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끌로이 May 22. 2020

바이러스 폭풍,대유행은 돌고 돈다- 지나 콜라타『독감』


'바이러스 폭풍, 대유행은 돌고 돈다' - 지나 콜라타 『독감』 



혜민 스님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했다. 스님의 말씀은 내 마음 다시보기 이었겠지만, 요즘으로 빗대자면 위기가 닥치니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사회의 민낯 확인하기 정도일 것이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번지면서 몰랐던 사실이 하나씩 고개를 든다. 사람이든 사회든 스스로 적나라한 바닥을 드러내면서 정체를 폭로하고 있다. 선진국인 줄 알았던 일본의 불투명성, 미국의 무대책, 유럽의 안일하기 짝이 없는 의료체계.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한 톨이 흩뿌린 나비효과는 엄청나다. 무서운 것은 그 나비효과가 이제 막 시작되리라는 것.  


인류의 역사와 함께 진화한 감기 바이러스 

그런데, 이쯤 돼서 궁금한 것이 있다. 역사를 보면 인류는 끊임없이 균과의 전쟁을 벌여왔다. 각종 독감, 사스, 메르스, 신종 플루 등 이름만 바뀌었을 뿐 늘 인류와 함께해 왔다. 전염병이라고 하면 우리는 에볼라, 흑사병처럼 특이하고 무시무시한 증상을 가진 병을 떠올린다. 그 누구도 독감을 치명적인 질병으로는 여기지 않는다. 10년 내지 30년을 주기로 등장하는 살인 독감들은 우리의 생각을 비웃는다. 1957년 아시아 전역을 긴장시키며 1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시아 독감, 1968년 7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홍콩 독감, 사스, 코로나...  


1918년, 살인 전염병이 세계를 강타하다 

이 중에서도 20세기 창궐했던 각종 전염병들 중 가장 악랄하고 무서운 질병은 무엇일까? 심장병, 암, 뇌졸중, 에이즈로 연간 죽는 사람의 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엄청난 위력을 가진 질병, 바로 1918년 스페인 독감이다. 여기 인류를 위협하는 공공의 적 바이러스를 과학자의 시선으로 흥미롭게 파헤친 책이 있다. 『독감』으로 번역된 이 책의 원제는 'FLU (The story of the great influenza pandemic of 1918 and the search for the virus that caused it)'이다.  


인류 역사와 함께 반복되는 독감의 공포 추적 

이탈리어로 인플루엔자는 '추위의 영향(Influenza di freddo)'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독감 하면 겨울철이라는 계절적으로, 불편한 질병쯤으로 여겨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918년 스페인의 사정은 달랐다. 약 2500만 명이 사망한 치명적인 살인자이다. 이 숫자는 제1차 세계대전 사상자보다 많다. 하지만 그 후로 이 질병은 완전히 잊혀졌다. 발생 당시의 엄청난 위력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잊힌 스페인 독감에 흥미를 느낀 지나 콜라타(Gina Kolata) 박사는 당시의 끔찍한 상황을 생존자들의 증언과 문서 기록 그리고 과학적 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전염병을 추적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의학 추리 소설 형식으로 구성해 과학 서적이 흥미진진하기까지 하다.   


1918년 2월, 스페인의 한적한 관광 도시 산세바스티안에 독감이 찾아왔다. 여느 독감이 노인과 어린이들을 주로 공격하는 반면 이 독감은 젊고 건강한 성인들을 집중 공격하는 듯했다. 두 달 사이 스페인에서만 800만 명이 독감에 걸렸고 유럽의 다른 나라들을 비롯해 미국과 아시아 국가들도 습격을 받았다. 독감은 전쟁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이 죄다 독감을 앓는 바람에 작전을 연기해야 했다. 여름이 되면서 독감이 가장 기승을 부렸던 나라들조차 회복기에 접어들었고 독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몇 달 후, 독감은 더욱 강하게 돌아와 인류에게 복수한다. 감염자의 약 20퍼센트 정도는 경미한 증세를 보이다가 별 탈 없이 회복됐지만, 나머지 80퍼센트는 생명이 위독했다. 이 독감은 곧 미국에 상륙해 전쟁을 준비하던 전국 곳곳의 군사 기지들을 공격한다. 한 달 사이 미국인 12,000명이 사망했고 잠잠해지기까지 5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았다. 그리고 지금, 1918년 스페인 독감과 꼭닮은 코로나19가 치명적인 살인자가 되어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질병의 원인은 도대체 무엇일까?  

지나 콜라다 박사팀은 알래스카의 영구 동토에 묻힌 여성의 허파 조직, 조직 표본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이등병의 허파 조직에서 독감 바이러스 조각을 찾아냈고 헤마글루티닌 유전자 염기 서열을 분석했다. 수천만 명을 죽인 살인마, 1918년 독감 바이러스를 끝내 체포한 것이다. 그러나 이 독감이 가진 치명적인 살인 무기가 무엇이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100년 전 사건이기에 전파 경로를 찾는데도 한계가 있다.  


“사람들은 심장병처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질병을 "다인자성(多因子性)" 질병이라고 부른다. 단일한 원인이 없거나, 혹시 단일한 원인이 있다고 해도 그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뜻이다.”  (109쪽)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변이해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바이러스에 걸릴까?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를 감염시키는 반면에 다른 종은 감염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때로는 하나의 바이러스가 여러 종에서 전염될 수 있다. 1968년 홍콩 독감의 원인이 다름 아닌 H5N1, 조류 독감이라고 밝혀졌다. 결국 사람에게서 닭으로, 닭에서 다시 사람으로 감염되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큰 난관은 바이러스가 사람 대 사람으로 쉽게 옮겨 가도록 스스로 변이를 한다는 것이다. 일찍이 역사학자 투기디테스는 바이러스의 놀라운 변이성을 경고한바 있다. 아테나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 패한 요인이 전염병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전염병은 격심한 무절제와 방종을 낳았다.”고 했다.  


도대체 이 바이러스 전쟁에서 인간이 승리할 방법이 있기는 할까? 지나 콜라타 박사는 돼지 독감, 조류 독감에 나타나듯 해당 육류를 먹지 않는 것으로 끝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꼬집는다. 마스크를 쓰고 손을 깨끗하게 씻는 것은 단지 전염 경로를 막는 예방수칙일 뿐 해결책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바이러스가 일으킬 대재앙의 공포를 올바로 직시하고 인간의 무력함을 인정하는 일이 우선이다. 공중보건이 잘돼 치사율이 높지 않다고 절대 안심할 수 없다. 예방과 조기진단, 정부의 빠른 대응력이 열쇠인 셈이다. 지금 미국에 살고 있는 많은 한국인들은 강대국이라 불리는 나라의 실망감과 한국이라는 나라의 국뽕 그 중간 어디쯤에 마음이 가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이 사치가 되던 그 시절, 구슬 같던 첫사랑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