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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Jul 20. 2019

여름은 여행이지!

낭만 여행도서 3권

여름은 여행이지! 


한때를 풍미하는 단어가 있다. 옷이나 화장품처럼 단어도 유행이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의 유행 단어는 'OO에서 한 달 살기'. 팍팍한 일상을 벗어나 그림 같은 휴양지에서 여행객인 듯, 주민인 듯 자연스럽게 물들어 사는 모습은 많은 어른들의 꿈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돈이 생기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는 지옥의 무한루프에서 허우적댄다. 이 여름, 당장 여행이 필요한 당신에게 낭만적인 여행책 세 권을 응급 처방한다.  




온다 씨의 강원도 

부제가 '막연하지 않은 강원살이'이다. 사진작가 김준연이 8명의 강원도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강원도에 살게 된 계기, 생계유지의 방식, 동네 구석구석의 산책길 등을 취재한 인터뷰집이다. 주로는 본래 대도시에 살던 20, 30대 연령의 직장인이 강원도 모처로 새롭게 터전을 잡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을 담아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강원도는 그저 바다와 모래가 있는 관광지일 뿐이다. 이곳에서 살고 싶다고는 말하지만 실제로 강원도로 이사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온다 씨의 강원도』 속 인물들은 여행지로서의 강원도가 아닌 삶의 터전으로서의 강원도를 선택했다. 조선소를 지키고 있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실향민 할아버지가 세운 조선소를 조금씩 새롭게 바꿔가고 있다. 이제는 이곳에서 어선 대신 수상 레저용 보트를 만든다. 조선소 한쪽엔 작은 카페가 있다. 낡은 간판과 허름한 외관 등 영화에서나 볼법한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한 채 그 안에서 카약과 커피를 파는 조화가 재미있다. 하마터면 허물고 새 건물을 올릴 뻔 했던 공간에 카페를 짓고, 전시 공간을 만들고, 배를 타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뱃놀이를 전파한다. 생존을 위한 부부의 고육지책이었지만 결과는 놀랍다. 부부의 꿈은 단순하다. 튼튼하고 아름다운 배를 계속 만드는 것. 어린 시절, 그에게 조선소가 놀이터였듯, 부부의 아이들이나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뱃놀이의 즐거움을 알리는 곳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강원도는 생활의 공간으로서 매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각종 불편함과 소외감을 '낭만'이라는 한 단어로 송두리째 바꿔버리기에는 너무나도 큰 모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강원도를 지키는 이유는 특유의 원초적인 순수함 때문이다. 이 좁은 땅에 아직도 개발할 곳이 남아있을까 싶지만 강원도는 아직도 사람이 한 번도 밟지 않은 길, 차로 한 시간은 달려야 겨우 집 한 채가 나오는 길이 존재한다. 그런 미지의 아름다움이 그들의 발목을 잡은 것은 아닐까. 


더불어 맛집이라고 콕 집어 추천할 것도 없이 동네 주민이 그냥 가서 밥 먹는 식당,  원주민들이 산책하는 뒷동산 같은 소소한 진짜 여행 정보를 덤으로 얻는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 작가의 신작이다. 처음 했던 여행부터 가장 최근에 다녀온 여행까지를 '이유'라는 주제로 되짚어본 에세이다. 평소 여행과 사색을 즐기는 김영하 작가의 내밀한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책의 한 구절을 빌리자면, 인간은 왜 여행을 꿈꾸는가. 그것은 독자가 왜 매번 새로운 소설을 찾아 읽는가와 비슷할 것이다. 여행은 고되고, 위험하며, 비용도 든다. 가만히 자기 집 소파에 드러누워 감자칩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게 돈도 안 들고 안전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라고도 말할 수 있다. 


아주 매끄럽고 아무 문제가 없는 여행은 금방 잊힌다. 고생했거나 예상과 달랐거나 문제를 겪은 곳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는 법. 결국은 마음에 연결되어서 무언가를 알려주니까. 그래서 김영하 작가는 가능하면 준비하지 않고 가는 여행을 즐긴다. 이번 책도 예상과 다른 의외의 재미를 준다. 대부분의 여행 에세이는 사진이 많이 실리기 마련인데, 이 책에는 단 한 장의 사진도 없다. 그림이 아닌 글에 집중해, 김영하가 다녀온 여행지를 독자가 마음껏 상상하게 하려는 의도이다.  


여행이 주는 최고 묘미는 또 다른 세계,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것. 일상이 아닌 낯선 곳에 가면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마주할 때가 있다. 김영하 작가는 비행기가 연착될 때 내가 기다림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얼마나 참을성 있는가 등 시시때때로 부닥치는 시련을 차례로 이겨내다 보면 자신을 다시 보게 된다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인간의 성격은 시련을 통해 드러난다 하지 않았던가. 


여행만큼 강렬한 경험이 어디 있을까. 낯선 곳의 풍경과 냄새는 오랫동안 뇌리에 남는다. 여행 일정이 꼬이거나 맛집 선택에 실패해도 괜찮다. 실패한 여행 같은 건 없다. 그 또한 훌륭한 추억이다. 당시에는 가치 없는 여행이라 생각했어도 10년 뒤에는 생각이 달라질 수 있을 테니까. 


여정을 계획하고 비행기표를 예약하는 순간부터 이미 여행은 시작된다. 여행에 대한 강렬한 기대와 흥분이 마음속에서 일렁이기 시작하는 것도 그때쯤이다. 내 삶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는 것도 바로 그 순간이다. 





다녀왔습니다 뉴욕 독립서점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부러 서점 투어를 떠나기도 한다. 먹을거리, 즐길거리 대신 볼거리에 대한 욕구가 더 강한 탓이다. 여기 책 만드는 사람이 기록한 생생한 뉴욕 서점투어 기록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뉴욕. 이 정글에서 제대로 임대료는 낼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동네 서점들. 『다녀왔습니다 뉴욕 독립서점』은 모두의 우려를 뒤집고 특화된 전략으로 살아남은 작은 서점 19곳을 소개한다.  


1930년대, 뉴욕 맨해튼의 유니언 스퀘어(Union Square)와 애스터 플레이스(Astor Place) 사이 여섯 개 블록에는 독립서점만 48개가 들어서 책의 거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책의 거리에 기념품 가게와 레스토랑이 들어서면서, 서점들은 하나둘 떠나기 시작한다.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서점은 단 한 곳, 스트랜드 북스토어가 유일하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 금싸라기 땅에서 서점이 도태된 것은 당연한 생리이다. 이 와중에 스트랜드 북스토어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바로 특색 있는 경험, 지역 커뮤니티 중심으로서의 공간, 그리고 뚜렷한 주제의 도서 큐레이션 덕분이다. 외국어 강좌를 운영하고, 보드게임 이벤트를 주최하고, 사회 문제를 다룬 책으로만 서점을 채우는 등 주인장의 뚜렷한 소신을 내세워 작은 서점의 약점을 극복했다.  


비단 이곳뿐만이 아니다. 뉴욕 곳곳에서는 아직도 수많은 독립서점이 손님을 맞고 있다. 독서 인구가 줄어드는데도 역설적으로 독립서점들은 순항 중이다. 시대의 변화는 오히려 작은 서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거대 자본의 쓰나미에 맞설 힘이 없다면, 이들처럼 차라리 나만이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제대로 해내면 되지 않을까? 

이 책은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를 귀띔해주는 내용이 아니다. 뉴욕의 독립서점들의 고난과 자구책이 고스란히 엿보여 가슴이 찡하다. 주인공은 독립서점이지만, 내가 사는 이 도시의 구멍가게들은 과연 안녕한지 깊은 고민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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