다. 입후보들의 포스터는 물론, 절차에 따라 선거 유세 활동도 진행한다. 전체 방송을 통하여 자신의 공약을 발표하고 한 표를 호소하기도 한다. 또한 당선된 이후에 학생 회의를 통하여 안건을 제시하고 학생회 토의를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그러나 정치인의 공약과 이행률, 더 나아가 범죄 및 인성을 점검하는 자료를 제공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모인 학교 역시 작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인기 투표가 아닌 실제 선거처럼 조금 더 세분화된 과정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물론 선생님들은 지금처럼 정치적 중립을 계속 지켜주셔야 한다. 이때 현실의 정치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 교과나 학생부 차원에서 선거에 대한 철학과 가치관을 토대로 일련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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