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성장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김호봉·김남주 미술가 부부의 이유있는 동행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손끝의 솜씨가 아니다. 그것은 예술가가 느꼈던 느낌의 표현이다.” 레프 톨스토이의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세계가 소통하는 수단이며, 일종의 대화와도 같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저마다의 방법으로 표현한다. 그 중 고적한 풍경 한 장에 마음을 뺏겼다. 김호봉 작가의 작품 '꿈, 열망, 망각(Dream, Desire, Oblivion)' 시리즈 중 '잃어버린 시간(lost time)'이다. 유럽식 건물, 명품거리, 부자, 노숙자... 뉴욕을 보여주는 대표적 상징들을 화폭에 단순하게 배치했을 뿐인데 그 여운에 뒷머리가 아득해졌다. 이 낯설고도 익숙한 그림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작품을 만든 김호봉 작가와 아내 김남주 작가를 만났다.
dream desire oblivion-lost time, 36x24inch, oil 2020
김호봉 작가, 뉴욕의 복잡 미묘한 모습 화폭에 담다
뉴욕·뉴저지에서 28년째 활동하고 있는 김호봉, 김남주 부부는 결혼 후 1993년에 함께 유학을 왔다. 김호봉 작가의 '잃어버린 시간(lost time)'은 뉴욕에 도착한 첫 해, 학생의 눈에 비친 소호의 모습이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캐시미어 롱코트를 걸친 여인, 중절모를 멋들어지게 눌러쓴 신사, 고급 가죽 구두를 신은 아가씨로 거리는 가득하다. 그리고 그들이 향하는 곳은 아마도 유명 디자이너 부티크나 명품 매장, 갤러리일 것이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텅 빈 눈으로 힘없이 계단에 걸터앉은 노숙자가 눈에 띈다. 고풍스러운 유럽식 건물과 부티 나는 사람들 틈에서 전혀 이질적이지 않게 섞여 있다. 이것이 뉴욕이다. 누군가에게는 꿈과 낭만의 도시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현장이기도 한 곳.
김호봉 작가에게 뉴욕은 '생존해야 하는 도시'였다. 이 그림은 아티스트들에겐 꿈의 무대인 뉴욕에 이제 막 발을 디딘 학생의 시선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배경은 1995년 즈음이다. 그런데 그가 26년이나 지난 지금, 이 장면을 그림으로 옮긴 이유가 뭘까?
“제가 느꼈던 뉴욕의 첫인상은 빌딩숲 사이로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차디찬 칼바람의 겨울과 블랙입니다. 수많은 블랙 아웃핏의 뉴요커들이 바삐 움직입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을 소재로 이용해 그들의 눈에 비춰진 세상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표현했습니다. 흑백을 이용하여 군중들을 둘러싼 환경을 왜곡하기도 하고 삭제하기도 하여 텅 빈 공허한 공간으로 남겼죠.”
자본주의, 이해타산적 욕망, 인간성 결핍 꼬집어
그림을 자세히 보자. 군중들 머리 위로 눈꽃처럼 숫자가 흩날린다. 이것은 자본주의 심장이라 불리는 미국 뉴욕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해타산적인 인간의 욕망을 수치화한 것이기도 하다. 흑백으로 채워진 차가운 공간 안에 샛노란 나비만이 색깔을 갖고 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흑백 화면 속 빨간 코트 소녀를 연상시킨다.
“나비는 막연한 희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뉴욕은 아메리칸 드림의 대표 도시니까요. 우리 모두 막연한 꿈과 희망을 갖고 이곳에 왔죠. 나비는 가지지 못한 아득한 미래, 신기루인 거죠. 그것을 왜곡된 공간 또는 비어있는 흰 공간에 날려봤습니다.”
김호봉 작가의 그림에는 원시적인 생명력이 흘러넘친다. 그 속에 위트와 유머가 있다. 그의 그림에는 숨은그림찾기 하듯이 유명 배우나 샐럽들의 얼굴이 숨어있다. 이민자의 정서로 뉴욕은 서글픈 도시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마냥 그렇지만은 않다. 활기와 재미가 넘치는 도시이다. 뉴욕의 다양한 얼굴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흡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어요. 어려서부터 미국에 가면 할리우드 배우들과 유명 아티스트들을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요즘 작업에는 유명 예술인이 한 작품에 한 명씩 들어가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마를린 먼로, 데이비드 호크니를 찾을 수 있어요.”
한때 비디오 아트에 매료되기도
김호봉 작가는 뉴욕대학 대학원에서 스튜디오 아트를 전공했다. 학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아티스트가 미국으로 건너와 다른 장르에 눈을 돌린 이유가 궁금하다. 90년대 초반, 미술계 최고의 관심사는 비디오 아트였다. 평면작업을 주로 하던 아티스트에게 입체 설치 미술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김호봉 작가는 비디오 아트의 매력을 한마디로 '사고 영역의 확대 연장'이라고 정의했다. 20세기 후반 들어 새롭게 등장한 소재 덕분에 표현의 폭이 보다 넓어졌다. 미디어 테크놀로지는 화폭의 한계에 갇힌 아티스트들에게 반가운 선물이었다.
대학원 졸업 이후 한동안 비디오 아트에 빠져 있었다.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뉴욕에서 수차례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평면작업으로 돌아온 이유가 뭘까? 김호봉 작가가 비디오 아티스트로 활동하던 당시는 IMF로 한국경제가 하창 휘청이던 엄혹한 시기였다. 모두가 힘들어할때 직업으로서 예술은 사치에 가까웠다. 게다가 비디오아트는 모니터, 기계, 소프트웨어, 스크린 등 각종 첨단장비가 많이 소요되는 이른바 고비용 예술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다 김호봉 작가는 스스로 비디오아트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현실의 벽 앞에서 진한 허탈감과 무력감을 맛본 이후 한동안 작품활동을 하지 못했다. 잠시만 휴지기를 갖자고 다짐한 것이 어느새 10년이 넘어버렸다. IMF 이후 뜻밖의 10년 공백을 가진 셈이다. 뉴욕을 떠나 뉴저지에 터를 잡은 시점부터 다시 다시 평면작업을 시작했다.
뉴욕에서 비디오 아트 작업을 하는 동안 아내 김남주 작가도 함께 전시에 참여했다. 예술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석사 전공이 같은데다 관심 분야 또한 같다. 부부는 선화예고, 홍익대학교 서양화 전공 선후배 사이이다.
동성동본…결혼 못 할 뻔
두 사람은 선화예고 출신 홍익대 서양화과 선후배 모임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동성동본이 그들 가로막았다. 두 사람 모두 김해 김 씨 삼현파 후손이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동성동본 결혼은 불법이었다. 게다가 종친회 총무였던 김호봉 작가의 아버지는 '하필 문중 사람을 데려와 가족들을 곤란하게 하느냐'며 결혼을 반대하셨다. 같은 김해 김 씨라 할지라도 김수로왕의 후손이 아닌 일본에서 귀화한 성임을 증명하면 혼인 신고가 가능하다는 정보를 전해 듣고 어렵사리 결혼에 성공했다. 요즘에야 동성동본이 무슨 대수인가 싶지만, 당시는 9시 뉴스에 나올법한 사건이었다.
같은 점이 많은 부부, 단점보다 장점이 커
같은 학교, 같은 전공, 게다가 같은 성과 파. 이런 공통점이 둘 사이를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전공이 같다보니 서로의 작업을 냉철하게 분석할 수밖에 없다. 때로는 덮어놓고 잘했다는 칭찬이 절실할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남주 작가는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다”고 긍정한다.
“요즘 같은 시기, 여러 생각이 교차하죠. 질병과 생존 앞에 예술은 사치에 가깝다는 생각에 괴로웠어요. 남편이 곁에서 현실적인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예술 선배로서의 조언이죠. 반대로 남편이 나태해지면 제가 채찍질하는 역할을 합니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같이 성장하고 있어요.”
김남주 작가, 캐드 디자이너와 개인 작품 활동 병행
김남주 작가는 디자인 분야에서 유명한 아트스쿨인 뉴욕 SVA(School of Visual Arts)에서 미술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메이시스 백화점 캐드 디자이너(Computer Aided Design designer)로 활동하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메이시스 자체 잠옷 브랜드 프린트 디자인을 담당한다. 잠옷 프린트는 주로 꽃에서 모티브를 얻는다. 그동안 그가 디자인한 꽃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제는 눈을 감고도 그릴 수 있어요. 꽃에 대한 개인적인 사연이 많아서 그런가봐요. 부부가 예술가이다 보니 안정적인 수입원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일하면서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텍스타일 디자인을 시작했죠.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 이제는 제 직업이 되었지만 창작에 대한 욕구는 늘 뜨거웠어요.”
캐드 디자이너이기 전에 그는 미술가이다. 일상에 지쳐 순수 예술에서 차츰 멀어지다 몇 년 전부터 불쑥 예술혼이 꿈틀댔다. 시들어가는 자아를 되찾기 위해 김남주 작가는 작업을 선택했다. 예술은 그에게 가장 익숙하고, 자신 있고,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다.
자아를 찾는 과정 작품으로 표현
뉴욕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와 지금의 정서는 사뭇 다르다. 그때는 어렸고 풋풋했다. 생각을 녹여낼 여유 없이 수박 겉핥기 식의 작업을 위한 작업이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훨씬 농익었다. 김남주 작가는 요즘 자신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되새김질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 과정을 표현한 작품이 '쌍둥이(Twins)', '자화상(Self-portrait)'이다.
작품을 해설해달라고 부탁하자 김남주 작가가 자작시 한 편을 들려줬다.
꽃의 모반
꽃이 싫었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살기 위해
하루 종일 꽃만 그렸다
좁은 사무실에서
꽃향기 날리는 오늘
꽃이 좋아졌다
나는 다시 꽃을 그린다
이제는 나를 위해
꽃잎처럼
날기 위해
캐드 디자이너는 고객의 요구에 맞는 상품을 디자인하는 직업이다. 커머셜 아트를 하면 할수록 자신을 잃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 시는 상품과 예술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자아를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김남주 작가는 직장에서 겪는 목마름을 예술로 푼다. 그러자 애증의 꽃이 사랑의 꽃으로 변했다.
그의 작업 대부분에 꽃이 등장한다. 장옷을 쓰고 눈을 빼꼼 내민 어른과 앳된 얼굴의 소녀 모두 작가 본인이다.
“어렸을 때 제 사진을 작품에 넣었어요. 제가 성장하는 모습을 시공간을 초월한 그래픽으로 구현하고 싶었어요. 장옷에는 색색깔 꽃으로 수를 놓았죠. 틀을 깨고 훨훨 나는 꽃잎을 표현한 겁니다.”
과거 기녀들의 사진에 자신의 얼굴 투영해 새로운 작품 창조
역사의 한 장면 안에 자신을 투영해 과거와 현재를 잇고자 했고, 바탕 사진은 과거 기녀들의 사진을 쓴다. 김남주 작가는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 기녀 등 여성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강인한 힘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들의 사진 속에 자신의 얼굴을 대입해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면서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
SNS로 소통하며 아쉬운 달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으로 인해 예정된 전시 일정을 취소한 상황이다. 지난 8월 뉴저지 아트모라 갤러리(Art Mora Gallery) 단체전에 작품을 낸 것이 전부이다. 오프라인 전시를 대부분 취소한 대신 SNS로 관람객들과 만났다. 김호봉 작가는 '공연자/아티스트 챌린지'에 참여해 열편의 사진과 사연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게시한 뒤 바통을 이어받을 다음 예술가를 지목하는 방식이다. 김호봉 작가는 80후반부터 지금까지 작업해 온 예술 발자취를 차근차근 짚어봤다. 아내 김남주 작가는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마련된 '여성작가 챌린지(Women Artist Challenge:오래달리기)' 에 참여했다. 흩어져 있고 기회의 장이 부족해 알려지지 않은 값진 작업들을 공유하는 자리이다. 시와 그림 세편을 올렸다. 김남주 작가는 갤러리에서 직접 얼굴을 마주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나마 소통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조심스럽게 활기를 찾아가는 뉴욕의 미술시장에서 하루 빨리 김호봉, 김남주 작가의 작품들을 눈으로 감상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
김호봉
홍익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 졸업 후 뉴욕대학 대학원에서 Studio Art를 전공하면서 비디오 아트에 매료됐다. 뉴저지로 건너와 다시 평면작업을 이어갔다. 현재는 코리안 커뮤니티센터와 개인스튜디오 아트컴센터(Artcomcenter)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예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1993 MBC미술대전 특선, 1992 중앙미술대전 우수상, 1989 중앙미술대전 특선을 수상했다.
김남주
홍익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 졸업 후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 대학원(SVA, MFA of Fine Arts, New York)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현재는 메이시스 백화점 캐드 디자이너(CAD designer)로 재직하면서 개인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90 Award of the Korea Art Grand Prize Competition, National Museum of Modern Art, Seoul
1989 Award of the National Univ. Art Competition, Seoul
1989 Award of the Contemporary Print Making of Grand Prize Competition, Fine Arts Center, Seoul
*S.CASA (New York 문화.예술 스토리 매거진) VOL.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