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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Mar 20. 2018

네트워크에 갇힌 사람들 <망내인>




컴퓨터와 인터넷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는 요즘. 2018년을 사는 현대인의 또 다른 이름은 '네트워크 인간'이다. 인터넷은 위대한 발명품인가? 인터넷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었는가, 아니면 전에 없던 문제를 새로 만들어냈는가? 이 질문들의 대답은 모두 “yes”이다. 당연히 위대한 발명품이고, 편리함을 주었음은 물론이며, 선명한 효과 못지않게 그림자 또한 짙다.   
 
앞서 소개한 홍콩출신 작가 찬호께이의 <13.67>이 1967년부터 2013년까지의 홍콩을 묘사했다면, <망내인>(사진)은 2015년, 홍콩의 현재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야기의 얼개는 간단하다. '아이'의 하나뿐인 여동생이 22층 건물에서 자살한다. 인터넷 속 마녀사냥이 동생을 죽음으로 밀어넣었다. 사건은 동생이 지하철에서 성추행범을 잡으면서 시작된다. 동생을 성추행한 남자는 실형을 선고받아 수감되는데, 몇 개월 뒤 인터넷 게시판에 남자의 조카라는 사람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리면서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된다. 게시판 글은 폭발적으로 퍼져나가 동생의 일상을 압박한다. 조롱과 모욕의 대상으로 전락한 동생은 서서히 학교에서 고립되어 간다.  

'아이'는 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게시판 글 작성자, 성추행범의 조카를 찾아나선다. 수소문해본 결과 그에게 조카는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그 글을 쓴 사람은 누구인가? 무슨 이유로 조카를 사칭해 동생을 궁지에 몰았던 것일까? 
자살한 동생의 진실을 쫓기 위해 '아이'는 전직 해커 '아녜'를 고용한다. '아녜'가 등장하면서부터 게시판 작성자 'kidkit727'을 찾기 위한 망내 추격전이 본격화한다. 얼굴과 이름이 공개되지 않는 인터넷 공간에서는 토르 브라우저, 다크웹 같은 다양한 기술로 얼마든지 자신을 둔갑할 수 있다. 그들은 악으로 악을 제어하기로 한다. '아녜'가 짜놓은 네트워크 속에서 아이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 속 모든 등장인물의 운명이 한데 섞인다. 같은 와이파이 아이디로 접속한 사람들에게 가짜 페이지를 띄우고, 화면을 조작하는 모습은 온라인의 절대 권력을 보여준다. 사건을 조사해 진실을 밝힌다는 명분이지만, 실상은 악을 제어한다는 이름으로 복수를 감행한 것이다.  

빠르고 편리한 인터넷의 폐악 쯤은 이제 뉴스에 나와도 크게 놀랍지 않을 만큼 익숙하다. 그런데 그것이 범죄로 연결되는 구체적인 과정은 새롭다. 찬호께이 작가가 컴퓨터과학을 전공하고 프로그래머로 일한 과거 이력 덕분에 이야기는 더욱 정확해졌다.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한 편의 르포(reportage)를 읽는 듯한 착각이 드는 이유다.     

소설 제목 <망내인>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활자대로라면 망내인(網內人)은 '그물 안에 있는 사람'이다. 소설에서는 네트워크 세상을 빗대 인격 모독, 악성 댓글, 비방과 악소문을 사회 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똑같이 네트워크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복수한다.  

원하든 원치않든 누구나 촘촘한 그물에 갇혀 살아간다. 좁게는 가족, 넓게는 국가가 그물 역할을 한다. 그 그물은 안락한 편안함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을 옭아매기도 한다. 어디 소속 뿐이랴.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망내인> 주인공들은 크고 작은 인과관계로  엮여 긴 장편소설을 완성했다. 원인과 결과가 촘촘하게 연결된 그물은 우리네 사회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다.  

사람의 편의에 의해 개발한 네트워크. 손끝 하나로 정보를 불러들이는 첨단 그물을 만들 당시에는 그 안에서 서로 너저분하게 얽히고 설키는 부작용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사람을 죽이는 것은 흉기가 아니라 악의가 되어 버렸다. 신상털기와 마녀사냥식 여론몰이가 어떤 참극을 가져다 줬는지 이미 우리는 여러번의 사건을 통해 경험했다. 영원한 애증관계로 남을 인간과 네트워크의 사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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