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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잘쓰는헤찌 Oct 22. 2021

내 최초의 기억

여러분의 첫 기억은 무엇인가요?

내 제일 처음의 기억은 5살이다.

그 때 유치원 입학 테스트를 받으러 가서 모래를 옮겨 담고 장난감 벽돌을 쌓은 기억이다.


6살 때 선생님은 갈색 긴 파마머리에 눈이 큰 미인이라는 것과

7살 때 선생님은 엄마의 외양과 많이 닮았는데,  

유독 화장실을 안 보내주셨다는 점.


드문드문 파편처럼 남은

나의 미취학 아동 시절 기억이다.

오늘은 이를 뒤로 하고,

내 8살 겨울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첫기억이란 가장 많이 기억나는 시작이 아닐까?

첫사랑이란 정의가 누군가에겐 처음으로 가장 많이 사랑한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우리 가족은 내가 8살 가을 쯤에

 첫 이사를 앞두고 있었다.

지방 대도시에서만 쭉 살다가 처음 가는 산골.

부모님은 우리가 이사 갈 집이 화장실이 2개이며

자연 경관이 아름답다고 하셨다.


그곳은 바로 충청남도 예산군이었다.

과연 학교에서 우리집 가는 길은 참으로 예뻤다.

가는 길에는 끝 없이 펼쳐진 논두렁과

노랗고 붉은 단풍이 얼룩덜룩 점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지지배배 우는 새소리로 가득한 하교길엔,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 몇 명과 나란히 줄을 지어 걸어왔다.

때로는 집으로 가는 길에 커다란 진도견이 있으면 친구들과 죽어라 달려서 얼른 도망쳐 온 기억도 있다.


예산군은 이처럼 가을도 예뻤지만

겨울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내 8년 인생에서 처음으로 눈을 펑펑 맞았던 곳,

 그리고 원 없이 눈사람을 만들었던 곳이다.

그 눈사람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내 경험이 되었고, 지금은 사진으로 남아있다.


그 시절 겨우내 집 앞 마당에는

발이 푹푹 빠지는 눈이 쌓였다.

그럴 때면 나는 눈을 헤치고 내려가서

엄마랑 동생이랑 눈을 던지고 놀았다.

눈은 뭉치고 또 뭉쳐도 끝없이 쌓였다.

눈을 던지고 놀다가 지치면 잠깐 앉아서 쉬기도 하고, 근처에 있던 겨울풀을 뜯어다가

동생을 간지럽히기도 하였다.


셋이서 합심해서 눈을 굴리기 시작했고,

눈덩이가 점점 불어나 내 몸뚱이만해지면 내가 하고 있던 목도리를 둘러주고,

나뭇가지 눈과 입을 만들어주었다.

이윽고 아빠가 집으로 오실 시간이 되면 온 몸에 방울방울 달린 눈송이를 툴툴 털어내고 들어갔다.

그때 엄마가 분주하게 만드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를 맡으며 학교 숙제를 하곤 했다.


새하얀 눈사람은 다음날 아침이 되어도 우리집의 수호신처럼 마당 한 가운데를 지켰다.

눈사람 덕분인지 그 추운 겨울에도

 나는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다.


8살 이전에는 남부지방에 살아서

눈을 보기가 참 어려웠다.


혹여 눈이 리더라도 금세 진눈개비가 되어

바닥에 스며들었다.


눈 앞에서 펑펑 내린 눈은 생각보다 더 환상과 같았으며 같이 놀았던 추억 때문에 뇌리에 남은 듯하다.


예산살이 1년이 되자,

아버지의 장기파견이 끝나면서

 본래의 거주지로 돌아갔다.


짧았던 시간과 아주 어린 나이의 경험임에도

1년 간의 기억이 강하다.

이후 살던 곳으로 돌아와 보냈던

 2학년 3학년 4학년의 기억보다

더 많은 풍경이 그려진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뭐 할래?

한번쯤은 들어본 질문일 것이다.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엄마의 된장찌개와 아빠의 빵선물을 기다리며

동생과 눈뭉치를 던지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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