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잘쓰는헤찌 Oct 15. 2021

가을의 문턱

가을냄새가 부대끼는 이 날씨가 참 좋다.

서늘한 바람이 피부의 신경을 곤두세운다. 


아 이제 가을이 왔구나. 


팔뚝의 솜털도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서 가을의 냄새를 맞이한다. 

치열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가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봄처럼 너무 들뜨지도 않고, 여름처럼 화끈하지도 않으며 겨울처럼 웅크리지도 않는다.

가을만의 저물어가는 노을빛과 한 해를 마감하는 그 기분이 나는 참 좋다. 

그 외에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를 몇가지 더 들자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울긋불긋한 가로수가 다채롭게 서성인다. 핑크뮬리니 팜파스니 다양한 색채의 나무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자연의 색을 그대로 품고 있는 낙엽이 제일 좋다. 샛노란 은행잎과 붉그스름한 단풍잎의 조화는 풍성한 마음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시기에는 팔공산에 올라가 막걸리에 파전, 혹은 막걸리에 도토리묵, 혹은 담금주에 삼계탕 한 그릇 때리면 이곳이 지상낙원이요, 제대로 된 단풍놀이가 된다. 


두번째, 내 생일이 있는 계절이다. 아주 꼬맹이때부터 이쯤 되면 받았던 축하들, 가까운 사람과 함께 생일을 보내고 지냈던 미소들이 가을에 오롯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생일이란 세월이 흘러 아무리 무뎌진다지만 단어만으로 참으로 설레고 아름다운 존재이지 않는가.


세번째는 엄마와 은행을 줍던 추억이 있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고 밤 10시에 귀가하게 되었다. 그러자 부모님은 항상 걸어서 나를 데리러 오셨다. 우리 학교는 유독 은행나무가 많았는데, 가을이 오면 온 바닥은 누렇게 변하였다. 그와 더불어 고단한 이들의 발자국에 눌린 은행 열매는 꼬리한 악취를 풍기며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대다수는 냄새 난다고 피하지만 나는 은행을 볶았을 때 나는 구수한 냄새를 참 좋아했다. 그걸 안 엄마는 나를 데리러 오시는 길에 검정 봉투를 항상 가져오셨다. 그러면 엄마랑 나는 학생들이 빠져나가길 조금 기다리다가 집으로 걸으면서 하나씩 주워담았다. 집까지 20분가량을 걷고 나면 엄마는 바로 은행을 볶아주셨다. 천장으로 튀어오르는 은행을 보며 꺄르르 웃기도 하고, 후라이팬 뚜껑에 요란한 소리에 서로 눈을 마주치기도 하였다. 이동하면서 담은 양이라 많지 않았지만 야식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아니 최고의 맛이었다. 


고1때 시작하여 그 다음해의 가을, 또 그 다음해까지 나에게 3번의 가을은 가족이 함께 만든 은행 야식 덕분에 행복하였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나 가을은 다시 성큼 다가왔다. 

그 사이 나는 대학을 졸업했고 직장을 가졌으며 결혼도 하게 되었다.

 이번에 엄마를 만나 점심을 먹으면서 말을 건넸다.


“엄마 우리 은행 주워다가 튀가 물까?”


“말라꼬. 귀찮다”


“엄마 은행 줍고 묵는 거 좋아했잖아.”


“그거 니 무라고 주은 거지. 같이 걸어오면서 재밌잖아.”


그랬다. 엄마는 사실 은행 자체를 좋아하시진 않았다. 

그보다도 나랑 함께 줍는 추억, 

다같이 튀기며 탁탁 터져오르는 은행껍질의 아우성에 온가족이 웃는 게 좋았던 것이었다.

부모님의 사랑에 포근했던 가을날의 추억과 어린 날의 기억들이 쌓여 자연스레 가을을 찾았던 나는

 2021년의 가을을 지나고 있다. 어김없이 올해도 가슴 벅차오르는 가을의 서늘한 바람이 왔다. 

작가의 이전글 사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