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1화
[당신은 행복하신가요?]
#1
행복 천재들은 야구장에 간다.
그곳에서는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야식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층간 소음 걱정 없이 마음껏 소리를 지를 수 있어서 좋다.
외로움이 편만한 세상에서 수많은 내 편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그곳에 가는 사람들과 지하철에서 나누는 무언의 눈인사가 좋다.
그곳이 시야에 들어오면 쿵쾅대기 시작하는 심장 소리가 좋다.
-아주 보통의 행복, 최인철-
#2
“아 뭐꼬? 또 병살이가?
와따마 좁아터진 버스 타고 왔디만 답답해 디지겠노”
(3시간 뒤)
“이예에에~ 이깃다! 으데 기아가 까부노!”
#3
1. 남편과 함께 야구장을 다녀옴에 감사
2. 배울 수 있는 환경에 감사
3. 건강하게 먹고 즐길 수 있음에 감사
코로나 시국이 가져온 대표적인 상황은 ‘자아 찾기’다.
그 중 하나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게 되면서 화장할 일이 적어졌다.
이는 매일 아침 ‘꾸밈 노동’이라 불리는 화장하는 시간이 줄어서 대다수가 환호했다.
사실 화장이 귀찮겠는가,
나는 클렌징으로 지우는 게 더 일이어서 이 시국을 반겼다.
그러나 비슷한 마스크 모양새에 자신을 드러내기는 한계다.
이에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향수’였다.
실제 주요 백화점 화장품 코너 매출을 보면,
립스틱과 같은 색조화장품의 비율은 큰 폭으로 줄었다.
반면에 향수의 판매 비율은 반대 곡선으로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만이 가지고 있는 향을 드러내면서 ‘나’를 규정하고
자신을 표현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것은 일명 ‘갓생 살기’, 자신만의 루틴을 정하여 생활 습관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는 대신 재택근무가 늘었다.
사람들에게 자율성이 부여된 것이다.
이때 스스로 규칙적으로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갓생’이라는 하나의 밈이 탄생하였다.
사람들은 ‘미라클 모닝’이라며 스스로 일찍 일어나길 원했고,
빽빽한 시간표대로 움직이며 자신만의 루틴으로 부지런히 생활하고자 하였다.
나도 그랬다. 올해 처음으로 늘어난 자유 시간은 마치 무능으로 가는 지름길만 같았다.
그래서 동이 틀락말락한 새벽 4시 반에 일어났고, 오전 루틴으로 7,8가지 할 일들을 수행했다.
꽤 좋았다.
오로지 내게만 집중해서 할 일을 쳐내는 것도 좋았고,
미뤘던 ‘책 한권 읽기’나 소도구 스트레칭을 하는 것도 좋았다.
완료한 할 일을 하나씩을 SNS에 올리면,
비슷한 습관을 만드는 사람이 댓글도 달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았다.
특히 기상하자마자 바로 쓰는 아침 감사일기는 그날 하루를 감사로 가득 채워주었다.
행복으로 가는 완행열차를 탄 듯했다.
내가 덮고 자는 이불의 포근함도 고마웠고, 건강하게 잘 지내주는 부모님과 남편도 고마웠다.
이대로 습관이 무의식화되면 나는 큰 성취감을 안고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살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곧잘 하다가도 한번씩 깊게 늘어져서 그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갓생’이 ‘똥망생’이 된 것 같아서, 그날은 일어나질 못했다. 행복을 눈앞에서 걷어차 버린 기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가 가져온 심리검사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단연 ‘MBTI’다.
나야 스무 살 때부터 전공수업에서 늘 하던 검사라 새롭진 않았다.
그러나 사람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감정 소모를 하고 싶지 않은 이들은 이 심리검사에 몰입했다.
나 역시 알고리즘이 자주 노출해주다 보니 관심이 갔다.
‘저건 통계일 뿐이야’라는 마음이 ‘아, 나도 이런데?’로 바뀌었다.
나는 대학생 때와 지금이랑 ‘MBTI’의 알파벳 4개 유형은 동일하다.
그 안에서 수치는 조금씩 바뀌더라도 궁극적인 알파벳 4개는 똑같다.
그 안에서도 변함없이 극단으로 치솟는 수치가 있는데, 그것은 ‘P’유형이다.
‘P’유형은 상황 적응력이 좋아서 환경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는 큰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 유형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갑자기 반대 성향으로 바뀐다.
계획적으로 변하여 행위의 중심에 내가 없게 된다.
아마 내가 그랬나 보다.
처음으로 일을 쉬게 되는 상황이,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는 내게는 불안으로 다가왔고,
이를 ‘갓생’이라는 루틴으로 포장하면 불안함이 없어질 줄 알았다.
이것을 행복이라 믿었다.
행복은 단일화된 기준으로 세우는 것이 아닌 ‘나’가 가장 ‘나’다움을 표한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그것이 편안할 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일주일에 두세 번씩 다니던 야구장을 또 갈 수 있어서일까,
아니면 절친인 남편을 놀릴 수 있어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감사일기로 만든 마음가짐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