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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Mar 18. 2020

사랑이 사치가 되던 그 시절, 구슬 같던 첫사랑 이야기

박완서 『그 남자네 집』



“다 쓰고 나니 내 안에서 중요한 게 빠져나간 것처럼 허전하다 힘든 것도 있었지만 이 소설을 쓰는 동안은 연애편지를 쓰는 것처럼 애틋하고 행복했다. 이 나이에 연서를 쓰는 기쁨과 고통을 누리게 해준 출판사에 감사하다.”  

첫사랑에 대한 자전적 장편소설 집필을 마친 77세 작가가 책머리에 적은 글이다. 그의 말마따나 그 나이에 스무 살 기억을 소환하는 기분은 어땠을까? 지금은 고인이 되고 없어 미처 답을 들을 수는 없지만, 책 속 표현에서 그 때의 감정이 언뜻언뜻 삐져나온다. 한국전쟁 막바지 남루하고도 혼란스러웠던 그 시절, 사랑만큼은 찬란하게 화려했다. 


전쟁 세대, 무채색 열정의 추억빛 

『그 남자네 집』은 박완서 작가가 50여 년을 꼭꼭 여며두었던 첫사랑을 조심스레 펼쳐 보인 기록이다. 돈암동 후배네 집에 놀러갔던 주인공 '나'는 돈암동 안감천변에 살던 첫사랑 그 남자를 떠올린다. 나는 미군부대를 다니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그러다 먼 친척뻘로 홍예문이 달린 널찍한 기와집에 사는 부유한 집안 막내아들이자 상이군인이자 문학과 예술을 좋아하는 청년 그를 만난다. 생존만이 가치 있던 그 시절, 그 남자의 문학과 음악과 낭만, 그리고 사랑은 빛이 났고 그 자체로 사치스러웠다. 


제목이 주는 포근하고 아련한 느낌과는 대조적으로 시절은 혹독했다. 그래서일까. 절절하게 애끓는 감정선 보다는 정제된 냉소적 표현이 주를 이룬다. 작가는 시종일관 그 시절을 담백하게 묘사한다. 아득한 첫사랑쯤으로 기억되는 그 남자는 먼 친척에, 한 살 어린 사람이고 시를 사랑하는 낭만적인 사람이지만 늙은 노모를 홀대하는 철없는 백수이다. 멋있어 보일 수는 있었으나 여자가 인생을 걸고 함께 걸을만한 믿음직한 남자는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그와의 만남은 아련한 추억 즈음으로 접어두고 안정적인 은행원을 택해 결혼하고 만다. 그 남자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표현한 구절이 있다.  


“나의 눈물에 거짓은 없었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 


작고 단단한 집을 선택해야만 했던 엄혹한 시절 

‘나’는 젊을 적 자신을 '새대가리'였다고 표현한다. 한 다큐멘터리에서 수컷이 집을 지어놓으면 암컷은 그 집만을 보고 수컷을 선택한다는 어떤 새들의 짝짓기 장면을 떠올리면서였다. 그녀가 과거를 회상하며 앉아있던 카페는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짝을 고를 때 상대의 집이 얼마나 작고 단단한지를 따지진 않을 테다. 반면, ‘나’는 결혼할 조건으로 집 하나만을 봤다. 크고 방이 많음 뭐해. 포탄 자국과 빗물 구멍은 전쟁과 가난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과 같았다. 그녀는 그래서 작고 단단한 집을 선택했다. 


이루어질 수 없지만 끝도 없는 첫사랑 

전쟁의 아픔, 자본주의 비판, 여성 운동의 허실을 집요하게 파헤치던 작가는 마지막에는 결국 사랑을 택한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시절에도 사랑은 있었고 어두울수록 더 소중했다. ‘나’는 그 남자와 연애 중일 때에 은행원과 결혼을 결심했고, 결혼 생활 중에 그 남자와 만나길 원했다. 가장 안정적인 삶을 선택했으면서도 나는 완전히 안착하지 못한다. 그 권태를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건 로맨스였다. 사랑이 아니라 로맨스. 그 로맨스는 그녀가 말했듯 일상의 무의미를 뚫고 빛을 발하며, 지루한 시간을 맥박 치며 빛나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꿈꾸던 로맨스는 오래가지 못했다. 약속한 날 나오지 못한 그 남자. 전쟁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로맨스는 닿을 수 없는 꿈같은 것이었다. 허상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 남자에게 나는 야속한 말을 하고 만다. “어리광 좀 작작 부려 이 새끼야. 이 한심한 새끼야.”라고. 불운한 시대를 잊고 또 다시 로맨스를 꿈꾼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을 것이다. 구슬 같은 처녀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파괴된 사회에서 스스로 상흔을 치유한 사람들 

전쟁과 가난이 인류 최대의 악, 돈은 그보다 더 큰 악이라 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전쟁, 가난, 돈이 만들어낸 인간상이었다.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여러 등장인물들의 과거뿐 아니라 현재 모습을 담아낸 데 있다. 자전적 소설이기에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작가와 함께 나이 들고 성장해간다. 현재는 그들이 아픔을 치유하고 고통을 받아들여 내화시킨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본인의 상흔 역시 치유되었음을 암시한다. 


“우리에게 시가 사치라면 우리가 누린 물질의 사치는 시가 아니었을까. 그 암울하고 극빈하던 흉흉한 전시를 견디게 한 것은 내핍도 원한도 이념도 아닌 사치였다. 시였다.” 


전쟁 전·후 완전히 달라진 삶 

전쟁 후 삶을 지탱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해 그 시대를 미루어 짐작하는 재미가 있다. 수줍던 올케는 억척바리 동대문 의류 도매상으로, 가문의 정통을 중요시하는 친정엄마는 하숙을 치며 생계를 유지하고, 미군이 쏜 총에 아버지가 죽었지만 먹고 살기 위해 미군 부대에서 일하는 춘희. 모두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소설에서 내가 그 남자를 추억하는 이유도 그럴 것이다. 외도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고된 일상 속에서 누리는 정신적 사치에 가깝다.  


‘나’는 마지막에 장님이 된 그 남자와의 포옹을 물처럼 담담하고 완벽했다고 표현했다. 그 포옹은 영혼의 갈망인지 몸의 갈망인지도 분별할 수 없게 했던, 전쟁과 가난을 함께 겪어온 동지애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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