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우주를 탐험하듯 음악으로 자아 성찰” 피아니스트 김도현
“김도현은 특출한 천재성을 가진 피아니스트입니다. 훌륭한 예술가로 성장할 모든 자질을 갖췄습니다.” (“Do-Hyun Kim is an extraordinarily gifted talent of the highest caliber. He has everything which makes a great artist.” -Sergei Babayan) 김도현의 피아노 실력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국제무대로 이끈 스승, 세르게이 바바얀이 한 말이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피아노의 거장이 이토록 극찬한 젊은 신예 김도현을 만나본다.
김도현, 스위스 방돔 프라이즈 1위 없는 공동 2위
3년 전, 김도현이 방돔 프라이즈에서 1위 없는 공동 2위를 차지했을 때 세상은 깜짝 놀랐다. 22살 젊은 청년이 내뿜는 신선한 에너지가 청중을 압도했다. 마치 피아노와 진한 연애를 하는듯한 그의 연주법을 두고 사람들은 '색다르다', '정열적이다'고 평했다. 특히 방돔 프라이즈 갈라 콘서트에서 선보인 벨라 바르톡 피아노 소나타(Bartok: Piano Sonata BB 88)가 인상적이다. 건반을 땀으로 적시며 몸과 혼을 바친 모습에 일제히 박수가 터진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무대는 제가 처음 국제무대에서 연주를 했을 때인 것 같아요. 2017년 방돔 프라이즈 세미파이널 무대는 정말 특별한 기억이에요. 제가 처음 국제무대에서 연주를 한다는 생각에 첫 곡을 치는 내내 싱숭생숭 했지만 끝나기가 무섭게 관객들의 환호성이 제 귀를 찔렀습니다. 그 뒤에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우레와 같은 환호성과 박수를 받았는데 너무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방돔 프라이즈는 1999년 프랑스 출판그룹인 '방돔 프레스'의 알렉시스 그레고리 회장이 창설한 피아노 국제 콩쿠르다. 스위스에서 열리는 세계적 클래식 음악축제인 베르비에 페스티벌의 일부로 결선 무대가 치러진다. 선우예권이 2014년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던 피아노 국제 콩쿠르이기도 하다. 이런 권위 있는 무대에서, 그것도 첫 참가에서 최고상을 받은 기분이 어떨까? 그는 출전 당시를 떠올리며 다른 참가자들의 프로필을 보고 기가 죽어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떨었다고 고백한다. 대회 전날에는 수면제 반 알을 먹고서야 잠을 이뤘다. 덕분에 잠을 푹 자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연주할 수 있었다. 그는 유명한 음악가들이 섰던 의미 있는 자리에서 연주를 했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심지어 그럴 자격이 있는지도 때때로 의심한다. 그저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했을 뿐, 그리고 그 결과에 감사할 뿐이다.
외고를 준비하다 뒤늦게 예고로 진학
김도현이 피아노를 제대로 접한 시기는 중학교 3학년 때로 일반적인 전공생들에 비해서는 결코 빠르다고 할 수 없는 시기이다. 외국어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던 학생이 갑자기 진로를 틀어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남들보다 늦었다는 압박감이 오히려 건강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제가 중학교 때 부모님이 한 달간 프랑스 파리에 가신 적이 있었어요. 부모님이 안 계신 그 기간에 제가 좋아하는 쇼팽의 연습곡 몇 곡을 혼자 배웠고, 리스트의 곡들도 여러 곡 배우면서 피아노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되었어요. 그리고 부모님이 돌아오셨을 때 말씀드렸죠. 피아노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고.”
피아노를 전공으로 시작한 시점은 다소 늦었을지라도 그는 이미 음악인이었다. 음악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언제 깨달았냐고 물어보자 그가 어린 시절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줬다. 김도현의 부모님은 초등학교 교사 부부이다. 엄마가 연주하던 풍금을 뱃속에서부터 들어서인지 절대음감을 타고났다. 유치원에서 노래를 배워오면 피아노로 치기도 했다. CD플레이어에 각종 음반이나 영어 노래 같은 것들을 틀어서 달달 외우는 게 일상이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 이나 ‘메리 포핀스’ 같은 영화를 보고 그 사운드 트랙들을 따라 부르기도 했다. 특히 열 번째 생일에 선물 받은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Vladimir Ashkenazy)의 쇼팽 왈츠 앨범은 수백 번 이상 들었다. 아슈케나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그저 이끌림이 좋아서 듣고 또 들었다.
“어느 날은 문득 그 음반을 저 혼자 듣는 것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창문을 열고 볼륨을 가장 크게 틀어놨어요. 주변 이웃들과 같이 듣고 싶어서요. 다음날 집 앞에 편지 한통이 꼽혀 있었어요. 음악 좀 조용히 듣자고 적혀 있더군요. 섭섭했어요.”
스승 세르게이 바바얀 권유로 미국 유학
김도현은 서울예고 재학시절부터 한국과 미국의 여러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지금의 스승인 세르게이 바바얀을 만난 건 부산국제음악제 뮤직 아카데미에서였다. 바로 미국으로 건너오라고 제안했지만 그는 한국에서 대학 입시를 치를 후에 미국 유학을 가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돌이켜보면 중요한 결정을 앞둔 고비마다 훌륭한 스승이 길잡이 역할을 했다. 김도현은 인터뷰 내내 '감사하게도..'를 유독 자주 언급했다. 감사하게도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었고, 감사하게도 기회를 얻었고, 감사하게도 큰 상을 받았다고. 그는 감사하다고 말하지만, 실은 재능과 실력, 노력이 모두 갖춰졌기에 가능했으리라.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곧바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클리블랜드 음악원(Cleveland Institute of Music)에서 백혜선, 세르게이 바바얀을 사사했고, 줄리아드 음악원 대학원(Julilliard School)에서 바바얀과 학업을 계속했다. 그의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리고 본격적인 연주자의 길로 들어선 시기와 줄리아드 대학원에 들어간 시기가 맞물린다.
방돔 프라이즈 수상으로 국제 무대에서 가능성 인정받아
아티스트에게 콩쿠르는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오디션 무대와 같다. 그가 수상한 방돔 프라이즈, 뉴욕 영 콘서트 아티스트 인터내셔널 오디션은 특히 그렇다. 여러 라운드의 독주회와 실내악을 보여주고 최종 라운드에서 협주곡을 연주하는 여느 국제 콩쿠르들과는 달리 방돔 프라이즈는 그 라운드 수가 적다. 모든 곡들을 끝까지 완주하는 형식 또한 아니다. 심사위원들은 다른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성악가 등 다양한 음악인으로 구성한다. 피아니스트의 기술적인 뛰어남과 더불어 오케스트라 협연 가능성까지 폭넓게 고려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최고상을 받았다는 의미는 창작성, 상품성, 대중성, 예술성 모두를 인정받았다는 의미와 같다.
“저는 정말 게으르고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에요. 일단 피아노 앞에 앉으면 열심히 하지만 그 앞에 앉기까지 소소한 쾌락을 즐기죠. 평소에 제 몸과 마음이 기쁘고 행복해야 연습이 잘 돼요. 가혹하게 연습을 하려고 하지 않고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향 좋은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머릿속을 환기합니다. 악보를 보면서 이미지를 구상하기도 하고 이리저리 노래를 불러볼 때도 있죠. 피아노 앞에 앉아서 보내는 시간 못지않게 평상시에 마음속으로 연주해보는 훈련이 중요해요.”
정형화하지 않은 감성적인 연주법, 호불호 나뉘어
그의 연주법은 유난히 호불호가 극명하다. 처음 참가한 정식 국제콩쿠르는 작년 봄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에서 열린 뵈젠도르퍼(Bösendorfer) 콩쿠르였다. 1차에서 떨어졌다. 관객들은 그의 연주를 좋아했지만 심사에 참여한 교수들은 점수를 높게 주지 않았다. 그리고 작년 여름, 세계 3대 클래식 콩쿠르 중 하나로 꼽히는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도 준결승까지 진출했으나 최종 결승 무대까지는 가지 못했다. 재미있는 점은 러시아 현지 언론의 반응이다. 이날 콩쿠르 과정을 지켜보던 러시아 기자가 김도현을 극찬하는 칼럼을 써서 준결승에서 떨어진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에게 관심이 집중됐다. 이 때문인지 예정에 없던 베스트 세미 파이널리스트를 위한 특별상을 받았다. 게다가 심사위원 중 한명이었던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로부터 협연 요청을 받기도 했다. 순위권에 들지도 못한 준결승 탈락자에게 이 같은 러브콜은 전례가 없었다.
누군가는 믿을 수 없는 경이로운 연주라고 극찬하고, 누군가는 1차 예선에서 가차 없이 탈락시키는 이유가 뭘까? 김도현은 정형화하지 않은 감성적인 연주 때문이라고 스스로 진단한다.
“음악만 듣거나 연주하면 온갖 다양한 감정들이 떠올라요. 제 악보를 보면 ‘먼 산에서 들려오는 한 남자의 고독한 목소리’ 라던가, ‘주체할 수 없는 행복’ 같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적혀있어요. 그때 제가 느낀 다양한 감정을 솔직하게 적어놓은 거예요. 수줍음이 많아서 제 감정을 드러내는데 소극적이었는데 피아노를 치면서 점차 알을 깨고 나왔죠. 음악에 빠져 감정을 발산할 때에는 아무 부끄러움이 없어요. 그러다보니 소위 말하는 깔끔한 연주가 어려워요. 어떤 곡이든 무대에서 음 하나 틀리지 않고 무결점 연주를 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어요. 요즘은 그 점을 보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뉴욕 영 콘서트 아티스트 국제 오디션 우승
김도현은 현재 클리블랜드 음악원으로 다시 돌아가 최고 연주자과정(Artist Diploma)을 이수하고 있다. 동시에 2017년 뉴욕 영 콘서트 아티스트 국제 오디션 1위 특전으로 각종 연주회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뉴욕과 워싱턴D.C.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해 대중들에게 보석 같은 음악을 선물한다. 앞으로는 쇼팽콩쿠르나 루빈슈타인 콩쿠르, 클리블랜드 콩쿠르 같은 국제 대회의 문을 꾸준히 두드릴 예정이다.
중학교 때부터 크고 작은 콩쿠르 무대에 올라 점수로 매겨졌던 인생을 살았다. 늘 평가와 질책에 긴장해야 했다. 하루에 일곱, 여덟 시간씩 피아노와 씨름하며 외로운 싸움을 이어왔다. 한때는 피아노가 미워 울면서 건반을 두드리기도 했다. 지금도 독소 같은 슬럼프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빠진다. 우리는 친구 혹은 연인이라는 관계를 유지하면서 누군가와 사랑을 한다. 하지만 항상 좋은 친구도 있지만 싸우기도 하고 싫어질 때도 있다. 피아노와 그의 관계도 똑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권태기가 오면 적당한 거리와 휴지기가 필요한 것처럼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에는 조용히 인내하면서 시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다스림 또한 피아니스트로서 중요한 덕목일 테니까.
“무대가 얼마나 유명한가 보다는 무대의 물리적인 크기가 더 부담을 주는 것 같아요. 작거나 적당한 크기의 무대에 서는 것보다 아주 크고 넓은 홀 한가운데에로 걸어가는 것이 더 떨려요. 그 큰 공간에 혼자 외톨이처럼 가운데에 조명을 받으며 걸어가 피아노 앞에 앉는 게 큰 두려움이죠. 또한 무대에 여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연주하는 실내악 연주나 오케스트라와 연주하는 협주곡 무대가 오히려 편하기도 하죠. 함께 하는 사람의 존재가 저에게 따뜻함과 힘을 준다고 할까요.”
김도현은 공연을 해낼 때마다 한 뼘씩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매번 다른 관객을 만나면서 무대를 소중하게 여기고 성의를 다하는 법을 배운다. 또 새로운 오케스트라와 함께 합을 맞춰보면서 색다른 영감을 받는다. 김도현은 친절한 사람이다. 내가 느낀 이 감동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하고 싶어 최대한 공손하고 열정적으로 그 음악을 소개한다.
“음악은 저에게 의사 같은 존재에요. 마음을 치유하죠. 평소에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음악을 통해 표현하고 기쁨, 보람, 재미를 느낍니다. 더 크게 표현하자면 하늘이 주신 가장 높은 단계의 선물입니다. 음악을 통해 창조주의 존재를 느껴요.”
무한한 의지와 열정으로 음악 탐구
인터뷰 중간에 김도현이 영화 한 편을 소개했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SF영화 애드 아스트라(Ad Astra)이다. 지구 밖에 존재하는 생명체를 찾기 위해 무한한 의지와 열정으로 우주를 떠도는 사람들의 심리를 아주 인상적으로 그려냈다. 아름답고도 미스터리하다. 확실히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존재를 쫓아 답안지 없이 항해하는 그들의 모습이 마치 다 높은 차원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음악가와 닮았다. 맹목적인 탐구활동을 하려면 반드시 내 주변 소중한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영웅 아버지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는 우주 비행사가 되는 공적 삶에만 매진하여 아내와의 사적 삶을 포기한다. 김도현 역시 마찬가지다. 가족, 친구들과의 소소한 놀이를 포기하고 곡 해석에 시간을 투자한다. 성실한 음악가로서 그것이 그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서다.
마지막으로 유학생활 중 가장 견디기 힘든 점이 무엇이냐 물었다.
“클리블랜드에는 국밥집이 없어요. 한국에서 대학을 한 학기 다닐 때 해치웠던 수육국밥과 감자탕이 몇 그릇인지 모릅니다. 뉴욕은 맛있는 국밥집이 넘쳐나는 화려한 도시이지만 저 같은 유학생에게는 한식을 사먹는 것이 사치입니다. 뉴욕에 있을 때는 궁핍함에 허덕여서 통장 잔고가 걸핏하면 1달러 였거든요.”
영어 대화라든지, 음악적 성장 같은 대답을 기대했다가 난데없이 국밥집이 없어 슬프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피식 웃음이 났다. 그렇지. 영혼을 데워줄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이 제일 달콤한 법이지. 국밥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천진하고 사랑스러운 24살 청년 김도현의 속살이 제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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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피아니스트
서울예고를 졸업한 김도현은 서울대학교 1학년 재학 때 미국으로 건너가 클리블랜드 음악원에서 백혜선, 세르게이 바바얀을 사사했다. 줄리아드 음악원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다시 클리블랜드 음악원으로 돌아가 최고 연주자 과정(Artist Diploma)에 재학 중이다.
2017 스위스 방돔 프라이즈 콩쿠르 1위 없는 공동 2위
2019 모스크바 국제 차이콥스키 대회 최우수 공연 특별상
*S.CASA (New York 문화.예술 스토리 매거진) 2020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