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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Dec 28. 2022

벨 에포크, 인간이 아름다웠던 시대



 

‘벨 에포크Belle epoque'. 단어만으로 막연히 우아한 느낌을 주는 이 말은 번역하면 ‘좋은 시대’이다. 좋은 시대라고 명명할 수 있는 때는 과연 언제였을까. 1870년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이 끝난 이후부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평화시대를 말한다. 더 이상 전쟁에 돈과 인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게 되자 기술과 산업이 눈부시게 번영한다. 그 시절 산업과 함께 예술과 문학도 함께 황금기를 맞는다.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나 '콜레트'에서 알 수 있듯이 벨 에포크는 파리가 세계의 중심으로 여겨지던 시절이다. 


하지만 언제나 역사는 시간이 지난 후에 평가가 가능한 법.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대를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혼란스러운 사회를 정비하기 바빴을 뿐 지금 이 상황이 평화인지 번영인지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다.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니 이런 특징을 가진 아름다운 시대였다고 그리워하게 된 것이다. 


패션칼럼리스트 심우찬은 르네상스와 더불어 인류의 전성시대로 손꼽히는 이 아름다운 시대에 주목한다. 샐럽과 스타가 탄생하고, 백화점과 루이뷔통과 샴페인이 브랜딩의 태동을 알리던 인류의 전성시대 말이다. 소위 팔리는 예술은 어디서 어떻게 출발했는지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벨 에포크 시대 사람들은 기술의 발전을 낙관적으로 누리면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그로부터 백 년이 흘렀다. 세상은 진보하고 있는가? 글쎄. 2020년대는 아슬아슬한 시대다. 갑작스러운 팬데믹이 지구를 휩쓸고, 민주주의는 위협받고 있으며, 패션은 멈췄다. 심우찬 칼럼리스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하자고 다독인다. 시대가 어두워질수록 우리는 아름다움을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당신이 번호표를 뽑아 들고 2시간을 기다려서 들어가야 하는 샤넬 매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돈이 있어도 당장 살 수 없고 매장 매니저에게 읍소해야 겨우 구경할 수 있는 번들거리는 에르메스 버킨백 가죽 가죽 위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잡지는 그녀가 살아오면서 터득한 모든 아름다움에 대한 노하우를 독자에게 전수하는 주간지였다. 단지 아름다워지는 방법뿐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아름답게 느끼는 법,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방법을 전하는 잡지였다. 당시 사람들은 자신을 얽매던 관습과 남자들이 지배하는 사회에 대한 위선의 베일을 벗어던진 리안 드 푸지의 행보를 그저 충격과 환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2부, 전환의 시대 중 


이 책은 19세기 가장 유명한 여자 배우로 평가되고 있는 사라 베르나르 이야기로 시작한다. 슈퍼스타 팬덤이라는 사회현상을 만든 원조라 할 수 있다. 그녀는 알폰스 무하를 아르누보 아티스트로 만든다. 알폰스 무하가 그린 사라 베르나르의 그림을 보면 섬세하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 체코인인 무하는 나라를 잃은 슬라브족이 가지는 깊은 슬픔을 예술로 표현했다. 파리와 미국을 거쳐 고국 체코 프라하로 귀국한 뒤 평화에 대한 열망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슬라브 대서사시' 20장을 완결한다. 알폰스 무하가 그때, 그 곳에서 유명 배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까? 역사와 예술, 자본, 명성이 합작한 결과물이다.  


파리 만국박람회에 얽힌 사연도 흥미롭다. 만국박람회는 유럽 열강의 경쟁적인 국력의 과시 수단이었다. 에펠탑을 설계하고 파리를 문화의 중심지로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이때 루이뷔통이 자신의 이름을 딴 여행 가방을 출시하고 세계적인 브랜드로 거듭난다. 디자인 저작권과 등록상표로 왕후와 귀족들에게 처음으로 남의 이름이 적힌 물건을 들게 했던 루이뷔통의 시대였다. 


백화점에서 각종 향수 브랜드를 동시에 시향하고 고르는 일, 비행기 1등석의 어메니티 경쟁, 스타 혹은 아티스트와의 콜라보,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마케팅. 지금 우리의 일상이 된 혁신들이 모두 이 벨 에포크 시대에 탄생했다.  


분명 과거사지만 무대를 2022년으로 옮겨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 시대를 관통하는 반짝이는 아이디어 때문이다.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더 아름답고,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이 아름다웠던 시대' 벨 에포크가 궁금하다면 책장을 펼치고 함께 호흡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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