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보기 좋은 넷플릭스 드라마
전 세계 수많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들을 안방에서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넷플릭스. 정보가 쏟아지는 만큼 어떤 콘텐츠를 선택해야 할지 결정장애가 오기도 한다. 그저 그런 드라마에 지쳤다면 이번에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보자. 한번 빠져들면 앉은 자리에서 정주행하게 될 완성도와 작품성, 재미를 두루두루 갖춘 넷플릭스 드라마 네 편을 추천한다.
원데이 앳 어 타임 (One Day at a Time)
얼마 전 세 번째 시즌이 공개된 넷플릭스 ‘원데이 앳 어 타임’은 압제를 피해 1960년대 쿠바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1970~80년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동명의 시트콤을 리메이크했다. 그러나 중심인물을 백인 가족에서 라틴계 가족으로 바꾸면서 원작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됐다. 미국에서 이민자 또는 라틴계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묘한 공감대가 형성된다. 또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은 가족인데다 같은 인종임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 문제가 모두에게 동일하게 작용하지 않으며 그 안에도 다양한 층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원데이 앳 어 타임’의 공동 프로듀서 중 한 명인 글로리아 카르테온 켈레트는 쿠바 출신으로 실제 경험이 녹아 들어있다. 배우로 활동했던 당시 라틴계라는 이유로 갱스터의 여자친구, 가정부, 혹은 마약중독자 역할만 맡았으며, 그때 느꼈던 좌절이 작가로서 이야기를 만드는 데 영감을 줬다고 밝혔다.
그레이스 앤 프랭키 (Grace and Frankie)
원수 사이인 그레이스와 프랭키가 각자의 남편이 사실은 게이이고 오랫동안 사귀어왔다고 커밍아웃을 하고, 남편에게 이혼을 통보받으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웃음과 감동으로 그려낸 코미디 드라마다. 노년의 성,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가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엄마나 할머니가 아닌 독립된 개인으로서 기록되는 노인의 생활이 꽤 의미있게 다가온다.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노년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그레이스와 프랭키가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고 이를 진행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연, 친구이자 사업 파트너로서 서로를 의지하는 모습, 여기저기 삐그덕거리는 몸으로 술집 테이블에 올라가 신나게 춤추며 노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노년은 과연 어떤 모습인지 스스로 되돌아보게 된다. 현재까지 다섯 번째 시즌까지 공개됐으며, 시즌6 제작을 확정했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 (13 Reasons Why)
당신의 자녀는 안녕하십니까? 드라마는 이 질문으로 시작한다. 한 여학생이 자살하면서 유언을 담은 카세트테이프를 친구들에게 배달한다. 여학생은 자신의 죽음과 관계가 있는 13명에게 이 테이프를 차례로 듣게 했다. 그리고 직접적 원인이 된 친구들을 하나씩 지목하며 옛일들을 들춘다. 과연 학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여학생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사실감있게 묘사했다. 미국 고등학교의 집단 따돌림과 성폭행, 마약 등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결코 거북하지 않다. 우리 아이, 내 주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부모는 '내 자녀는 내가 제일 잘 안다'고 말한다. 그러나 드라마는 이 말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보기좋게 꼬집는다. 제이 아셰르 작가의 소설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원작으로 했으며, 현재 두 번째 시즌까지 제작됐다.
빨간 머리 앤 (Anne with an "E")
아름다운 시골 마을 초록 지붕 집으로 입양된 빨간 머리 소녀 '앤'의 성장을 그린 이야기다. 원작 소설과 일본 애니메이션 ‘빨간 머리 앤’이 전원 풍경의 밝은 분위기를 묘사한 온화한 가족물이었다면 넷플릭스 드라마는 앤이 겪은 고아원에서의 트라우마로 종일 무겁게 진행된다. 시즌2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원작의 캐릭터들을 가지고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쓴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캐릭터를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스테이시 선생님은 원작에서 목사의 부인으로 올바른 기독교관을 가진 남편과 좋은 가정 주부가 될 만한 아내로 조신하게 묘사됐지만 넷플릭스 판에서는 남편이 죽은 뒤 혼자 살고 있으며, 바지를 입고, 전동 자전거를 탄다. 달라진 여성상에서 일종의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소설의 배경은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이지만, 드라마는 캐나다 온타리오 남부와 토론토에서 촬영됐다. 소설로는 도저히 표현해내지 못한 아름다운 풍광을 드라마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