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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Dec 07. 2022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아이비리그 교수들이 선정한 고등학생 필독 도서 100선'. 책 띠지에 이런 광고 문구가 붙으면 괜히 눈길이 간다. 반드시 읽어야 하는 좋은 책인 것만 같고, 다른 사람 다 읽는데 나만 안 읽으면 뒤처지는 것 같아 조바심이 든다. 뻔한 상술임을 알면서 번번이 당하는 이유가 뭘까? 


여기 독서의 관행을 깬 파격적인 책이 있다.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다. 제목마저 파격적이다.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꼽히는 명저는 많지만 막상 대화 속에 책 제목이나 내용이 등장하면 그 책을 읽지 못한 사람들은 상당한 당혹감을 느낀다. 그렇기에 "그 책을 정말 읽어 봤습니까?”라는 질문은 무례하며 사회적 금기이다. 이 책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언급할 수 없다는 사회적 금기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책을 펼쳐들면 으레 정독, 완독의 의무를 느낀다. 쉽게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고전을 많이 안 읽었다는 죄책감, 정독하지 않고 대충 읽었다는 자책감, 책을 일어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책에 대해 떠드는 소란스러움에 부끄러워진다. 여기에 대해 피에르 바야르는 고민하지 말라고 단언한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당연시해온 독서문화와 이에 대한 금기를 되짚어가며 독서의 목적과 방법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소위 지식인 또는 교양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책을 읽지 않고도 그 내용을 능히 파악하는지 아닌지로 구분된다는 대담무쌍한 주장까지 전개한다. 


이 책에는 무질, 폴 발레리, 발자크, 오스카 와일드에서 소세키, 그레이엄 그린, 움베르토 에코에 이르기까지 문학의 여러 대가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말과 글을 인용하고 비틀어 비독서의 방식과 미덕을 논한다. 독서는 우리가 관습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신비로운 행위이다. 독서는 학습이기도 하지만 학습이 아니며, 유희이기도 하지만 유희만은 아니며, 끝까지 읽었다고 다 읽은 것도 아니며, 여러 번 읽었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독서의 본질에 대해 흥미로운 접근 방식을 제시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대충 훑어본다고 해서 책에 대한 평을 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책의 깊은 본성과 교양을 살찌우는 책의 힘을 존중하면서 그리고 세부 사실에 빠져 길을 잃게 될 위험을 피하면서 책을 제 것으로 소화하는 가장 효과적 방법일 수 있다.” -37p 


피에르 바야르는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첫 장 프롤로그에서 그는 책이라고는 거의 읽지 않는 환경에서 독서에 그다지 취미를 들이지 못했고 독서할 시간도 별로 없었던 자신이 살면서 겪게 되는 이런 저런 사정에 엮여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경우가 자주 있었다고 고백한다. 가르치고 쓰는 과정에서 가끔 자신이 펼쳐보지도 않은 책들을 설명하고 인용하게 되는데 이렇게 읽지 않은 책을 말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피에르 바야르는 책을 전혀 읽지 않은 경우, 책을 대충 훑어보는 경우, 다른 사람들이 하는 책 얘기를 귀동냥하는 경우, 책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까지 독서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책을 읽어보지 않고도 대화 속에 거침없이 그리고 수없이 책들을 늘어놓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실제로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열정적이고 창조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는 행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창조자가 되는 일이다. 각 권의 구체적인 내용을 모두 알 필요는 없다. 책과 책, 책과 독자 사이의 앙상블을 파악해 전체적인 지식지도를 그려내는 ‘총체적 독서’가 중요하다.  


흔히 독서는 교양을 쌓기 위한 목적으로 연결한다. 교양을 쌓는다는 뜻은 책들 사이에서 길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목표는 독서인이 아니라 교양인이다. 독서는 교양을 쌓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고 책을 읽었다는 것은 게임을 하듯이 미션을 클리어 했다는 개념이 될 수 없다.   


오늘도 독서와 비독서 사이에서 방황하는 당신에게.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서 주워들은 리뷰로 마음껏 떠들어보자. 그 책을 어떻게 소화하고 얼마만큼 내 삶에 끌어들였는가가 핵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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