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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Nov 27. 2022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결정 장애란 무엇일까? 누구나 결정을 위해 고민을 한다. 고민을 하다가 선택해야 하는 시간을 놓쳐버리거나 사소한 결정조차 망설이는 사람에게 우리는 너무 쉽게 장애를 끌어 붙인다. 결정 장애는 현대사회의 키워드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보면 상대를 못난 사람으로 꼬리 붙여 놀리는 단어로 들린다. 모든 선택에는 책임과 대가가 따르는데, 아무것도 손해보고 싶지 않은 욕심이 결국 결정을 방해하는 격이다.  


지나치게 남의 눈치를 살피는 습관도 결정을 방해한다. 내 결정을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닐까, 또는 너무 모양 빠져 보이려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과연 후회 없는 선택을 하는 방법이란 게 있을까? 안타깝게도 없다. 다만 내가 이미 선택한 것을 최고의 선택으로 만들 수는 있다. 이렇게 이해하면 선택에 대한 부담과 선택에 드는 시간이 많이 줄어든다.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느라 정작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속으로만 상처를 삭이는 일이 익숙한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차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조곤조곤 달래는 유수진 작가의 위로에 귀 기울여보자.  


오늘도 일어나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반복되는 시시한 일상들로 하루가 채워지지만, 우리는 그 사이사이 수많은 감정들과 마주한다. 회사에서 의견을 말했다가 거절당한 민망함부터, 누군가 농담이라고 던진 말에 받은 아픔, 속상한 일을 공감해 주지 않는 친구에게 느낀 서운함, 열심히 해온 일이 무의미해 보이는 공허함까지. 가슴 한편에 차곡차곡 쌓여만 가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지만 상대의 무심한 반응에 상처받을까 봐, 스스로가 초라해 보일까 봐 우리는 속마음을 제대로 꺼내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유수진 작가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정작 스스로 소홀했던 사람들에게 가슴속 상처를 대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책에는 주위 사람들과 관계 맺고, 사랑하고, 일을 할 때, 그리고 나다운 모습을 잃어버려 방황할 때 경험했던 43가지 속마음을 담고 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던 응어리를 풀어낸 글을 읽다 보면, 마치 나를 대변하는 일기장을 보듯 그동안 고민하고 힘들어했던 문제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헤아리게 된다.  


위태로운 속마음을 스스로 꺼내놓기. 말은 쉽다. 수영이나 자전거처럼 이 행위도 반복 연습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찾아가 말로 하기 어렵다면 일기쓰기로 시작해보자. 아무리 혼자만 읽는 일기장이라 할지라도 처음에는 발가벗겨진 것처럼 부끄러울 것이다. 매일 밤 이불 킥을 날리며 괴로워할 수도 있다. 그런데 뭐든지 반복해서 겪다보면 별거 아닌 일이 된다. 수영복도 처음에는 쑥스럽지 수영장에 빠져서 놀다 보면 쑥스러움이고 뭐고 없어지니까. 


유수진 작가는 말한다. 콤플렉스였던 못생긴 손톱을 더 이상 감추지 않게 되자 몸의 움직임이 편해진 것처럼,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글로 꺼내고 나니 가죽백 같던 마음이 에코백처럼 가벼워졌다고. 마음은 모양이 없지만 꺼낼수록 구체적인 모양으로 만들어진다고 말이다. 


추수감사절이 지나고 이제 달력 마지막 장을 남겨두고 있다. 연말이 되니 괜스레 마음이 몰캉해진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가족을 떠나 낯선 땅 미국에 자리 잡게 된 이민자들에게 연말은 잔인한 달이다. 혹독한 추위에 가뜩이나 시린 코끝이 가족 생각에 더 찡해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일수록 마음을 꺼내놓고 나누는 건 어떨까.     

겉으로 강인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손잡이는 필요하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천장에 달린 손잡이를 꽉 붙잡지 않으면 갑자기 정차했을 때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발라당 넘어지는 것처럼 마음이 흔들거릴 때 다잡아줄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유수진 작가는 그 수단으로 글쓰기를 택했다. 굳이 쓰기가 아닐지라도 꾸준히, 편안하게, 즐겁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괜찮다. 손잡이는 글쓰기가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종교가 될 수도 있다. 함께 버스 천장에 달린 손잡이를 나란히 잡고 안전하게 귀가하고 싶은 연말이다.   


결국 우리의 고향은 사람이겠지. 낯선 환경에 부딪칠 때마다 의지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내 편에서 응원해주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낯선 환경은 금세 익숙하고 편안한 고향이 되었다.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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