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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Dec 05. 2020

미국 vs 중국 생물학무기 대결-딘 쿤츠 '어둠의 눈'


40년 전 소설이 요즘 뜻밖의 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을 예견했다며 갑자기 소환된 소설, 딘 쿤츠 작가가 쓴 『어둠의 눈』이다. 사라진 아들을 구하기 위해 거대 음모에 접근해가는 아버지의 집요한 부정이 소설의 기본 줄기이다. 배경에 우한 소재 연구소에서 유출된 바이러스 ‘우한-400’이 등장한다.  


대체 어떻게 다뤘기에 우한 바이러스를 언급한 것만으로 40년 만에 전 세계 도서 차트를 역주행한 것일까? 『어둠의 눈』은 단 4일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450쪽 분량으로 담아냈다. 일명 벽돌책이라 불리는 거대한 분량이지만 한 호흡으로 단번에 읽어내릴만큼 몰입도가 높다. 소설 내내 흐르는 초자연적 현상은 공포, 서스펜스, 액션, 로맨스가 버무려진 한 편의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그 물질은 우한 외곽에 있는 DNA 재조합 연구소에서 개발되어 '우한-400'이라는 이름이 붙었소. 그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인공 미생물 중 400번째로 개발된 독자 생존이 가능한 종이었기 때문이오.· 저 바깥세상에서 사는 많은 사람이 생화학전이 일어나리라 믿고 있소. 도덕적 가치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지. 우리가 맞서 보복할 수 없는 생화학무기를 만든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그 무기를 사용할 거요.” 


40년 전 ‘코로나19’를 예견한 소설? 

미리 밝히자면, 이 소설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관한 소설은 아니다. 소설이 끝나기 직전, 435쪽에 처음 우한이라는 지명이 언급된다. 2020년 현재 창궐하고 있는 바이러스와 연관 지을 수 있는 연결고리는 거의 없다. 소설 속 '우한-400'은 정부가 비밀리에 연구하는 생화학 무기로 묘사된다. 미국과 중국의 생물학무기 연구경쟁에 발생한 참혹한 인간말살이 스토리의 배경이다. 바이러스 실험대상이 된 12살 소년을 구해내기 위해  티나는 미국 비밀조직에 맞서 쫓고 쫓기는 사투를 벌인다. 책에서 중국이 우한에서 바이러스를 이용한 생물학무기를 만들자 엄마는 미국으로 망명한 중국인 생물학자와 함께 비밀리에 연구소를 만들어 연구에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의미 있는 이유는 예상치 못한 짜릿함을 선물해서이다. 코로나를 예견한 소설이라던데, 도대체 바이러스 이야기는 언제 나오는 거지? 하면서 궁금증으로 시작하다가 어느새 바이러스는 잊고 책이 주는 즐거움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모양새다.  


거대 음모에 다가서는 4일간의 추적 스릴러 

줄거리는 이렇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쇼 제작자로 일하는 크리스티나 에번스는 의문의 버스 사고로 열두 살 난 아들 대니를 잃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뒤, 그녀에게 자꾸만 기괴한 일이 일어난다. 대니가 살려달라고 외치는 악몽, 자꾸만 칠판에 나타나는 ‘죽지 않았어’라는 메시지, 혼자서 저절로 켜지는 라디오. 마치 아들이 엄마에게 보내는 것과 같이 느껴지는 메시지. 그러고 보니 티나는 사고 후 아들의 시신을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퍼뜩 떠오른다. 시신이 많이 훼손돼 엄마가 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주변 조언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티나는 아들의 죽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졌다. 무덤에서 시신을 꺼내기로 결심하고 변호사를 만나는데, 그때부터 기묘한 사건사고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아들 죽음의 비밀을 추적하는 엄마의 애끓는 모정은 진부한 설정이다. 그러나 작가는 여기에 초자연적 현상을 가미해 흥미롭게 변주했다. 아들의 '죽지 않았어'라는 메시지가 나타나면 주변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전기 기구가 제멋대로 깜빡거린다. 꿈속에서 미리 본 장면이 현실에서 똑같이 펼쳐지는 등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생긴다. 단서를 찾아 사건을 추적해가던 도중 ‘우한-400’ 바이러스를 이용한 정부의 거대한 음모가 1년 전 버스 사고와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티나가 겪는 초자연적 현상을 묘사한 장면들은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비밀리에 인간병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사라지거나 죽임을 당하는 설정, 아이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고, 엄마는 사라진 아이를 찾기 위해 음모를 추적해가는 기본 플롯이 닮았다. 작가의 상상처럼 코로나19는 실제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일까? 현재의 코로나 상황보다는 <기묘한 이야기> 속 장면들이 더 선명하게 겹친다. 


딘 쿤츠, 아날로그 감성 스릴러의 정점 보여줘 

이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풀어낸 딘 쿤츠 작가는 누구일까? 영미권에서 딘 쿤츠는 스티븐 킹과 함께 서스펜스 소설계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이지만 한국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에 『어둠의 눈』이 40년 만에 재출간되면서 그의 이름이 각인됐다. 이 소설은 딘 쿤츠가 ‘리 니콜스(Leigh Nichols)’라는 필명으로 1981년 출간한 초기작이다. 1980년대 출간된 스릴러인 만큼 스릴러 장르 특유의 장치와 문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북수 대상을 정해 갈가리 찢어 죽이는 이른바 피의 복수보다는 아들의 사고가 은폐돼야 했던 어두운 진실에 다가가며 아들을 되찾는데 집중한다. 총은 가지고 다니되 살인을 저지르지 않으려 몸을 사리는 모습은 아날로그 감성 스릴러의 정점을 보여준다. 피와 살인이 일상적으로 다뤄지며 잔혹한 묘사가 자주 등장하는 여느 스릴러에 질린 독자들에게 딘 쿤츠의 작품은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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