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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Dec 31. 2022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아버지가 꿈꾼 세상은 모두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한 대가로 먹고 입고, 누구나 다 자식을 공부시키며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였다. 그 세계의 지배계층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아버지는 말했었다. 인간이 갖는 고통에 대해 그들도 알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호화로운 생활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네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버리고, 바람도 막아버리고, 전깃줄도 잘라버리고, 수도선도 끊어버린다. 그런 집 뜰에서는 꽃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p36


조세희 작가는 사람이 태어나서 누구나 한번 피 마르게 아파서 소리 지르는 때가 있는데, 그 진실한 절규를 모은 게 역사요, 그 자신이 너무 아파서 지른 간절하고 피맺힌 절규가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었다고 말한다. 긴 세월이 흐른 후에도 사람들이 난장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소설이 시대 문제의 핵심에 가까이 다가갔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은 1970년대 달동네 재개발 열풍이 서민들에게 어떠한 상흔을 남겼는지 담담하게 서술해 나간다. 난장이 가족이 사는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 무허가 주택에 20일 안에 자진 철거하라는 철거 계고장이 날아든다. 아들 영호는 집에서 나갈 수 없다고 버티고, 딸 영희는 훌쩍훌쩍 울기만 하고, 아내는 무허가 건물 번호가 새겨진 알루미늄 표찰을 떼어 간직한다. 새 아파트에 들어갈 형편이 될 수 없는 주민들은 하나둘씩 입주권을 팔기 시작하고 입주권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다. 난장이네 집도 입주권을 팔고 전셋돈을 빼 주어야 했지만 가족들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을 이어 나르고 시멘트를 직접 발라 지은 자기 집에 애착이 남다르다.


버티고 버티다 결국 난장이 가족은 검정 승용차를 타고 온 남자에게 25만 원을 받고 입주권을 판다. 집은 헐리고 영희와 아버지가 사라졌다. 영희는 입주권을 산 자를 따라갔다가 금고에서 자신의 집 대문에 달려 있던 표찰을 훔쳐 집으로 돌아오고, 아버지는 굴뚝 속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다.  


소설은 광주대단지사건을 소재로 했고, 성남 상대원공단도 배경으로 나온다. 이러한 사회 비판적 요소 때문에 군사정권에서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각각 큰 아들, 작은 아들, 그리고 막내딸의 시점에서 자신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서 난장이는 정상인과 화해하며 살 수 없는 대립적 존재로 묘사한다. 당시 한국사회의 최대 과제였던 빈부와 노사의 대립을 극적으로 제시하는데 이런 소설 속 장치에서 당시  사회가 이 두 대립항의 화해를 가능케 할 만큼의 성숙하지 못했음을 엿볼 수 있다.  


문장 호흡이 짧고 묘사가 간결하다. 내용이 충격적인데 반해 필체가 담백 건조해 더 가슴이 아리다. 원고 집필 당시 조세희 작가의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손바닥만 한 수첩에 글을 썼기 때문에 짧게 메모하듯이 썼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형성된 간결체가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이 되었다. 또한 작가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그리면서 소설에 환상적 기법을 도입함으로써 계급적인 대립과 갈등이 마치 논리가 존재하지 않는 동화 속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 결과 현실의 냉혹함이 더욱 강조된다. 아들 영호의 꿈속에서 막내딸 영희가 팬지꽃을 공장 폐수에 던져버리는 장면, 현실에 대해 고민하는 형 영수에게 동생 영호가 '형은 이상주의자야'라고 쏘아붙이는 장면 등이 대표적이다.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75년 문학사상 12월호에 연재한 <칼날>을 시작으로 <뫼비우스의 띠>, <우주공간>,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등 12편을 모은 연작 소설집이다. 연작 소설의 내용은 모두 이어지며, 각 계급별 시점에서 내용을 풀어낸다. 달동네에서 쫓겨난 뒤 새로운 곳에 터를 잡아 노동 계층으로 생활하는 내용, 노동 운동에 나서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내용, 대학생이 사회 운동을 하다 변절하는 내용, 형제간 세력 경쟁을 벌이는 재벌 2세의 이야기 등 다양한 모습이 나온다.  


소설집 처음과 마지막에는 학생들에게 존경받는 수학 선생의 수업 장면이 나오는데 학생들 성적이 안 좋았다는 이유로 교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선생은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말하는데 학생들의 성적이 떨어진 이유가 진정 무엇인지 묻는데 그치지 않고 독자들을 향한 물음으로 들린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누구에 의한 것이며, 일련의 이야기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조세희 작가는 난장이 연작 소설 이후 한 권씩의 소설집과 사진 산문집을 내놓았을 뿐 사실상 절필을 선언한다. 그는 글로 소통하는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집회 현장을 빠짐없이 다니며 약자들의 투쟁을 렌즈에 담아왔으며, 언젠가 그간 찍은 사진을 정리해 후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와 함께 남길 것이라고 한다. 광주 이야기를 담은 <하얀 저고리>를 언젠가 세상에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산업화 속 서민의 애환을 그려온 조세희 작가는 2022년 12월 25일 향년 80세로 별세하였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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