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온 내 또래 친구들은 모두 외동딸, 외동아들이다. 그들은 미국에 와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아이에게 형제를 만들어 줬을 때라고 말한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중국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 가정 한 자녀’만 허용했다. 1970년대부터 50년 가까이 이어온 이 제도에 대한 명암은 뚜렷하다.
모옌 작가가 쓴 소설 <개구리>(사진)는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인 ‘계획생육’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소설은 중국인 남자 커더우가 일본인 선생님인 스기타니 요시토에게 쓰는 편지로 시작한다. 이야기는 커더우의 시선으로 이끌지만 진짜 주인공은 편지 속에 등장하는 그의 고모 완신이다.
중국 호황기인 1950년대에서 60년대 중반까지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가오미 향에 고구마가 풍년인 해에 출산율은 더없이 높아지고 고모는 수없이 많은 아이들을 받는다. 얼마나 많이 낳았으면 그때 받은 아이들을 ‘고구마 아이’라고 불렀을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통제되지 않는 인구증가에 불안감을 느낀 정부는 70년 이후 계획생육에 들어간다. 고모 완신은 초반에는 신념있는 젊은 여의사였지만 당에 대한 충성심으로 잔인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 마녀로 변해가는 인물이다.
부부 사이에 한 명 만 낳아 키워야 하며 첫째가 여자 아이인 경우 8년을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 둘째도 딸이면 다시는 출산을 할 수 없게 되는 여자들은 어떻게든 아들을 낳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다.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어이 출산을 막으려는 완신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완신의 모습은 007시리즈 제임스 본드의 여성판을 연상시킨다. ‘불법 임신’을 한 임신부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무장 민병을 동원하고 트랙터를 몰고 집으로 들이닥치기도 한다. 만삭의 임신부까지 수술대에 눕히는가 하면 반항할 경우 재산 몰수와 가족 감금의 처분을 내린다.
마을 사람들의 말처럼 완신은 정말 악마였을까? 완신은 계획생육 명령을 전달받은 당원 중 한 명이었고 사상과 정부 정책은 개인이 감당하기 버거운 권력이었다. 완신은 스스로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했을 일이다.’ ‘희생이 있긴 했지만 보다 나은 중국의 미래를 위한 일이었다.’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책의 후반부로 가면 일흔이 넘은 완신이 지난날을 회고하며 참회하는 장면이 나온다. 평생 죄책감에 시달린 완신은 자기 손으로 죽인 2,800명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하나씩 점토인형을 만든다. 그녀 역시 그 시대의 희생자였다.
고모의 일생을 지켜봐 온 커더우 역시 소설 전반부에서는 계획생육 정책의 피해자로 묘사되지만 후반부에 접어들면 대리모를 통해 불법으로 아들을 얻는 가해자로 등장한다. 결국 중국 정부가 오랜 시간 명백한 당위성을 갖고 계획생육 정책을 시행해왔지만 50년이 흐른 현재,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책은 완신이 깊이 속죄하면서 감동적으로 끝나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나라는 무엇인가’, 또 ‘국민은 누구인가’에 대한 묵직한 물음을 던져준다. 이 책의 배경인 중국 가오미 현 둥베이 향은 모옌 작가의 고향이기도 하다. 모옌 작가의 고모도 산부인과 의사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 소설은 허구와 진실의 경계가 모호한 회고록 성격이 강하다.
책 제목은 왜 <개구리>일까? 개구리 와(蛙)와 인형 와(娃)는 발음이 같다. 엄마 배 속에서 아기가 처음 나왔을 때 우는 소리와 개구리 울음소리도 비슷하다. 또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개구리로 성장하기 전 올챙이와 인간의 정자가 같은 모습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소재가 하나의 상징으로 꿰어지는 것이 작위적이지 않고 절묘하게 이어져있다. 또 이야기 얼개가 치밀한 복선으로 잘 짜여있다. 구성의 독창성을 인정받아 이 소설은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나라 70년대 상황이 겹쳐졌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구호가 TV로 흘러나왔던 시절이 있었다. 다만 중국과 우리나라가 다른 점이 있다면 가족계획을 법으로 강제했느냐 권장하는데 그쳤느냐의 차이뿐이다. 그래서 소설 속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