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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Jun 06. 2019

“전 매번 지금이 제일 행복해요” 석민진 케이크디자이너

“전 매번 지금이 제일 행복해 

유쾌한 케이크 디자이너 석민진 



빵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달콤한 위로이다. 살다 보면 빵 한 조각에 기분이 나아질 때가 있다. 순간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들은 그 시간을 담대하게 넘기고 나면 별 것 아닌 일일 때가 많다. 일일이 드러내고 한껏 퍼붓고 나면 괜히 감정을 낭비한 것만 같아 금세 후회한다. 그럴 땐 오히려 상큼한 유자 케이크 한입이면 기분이 좀 나아지기도 한다. 너무 성급하게 꿀꺽 삼키지 말고 입안에서 사르르 녹여 음미해보자. 6월의 쨍한 햇볕이 내리쬐는 과수원 한복판에서 달짝한 과즙이 줄줄 흐르는 복숭아를 베어 무는 상상을 하면서. 달콤하고 보드라운 케이크 한입은 가장 쉽고 빠른 에너지 보충제이다. 일상에 지쳐있다면 석민진 케이크 디자이너가 건네는 포근한 위로에 귀기울여보자. 





“반죽을 만질 때가 제일 설레요. 가장 즐거운 날, 파티분위기를 더욱 즐겁게 해주는 조연이지요. 그 모습과 맛에 홀려 갑자기 주연이 되기도 하고요. 이번에는 어떤 맛과 모습으로 파티에 모인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까 늘 궁리해요.” 



슈가 크래프트, 모두를 놀라게 하는 재미 있어 

설탕가루를 폰단트(fondant)라고 불리는 반죽으로 만들어 색을 넣고  모양을 빚는 슈가 크래프트. 다시 말해 설탕공예 케이크이다. 그녀가 완성한 케이크를 공개했을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이거 케이크 맞아요?” “아까워서 이걸 어떻게 먹어요?”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을 떡 벌리고 있다. 그녀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이 재미있다. 슈가 크래프트 케이크는 머릿속에 그려진 이미지는 모두 다 설탕반죽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최대 매력이다. 생크림이나 버터크림은 빵 위에 예쁜 꼬까옷을 입히는 개념이라면 슈가 케이크는 빵 위에 디자이너의 생각을 입히는 개념이다.    


석민진 디자이너는 종종 가족들마저 속인다. 생일 선물을 똑같이 케이크로 만들어 어느 것이 진짜 케이크이고 어느 것이 선물인지 알아맞혀 보라고 퀴즈를 낸다. 서양 난 화분을 하나 사다가 설탕공예로 똑같이 만들어서 다른 화분이랑 섞어본 적도 있다. 아무도 진짜와 가짜를 알아채지 못하다가 설탕공예로 만든 꽃화분에 초를 꽂고 칼을 넣었을 때 모두가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케이크 하나로 파티에 모인 사람들이 실컷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지금까지 만든 작품은 300여개. 그 중 똑같은 것은 단 한 개도 없다. 모두 특별한 날, 특별한 누군가를 위한 맞춤형 작품이다. 유난히 기억에 남는 작품은 평생 패션디자이너로 일해온 60대 어르신의 생일 케이크이다. 실과 바늘, 가위, 줄자, 시침핀, 단추를 폰단트로 만들어 케이크에 얹었다. 당신의 일과 삶이 오롯이 담긴 케이크를 받아들고 어르신은 눈물을 보였다.     



“케이크 하나 만들려면 하루 종일 걸리죠. 길게는 몇 주씩 걸리기도 해요. 그렇지만 고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만든 사람도 감동을 받으니까요. 힘들었던 기억을 말끔히 씻을 만큼 보람 있죠.”  



케이크 매력에 빠져 독학으로 디자인 연습해 

그녀가 제빵 세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그야말로 '우연히'였다. 미국 메릴랜드에 온지 1년도 채 안됐을 때, TLC에서 방송하는 케이크 보스(Cake Boss) 프로그램을 보고 한 눈에 반해버렸다. 다양한 모양의 사물을 케이크로 표현해 내는 모습이 신기해 무작정 집근처 케이크 데코레이션 수업을 등록했다. 세 가지 기초과정을 모두 배우고 난 뒤 자신의 실력을 시험하고 싶어 케이크대회에 한번 나가봤다. 거기서 덜컥 초급부문 1등을 해버린게 아닌가.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스스로 대견하기도 했다. 내친김에 시카고 윌튼스쿨에서 케이크 데코레이팅 전문가 과정을 밟고 본격적으로 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녀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케이크 굽는 법, 버터크림을 다루는 법뿐이었다. 이후 슈가 크래프트 는 오로지 독학으로 터득했다. 홀로 설탕반죽을 조물락조물락 하면서 꽃도 만들어 보고, 구름도 만들어 본다. 자꾸 하다 보니 실력이 늘었고, 한 시간 걸리던 꽃을 20분이면 완성한다. 그러다 추상과 구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신비한 매력을 뿜어내는 메기 어스틴(Maggie Austin) 디자이너의 케이크처럼 어느새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생생한 표현까지 가능해졌다.    



“케이크는 손으로 하는 기술이 아니에요. 머리와 가슴에서 나오는 아이디어지요. 자연은 훌륭한 모델이에요. 산책할 때 보이는 꽃, 나무, 돌멩이에서 영감을 많이 얻어요. 예쁜 카드나 포장지를 보고도 케이크로 표현해요. 동화책을 읽으면서도 이야기를 케이크로 만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요.” 




하나씩 덜어가며 디자인 창작 

늘 새롭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찾아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다보니 그녀만의 철칙이 생겼다. 복제를 피하는 것. 국립공원을 주제로 케이크를 만든다면 공책에 도안을 그리기 전에 우선 웹 검색부터 한다. 아이디어를 참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반대로 아이디어를 덜어내기 위해서다. 내생각과 비슷한 것을 누가 먼저 만들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 최대한 피해간다. 이미 웹상에서 떠도는 디자인이라면 그녀가 굳이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맛은 추억과 기억 소환하는 감각의 총체 

슈가 크래프트가 워낙 눈을 즐겁게 하는 케이크이다 보니 겉모습으로만 평가한다. 쉽게 믿기는 힘들지만 슈가크래프트는 먹기 위해 만든 케이크이다. 그 맛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석민진 디자이너는 “쫀득한 껌이었다가 폭신한 빵으로 변하는 마법 같은 맛”이라고 설명한다. 뱃속으로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반전 매력이 팡팡 터지는 슈가 크래프트이다.  


'맛'이란 모든 감각의 총체. 우리가 음식을 입에 넣기까지 우선 눈으로 한 번, 냄새로 또 한 번 맛을 느끼고, 그제야 미각으로 맛을 본다. 익숙한 맛이 입에 들어가면 머릿속 깊숙이에 저장된 기억과 추억이 소환되기도 한다. 수플레 팬케이크를 먹으면서 어릴적 엄마가 만들어줬던 폭신한 카스테라가 생각나기도 하고, 글레이즈가 듬뿍 올라간 도넛을 먹으면 헤어진 전남친과의 데이트가 생각나듯이. 맛 하나에 모든 감각이 동원되는 셈이다. 좋은 맛을 내는 음식이란 여기에 얽힌 좋은 추억과 함께 음식을 즐겼던 소중한 사람들 혹은 이 자리에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리는 사람들 모두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 아닐까. 그녀의 슈가 크래프트도 그렇다. 특별한 날, 자리를 빛나게 밝힌 케이크는 지금 사라지고 없지만 그녀의 케이크를 맛본 사람들은 앞으로 제과점 앞만 지나가도 그날의 마법같은 추억이 떠오를지 모른다.  





석민진이 제안하는 홈 베이킹 

[유자청 파운드케이크] 

날씨가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시작하는 6월에는 상큼한 유자청을 넣은 파운드케이크를 구워 달콤한 추억을 소환해보자. 석민진 디자이너가 추천하는 6월의 맛이다. 유자청 대신 사과나 블루베리, 오렌지 같은 과일을 설탕에 졸여 상큼 달달한 맛을 낼 수도 있다.  


재료(5X2인치 크기 소형 파운드 케이크 4개용) 

계란 3개(150g) 

설탕 80g 

카놀라유 80g(포도씨유, 해바라기씨유로 대체 가능) 

바닐라 엑스트렉 ¼ t  

우유 80g 

유자청 80g  

박력분 150g  

베이킹파우더 5g 


만드는 법 

1. 오븐을 화씨 350도(섭씨 180도)로 예열하고, 파운드 틀을 준비한다.  

2. 계란을 핸드믹서로 가볍게 풀어준 다음, 설탕을 넣어 아이보리색 거품이 나도록 믹싱해 준다. 카놀라유를 조금씩 흘려 넣으며 저속으로 믹싱해 준 다음, 바닐라 엑스트렉과 우유를 조금씩 넣으며 저어주고, 유자청을 넣고 저속으로 섞어준다. 

3. 박력분과 베이킹파우더를 체 쳐서 넣고, 주걱으로 반죽을 섞어준 다음, 준비한 파운드 틀에 80% 차도록 나누어 담아준다.  

4. 예열된 오븐에 넣고, 20-30분간 구워 준다. 반죽 가운데에 이쑤시개를 꽂아보아 깨끗이 빠져나오면 잘 구워 진 것이다.  

5. 식힘망 위에 올려 식힌 후, 슈가파우더 25g, 유자청 5g, 레몬즙 5g을 섞어 붓으로 윗면을 발라준 다음, 다진 피스타치오를 뿌려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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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민진 케이크 디자이너  


2013. The Wilton School of Cake Decorating - Master Course 수료  

[수상경력] 

2012. National Capital Area Cake Show – Beginner 부문 1위(런던올림픽 케이크, 토이스토리 케이크) 

2013. National Capital Area Cake Show – Intermediate 부문 1위(5주년 케이크, 추수감사절 디너테이블 케이크, 발레리나 케이크)  

2013. Great American Cake Show – 전체 부문 대상(돌케이크) 

2014. Great American Cake Show – 전체 부문 대상(정물화케이크) 

2016. National Capital Area Cake Show – Advanced 부문 1위(미국립공원 100주년 기념 케이크)  

2017. National Capital Area Cake Show – Semi-professional 부문 3위(마스크 케이크)   




*S.CASA (New York 문화.예술 스토리 매거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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