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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May 09. 2023

애정만 있는 가족이 무슨 가족이라고!


 


취직은 언제 할 거야? 옷이 그게 뭐니? 다른 집 딸은 승진하고 집 샀다더라! 부모 자식이 만났을 때 나누는 흔한 대화이다. 묻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유쾌할 리가 없는 이런 대화를 도대체 왜 하는 걸까?  


이번 생에 효도는 글렀다고 말하는 뚜루 작가는 독자들에게 묻는다. “존중 받고 계십니까?” “가족이라는 병이 심하게 들어 곪고 있진 않으십니까?” 효녀 코스프레에 지쳐 좌절하고 만, 이제 40대 중반의 길로 접어든 딸 뚜루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평생을 취미생활 따위는 모르고 가족을 위해 일만하며 살아온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는 가족에 둘러싸이길 바라지만 그렇다고 가족들 어느 누구와도 다정하게 어울리지 못한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쉽게 꺼낼 수 없는 대상이며, 젊은 시절부터 가족을 책임져야 했던 그런 삶으로 인해 '나'는 없고 '내 가족'만 남은 아버지. 그런 아버지도 해맑게 웃던 젊은 시절이 있었지만, 인생의 굴곡만큼 이제는 손에 굳은살이 깊고 굵게 박혔다. 그런 부모 아래에 있던 두 딸과 아들은 머리가 굵어져서 결혼과 독립의 형태로 집을 떠난다.  


뚜루 작가는 딸은 왜 심야 영화를 마음 놓고 볼 자유를 결혼을 통해 남편으로부터 얻어야 하느냐고 질문하고, 가족은 떨어지면 더 잘, 더 깊이 볼 수도 있다고 정서적 독립을 외친다. 은퇴 후 집에 있으면서도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에 의존하는 아버지에게 세 끼 중 한 끼는 손수 차려먹기를 바란다.  


작가의 가족 이야기는 가족이라는 병을 앓고 있지만 함부로 드러낼 수 없으며, 가부장과 끊임없이 불화하면서도 효도라는 유교적 관념에 지나치게 얽매여 자신의 삶과도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딸의 이야기, 혹은 우리 모두의 가족 이야기이다.   


TV드라마에 묘사되는 아버지들은 가족에게 희생하며 자식들에게 자상하고 아내에게 헌신적이며 가정의 화목을 위해 큰소리 한번 내지 않는, 인자하기 그지없는 가부장으로 묘사된다. 타인의 가족과 비교하는 데서부터 불행은 시작되지만 어쨌거나 현실은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고, 우리는 종종 타인의 관점에서 가부장을 바라보기 쉽다.  


미디어에 비춰지는 가족상에 종종 염증을 느낀다. 나는 지금 가족 때문에 고통스러운데 그들은 너무나 화목하다. 심지어 그 모습이 이상적이라 계몽한다. 주변을 둘러본다. 가족으로 인한 행복도 크지만 불화도 엄청나다. 미디어가 보여주는 대로 화기애애하기만 한 가족은 없다. 가족이란 끝내 화해하지 못하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절대 끝낼 수는 없는 뜨겁고 징글징글한 관계인지도 모른다.  


가장 친밀한 관계라서 무관심하기 쉬운 가족, 우린 가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정, 연애, 팬심 등으로 타인에 대해서는 맹렬한 관심을 쏟지만 부모나 배우자, 형제의 기호에 대해서 무관심하기 쉬운 관계,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한 몸처럼 생각하고 서로에게 이해를 바란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 상처들은 켜켜이 쌓여 어느 날 불화로, 사건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큰 상처를 준다. 그리고 그 상처가 가장 아프다. 길에서 마주친 타인이 어깨를 밀치고 욕을 뱉었다고 치자. 밤새 잠을 못잘 정도로 화가 난다. 그런데 그게 다이다. 잠시 기분이 나쁠 뿐 마음에 담아둘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가족이 욕을 하고 때린다면 죽는 날까지 잊히지 않는다. 가족끼리 상처를 주는 이유는 바로 입만 있고 귀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서로에게 상처 주며 영혼을 갉아먹는다. 너무 사소하고 익숙해서 그것이 상처인지도 모른채.  


지금 내 고통과 고민의 51%가 가족이라면 그것을 말하지 않고, 고백이든 자백이든 드러내지 않고 진정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까? 서로 가족에 대해 시시콜콜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하는 딸들. 사실, 결론은 없다. - p.28


이해했다고 해서 그동안 불화했던 관계가 극적 화해를 이루거나 가족애로 활활 타오르는 건 아니다. 현실은 60분짜리로 잘 편집된 드라마가 아닐뿐더러, 사람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가족은 50부작으로도 다 담을 수 없는 방대한 대서사시이다. 드라마 같은 화해는 판타지일 뿐이다. 가족은 모래 위에 지은 성 같은 조심스럽고 불안한 존재이다. 그래서 함부로 무너뜨리지 않기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   


정답은 없다. 이상적인 가족상도 없다. 이상적인 어떤 상을 추구하면서 가족을 바라보면 고통스럽다. 저마다 상황은 다르고 환경도 천차만별이므로 가족 구성원 각자 자신의 인생을 착실히 살면 그만한 이상적인 가족은 없을 것이다.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건 사랑 때문이 아니라 사랑보다 더 진한 애증이 켜켜이 쌓여지고 있기 때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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