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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Dec 20. 2022

아몬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 도무지 웃지 않고, 공포, 분노, 행복, 기쁨도 느끼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의 이면을 읽어 내지 못해 사람들에게 괴물이라고 손가락질 받는다. 소년이 그렇게 된 건 머릿속에 있는 아몬드가 고장났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 진단한다. 몸이 자라면 아몬드처럼 생긴 편도체도 같이 자라야 하는데 소년의 아몬드는 자라지 않는다. 남들보다 작은 만큼 편도체가 해야 하는 감정 기능이 없어 소년은 세상을 곧이곧대로만 받아들인다.  


평범하게 살기 위해 세상에 녹아드는 법을 배운다. 상대방이 웃으면 똑같이 미소를 짓고, 호의를 보이면 고맙다고 말하며, 차가 다가오면 부딪히지 않도록 비켜서는 식의 주입식 감정 교육을 받는다. 엄마의 노력 덕에 별 탈 없이 지냈지만, 크리스마스이브이던 열여섯 번째 생일날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나 가족을 잃는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윤재 앞에 곤이가 나타난다. 윤재와는 반대로 곤이는 감정이 흘러넘치는 아이다. 그렇게 서로 다른 두 소년이 만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우정을 시작하는데... 


각자 다른 이유로 괴물이라 불리는 소년들은 세상으로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을까? 손원평 작가의 소설 <아몬드>는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는 극한의 상황에 놓인 10대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이 사회의 균열을 드러낸다. 그와 동시에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과연 서로에게 위안이 될 수 있을지, 희망을 전해 줄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실험한다.  


감정을 느끼지 못해 로봇이라 불리는 윤재, 13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지만 워낙 상처가 깊어 가슴 속에 분노가 가득한 곤이, 그와 반대로 맑은 감성을 지닌 도라, 그리고 윤재를 돕는 심 박사. 등장인물들 사이의 팽팽한 감정 대립이 볼만하다. 곤이는 윤재에게 화를 쏟아 내지만, 감정의 동요가 없는 윤재 앞에서 오히려 쩔쩔매고 만다. 윤재는 어쩐지 곤이가 밉지 않고, 오히려 궁금해진다. 두 소년은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특별한 우정을 쌓아 가며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내면의 변화를 겪게 된다.   


소년들 이야기가 어쩐지 낯설지 않다. 타인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신이 아닌 이상 남의 감정을 이해하는 일은 어렵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남을 헤아리고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지만 애써 외면하기도 한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굳이 남의 감정까지 알아줄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현대 사회가 집단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 모두 상실을 애도할 시간, 감정을 보듬을 여유를 잃어버린 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멀면 먼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245p 


편도체가 자라지 않는 윤재에게는 이성적 판단이 우선이다. 결론의 형식은 뇌의 명령에 의한 이성적 판단에서 나온 것 같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윤재의 가슴에서 나온 말이다. 그렇기에 윤재의 건조하고 덤덤한 어조는 역설적으로 가슴 저미게 슬픈 말로 다가온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윤재를 응원하게 된다. 관계를 맺고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서 묘하게 개운하다. 로봇처럼 학습한 대로만 말하고 행동하던 주인공이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 발단에는 관심과 애정이 있었다. 고통과 죄책감, 아픔을 시험해 보려고 했던 곤이와는 달리 세상은 밝고 아름다운 곳임을 가르쳐준 도라 덕분에 도무지 자라지 않던 윤재의 아몬드가 조금씩 부푼다. 나그네의 옷을 벗긴 건 찬바람이 아닌 따뜻한 햇살이었듯이. 


무작정 괴물 같은 아이는 없다. 관심과 애정을 주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한다. 내가 보내는 관심의 크기만큼 상대가 보답하지 않는다고 서운할 필요는 없다. 정당하지 않다고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 이 세상 사람 사이 관계가 어디 이익과 손해로 설명이 가능하던가.  


소설 <아몬드> 마지막 장, 작가의 말로 칼럼을 마무리할까 한다. '이 소설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들, 특히 아직도 가능성이 닫혀 있지 않은 아이들에게 내미는 손길이 많아지면 좋겠다. 거창한 바람이지만 그래도 바라 본다. 아이들은 사랑을 갈구하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사랑을 주는 존재들이다. 당신도 한때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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