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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Nov 20. 2022

작별인사


 


이 책을 읽고 나면 살고 싶어진다. 우리 모두는 한정된 생 속에 놓인 생명체일 뿐인데 종종 삶과 죽음의 의미를 잊을 때가 있다. 의미 있는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 인간들은 의미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고통에는 과연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고통에는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건 의미가 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의식이 있는 존재들이 이 우주에 태어날 수밖에 없고, 그들은 살아 있는 동안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의식과 충분한 지능을 가진 존재라면 이 세상에 넘쳐나는 불필요한 고통들을 줄일 의무가 있다.  


소설 <작별인사>는 한 소년이 작은 새의 죽음을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유명 IT 기업 연구원인 아버지와 평화롭게 살아가던 철이는 어느날 갑자기 수용소로 끌려가 난생처음 날것의 감정으로 가득한 혼돈에 처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마주한다. 자신처럼 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을 만나 처음으로 생생한 소속감을 느끼고 따뜻한 우정도 싹틔운다. 철이는 그들과 함께 수용소를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그 여정에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배경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 이미 닥쳤거나 곧 닥칠지도 모를 가상의 사회 모습을 그리고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의 시선은 지구에서의 짧은 생을 넘어 우주적 시공간으로 확장된다. 우주는 인간이 비로소 참된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곳, 작별이 작별이 아님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세계보건기구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지 2년이 지나서야 김영하 작가는 <작별인사>의 개작을 마쳤다. 당초 <작별인사>는 한 2019년 한 신생 구독형 전자책 서비스 플랫폼으로부터 짧은 장편소설을 써 달라는 청탁을 받고 집필한 200자 원고지 420매 분량이었다. 원래 <작별인사>를 조금 고친 다음, 출간할 예정이었다. 그러다 2020년 3월,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이 시작됐다. 뉴욕의 텅 빈 거리에는 시체를 실은 냉동 트럭들이 음산한 기운을 풍기며 서 있고, 늘 관광객으로 붐비던 파리, 런던, 밀라노 거리에 인적이 끊겼다. 작가들이 오랫동안 경고하던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갑자기 닥친 듯 보였다.  


김영하 작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썼던 경장편 원고가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소설을 처음부터 다시 고쳐나가기 시작한다. 420매였던 원고는 약 800매로 늘었고, 주제도 완전히 달라졌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가르는 경계는 어디인가’를 묻던 소설은 ‘삶이란 과연 계속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세상에 만연한 고통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 것인가’, ‘어쩔 수 없이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팬데믹이 개작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고, 원래 <작별인사>의 구상에 담긴 어떤 맹아가 오랜 개작을 거치며 발아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대로 거기 남았다. 그리고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죽거나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남아 지켜보았다. 오래지 않아 내 몸 여기저기에도 서서히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지만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가끔은 바다에서 날아온 갈매기가 거기 앉아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곤 했다…어느 날, 나는 오두막의 포치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공동체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문득 이 넓은 대지에 인간을 닮은 존재는 이제 나 하나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는 강렬한 확신이 들었다. p292 


이야기의 초반에 작가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당연하게 여기던 특성들을 가차없이 처분해버린다. 모든 것을 쳐내고 커다란 공허를 조성한 뒤, 기발한 장치를 통해 하나씩 돌려주며 인간의 인간됨에 차근차근 경탄을 보낸다. 인간이 갖고 있는 감각, 몸에서 끊임없이 배설물을 내보내야 하는 지저분함, 냄새를 풍기는 특성, 죽음을 미리 인식하고 두려워하는 바보 같은 습성을 일일이 어루만진다.  


숨 막히게 진지한 주제를 통과하다보면 이내 죽음과 맞닥뜨리게 된다. 죽음 앞에 떨며 벌거숭이가 됐을 때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이 인상적이다. 인간의 유한함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쩐지 불로장생이 탐나기도 할 때 이 책을 읽어보자. 영원한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과연 선택할 것인가, 우주의 시간 속에서 작별은 정말 영원한 작별일까.  


<작별인사>는 표면적으로 SF장편소설로 보인다. 인공지능이 의식을 갖게 되는 특이점에 곧 도달할 것이고 문학, 예술 등 인간 고유의 창작 영역을 점령할 것이라고 호들갑 떠는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한 인간중심적인 서사 편에서의 반발처럼 읽힌다. 김영하 작가는 여전히 인간 고유의 그 무엇이 끝내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인간과 인공지능, 마음과 프로그램, 죽음과 불멸, 서사와 반서사 간의 심연에 놓인 외줄을 타며 우리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는데 그 끝에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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