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씩씩하게

by 끌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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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초반인 부모님이 얼마 전 영정사진을 찍으셨다. 그냥 찍어 두신 거라 하셨다. 30대 자식에게 노후 준비란 고작해야 보험과 예금관리가 전부이다. 반면 60대 부모님의 노후 준비에는 장례가 포함돼 있었다. 사는 문제보다 죽는 문제가 더 가까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죽는 게 뭐라고>(사진)는 유방암 재발로 2010년 세상을 뜨기까지, 마지막 2년을 기록한 책이다. 지난 주 소개한 책 <사는 게 뭐라고>에서 유쾌한 생활 담론을 제시한 사노 요코 작가의 ‘뭐라고 시리즈’ 완결판이다. <죽는 게 뭐라고>에서 작가는 “돈과 목숨은 아끼지 말라”라는 신념을 강조하면서 죽음을 당연한 수순이자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유의 직설로 담담하게 독거 노년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투병기간에 써졌어도 이 책이 암투병기는 아니다. 사노 요코 작가는 암과 싸우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는 접어두고 인생의 마지막은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를 쓰고 있다. 오죽하면 책의 일본어 제목이 ‘죽을 의욕 가득’일까. 작가의 아들이 무심코 했던 말이라고 한다. 시한부를 선고 받고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써버리는 모습은 마치 죽음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듯 보인다.



‘누가 죽든 세계는 곤란해지지 않아요. 그러니 죽는다는 것에 대해 그렇게 요란스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내가 죽으면 내 세계도 죽겠지만, 우주가 소멸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게 소란 피우지 말았으면 해요.’

-사노 요코 작가의 <죽는 게 뭐라고> 본문 중-



일흔의 나이에 유방암이 재발했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사노 요코 작가는 항암제를 거부했다. 산송장과 다름없는 몸으로 생명만을 연명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또렷한 정신이 남아있을 때 어떻게든 깨끗하게 죽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렇게 죽음에 의연했던 작가도 암의 고통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죽는 건 아무렇지도 않지만 아픈 건 무섭고 싫었다. 결국 호스피스에 들어가 그곳에서 자신처럼 암의 고통을 피해 도망 온 사람, 하루가 다르게 죽음을 향해 미끄러져가는 사람, 그리고 그들의 가족을 만난다. 객관적인 위치에서 다른 사람의 죽음을 관찰하다 보니 너무 멀지도 비통에 젖을 만큼 가깝지도 않은 2.5인칭의 시선이 됐다고 말한다. 그리고 스스로 되뇐다. “훌륭하게 죽고 싶다.”


죽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는 살아 있다. 이 책에서 사노 요코 작가는 결코 살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다. 지나온 삶을 반추하면서 상념에 잠기지도 않는다. 용기 있게 살라고 함부로 충고하지도 않는다. 죽을 때까지는 살아있으므로 그저 남은 동안 제대로 살다 죽고 싶을 뿐이다. 사노 요코 작가가 죽음을 준비하는 태도는 초연하다 못해 박력 넘치기까지 하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앞 뒷면과 같아서 누가 먼저, 누가 우선이라고 할 것 없이 이어진 것인데 삶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아도 죽음을 말할 때에는 유독 입을 다물게 된다. 죽음을 애써 외면하는 이유는 사실 두렵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보면 하나같이 안타깝고 슬프다. 그리고 죽음은 늘 들이닥치거나 선고되거나 벌어지기 마련이다. 이 책은 불청객처럼 들이닥치는 죽음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환자가 아닌 사람으로 살다간 할머니의 기록이다.


아직까지 나에게는 죽음이 남의 일처럼 아득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이제는 다가올 죽음에 대해 3인칭 관찰자 시점이 아닌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진지하게 고민하려 한다. 잘 사는 기술 못지않게 죽는 기술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생의 한 과정이라면 사노 요코 작가의 태도를 닮고 싶다. 미련도 후회도 없이 살다 씩씩하게 죽음을 맞이한 그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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