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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잘쓰는헤찌 Mar 10. 2022

첫차의 기억

내게 온 핑키

“왜...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 아니요...”

핑크색이다. 도시의 커리어우먼은

무심해 보이는 무채색의 투박한 차를 몰아야 하는데,

인디핑크다.

“저... 은색은 없나요?”

“은색은 인기가 없어서 잘 안 구합니다.”    

뭐 나름 예쁘다. 출퇴근용인데 괜찮겠지? 도장을 찍었다.

나와 핑키의 첫 만남이다. 딜러가 챙겨준 자동차 등록증을 본다.

하얗고 빳빳한 종이가 투명 파일에 담겨있다.

그곳에는 ‘광양시청’이라고 적혀있다. 

‘광양이 어디야. 경기도에 있는 도시인가?

먼 길을 달려서 대구 경산까지 온 귀한 차네.’    


그해의 나는 집 근처에서 출퇴근을 하였다. 적어도 2월까지는. 

도보로 17분 거리라 걸어 다니기도 했고,

 늦잠을 자는 날에는 샛노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기도 했다. 

시원한 바람이 코 끝에 스치면 자연의 향기가 그렇게 상쾌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관리자의 전화가 한 통 왔다. 

그 전화에 뚜벅이 출퇴근은 이별을 고하게 되었다. 

아니, 사실 설레는 마음도 있었다. 

동네에서만 생활하다가 멀리 버스를 타고 출퇴근할 수 있다니. 

매일 여행가는 기분일 것이고, 우연히 버스 안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재밌을 것 같았다.....는 일주일 안에 깨졌다.

 새 근무지는 버스 타고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환승을 한번 해야 했는데, 두 버스는 모두 배차 간격이 20분이었다.

 즉, 환승 타이밍이 잘못 걸리면 40분을 허투루 보내야 했다. 매일 여행일 것 같았지만 

매일 머리를 기대고 자는 게 일상이었다. 

우연히 버스 안에서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 산발이 된 머리를 대충 누른 채 ‘제발 아는 척하지 마라’라고 주문을 걸었다. 동료와 카풀도 시도해보았다.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결국 차를 사기로 했다. 그렇다면 나의 운전면허 상태는 어떠냐. 

장롱면허도 그냥 장롱이 아니다. 그해를 기준으로 보면 운전면허를 8년 전에 취득했다. 그 8년 전이 어떤 시대냐. 운전면허 간소화 시대로 34만원이 있으면 면허를 취득할 수 있었다.

 친구들이 했다던 S자 코스, T자 코스가 뭔지 나는 모른다. 그냥 직진하다가 돌발 때 멈추면 합격이었다. 주차는 약 10초 정도 구두 설명을 들으면 끝이었다.

 주차는 시험을 친 기억도 없다.

일반적으로는 장롱인 면허를 사용하려면 도로 연수를 듣는다.

 그러나 나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계약 도장을 찍은 날의 내일도 출근해야 했으니까. 열심히 발품을 파느라 지친 나는 쓰러질 듯이 잠이 들었다. 

이윽고 다음날이 왔다.

출근하는 길의 도로 주행은 나쁘지 않았다. 오전 7시의 도로는 한산했고, 거의 직진인 구간이었다. 기세를 몰아 교문까지는 무난하게 통과하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나는 주차를 할 줄 몰랐다. 초보는 고민할 여유도 없다. 교문에서 그대로 직진을 넣고 한가운데서 내렸다. 그리고 들어오는 아무나 붙잡고 주차를 부탁했다. 아무 자리나 상관없으니 주차만 해달라고 했다. 

저렇게 자리가 텅텅 비는데, 경차로도 주차를 하지 못하는 내가 안타까웠을까. 남녀노소 누구에게 부탁하든 다들 흔쾌히 주차해주었다.

 그들의 선행에 감사하며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한 달을 주차 부탁을 하며 출퇴근을 했고, 

한 달이 지나서는 양옆에 차가 없으면 대충 주차 흉내는 낼 수 있게 되었다.     

핑키는 내게 요긴한 발이 되어주었다. 버스로 1시간이 걸리던 출퇴근길은 40분으로 줄여주었다. 게다가 도로는 대부분 평지에 직진인 곳이었다. 출퇴근 외에는 지하철이나 기차를 타면 됐다.

 핑키의 유지비는 별로 들지 않았고, 주유도 주 1회 3~4만원을 하면 됐다.     

그렇게 1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 핑키에게도 곧 시련이 다가왔다. 내게 타지에 사는 남자친구에게 자주 가면서부터다.

핑키의 첫 고속도로는 남자친구가 동승한 포항이었다. 

남자친구는 경상도 여행 경험이 적었다. 그래서 남자친구를 여러 곳으로 데려다주고 싶었다. 그때마다 핑키는 여러 자동차도로와 고속도로를 달려서 추억을 방울방울 기록해주었다.

한번 고속도로를 달리고 나니 자신감이 붙었을까. 

곧이어 여수로 줄곧 내려오기 시작했다.    

‘오늘 5시에 마치는데, 저녁 한 끼 할래?’

‘오케이~ 기차 타고 갈게. 대전역에서 만나’

혹은

‘오늘 조퇴 내고 점심 회식하면 3시에 마쳐. 여수로 갈까?’

‘오케이~ 자고 새벽에 올라가’    

남자친구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바로 엑셀을 밟았다. 

사실 오케이 사인은 한 번도 거절당한 적이 없다. 

그러면 나는 신이 나서 동료에게 자랑했다.

 동료들은 고속도로 밤길 운전 조심하라면서 진심을 담아 배웅을 해준다. 

보통 140키로미터 정도를 달리는데, 경차라 몸통도 가벼우니 속도가 잘 난다. 

그렇게 밤에 도착하여 식사 한 끼를 한다. 

그 식사를 하는 동안의 시간은 무중력이 되어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식사 후 잠깐 눈을 붙였다가 새벽 3시쯤 출발하여 바로 출근했다. 

차가 없으면 평일에 어떻게 만났을까. 

핑키가 있으니 남자친구가 어디에 있어도 만날 수 있었다. 

바퀴만 굴러가면 어디에 있든 좋았다.    

여수로 이사를 오고 나서도 핑키는 내가 가꿨다. 

첫차라 애정을 많이 쏟았기 때문이다.     

‘부아앙-’

“이 무슨 소리고?”

“언덕에는 천천히 달려야 해. 

속도 내려고 RPM을 올리면 소리가 많이 나”    

언덕과 로터리가 많은 여수에서는 핑키가 꽤 애를 먹었다. 

평지에서의 운전 습관대로 했다간 굉음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나는 로터리 운전이 매우 서툴렀다. 아니, 로터리 운전을 처음 해봤다. 

로터리에 들어서면 빵빵-하는 소리를 매일 들었다. 

핑키는 결국 남편의 차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 나름대로 좋았다. 

여수에서는 어차피 남편이 항상 동행한다.

 남편이 핑키를 타면서 공유할 추억은 더 많아졌다. 

남편은 속도를 내지 않아 핑키는 더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차가 잘 나가고 못 나가는 것도 질을 내기 나름이라 하지 않는가. 

내 첫 차. 직접 중고차매장을 뚜벅이로 다니며 알아본 내 첫 차. 그래서 더 애정이 많이 갔다.

주 1회 셀프세차를 하며 가꿨다. 

이 차는 광양이 어딘지 몰랐던 나를 이끌고 연어가 되어 돌아왔다. 

우리의 추억을 실은 핑키의 엔진 소리를 좀더 오랫동안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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