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끌로이 Jun 20. 2023

신화가 좋다 여행이 좋다



나는 어디서 왔으며 내가 살아보지 못한 먼 과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막연한 질문이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궁금해 하지 않을까. 우리가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간 영화 속에서 신화 속 캐릭터는 매력적인 소재로 다뤄져 왔기 때문이다. 커다란 마법 망치로 세상을 호령하는 <어벤져스> 영화 속 토르를 떠올려보자.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천둥의 신이 바로 토르이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전지전능한 신으로 변한 순간 사람들은 매력을 느낀다.  


우리가 애써 유적지를 찾아 여행을 하는 이유 또한 그곳에 담긴 이야기가 장소를 신비롭게 만들기 때문 아닐까. 여행 작가 세라 백스터가 쓴 <신화가 좋다 여행이 좋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화와 전설이 탄생한 25곳을 소개한다. 괴물이 출몰했다던 스코틀랜드 호수, 지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였던 그리스 동굴, 한국의 건국 신화가 시작된 마니산 등. 


여행이 단지 몸과 마음을 쉬기 위해서라면 친근하고 다녀오기 쉬운 가까운 곳으로 떠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름답고 신비한 곳일수록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후미진 곳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비행기를 여러 번 갈아타고 40시간 만에 찾아갈 자신이 없다면 책으로 유적지를 탐방해보자. 지적 호기심도 채우고 아름다운 삽화들로 눈도 즐거운 세계여행을 즐길 수 있다. 


일부 고대 신화에서는 하데스가 펠로폰네소스반도 내 마니반도의 끝이자 그리스 본토의 남단인 타이나론곶 아래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황량하고 개척되지 않은 산지인 마니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다를 통해서만 갈 수 있었다. 지금은 탑이 있는 집들과 향기로운 덤불들, 바위들 사이로 나 있는 구불구불한 길이 곶까지 이어진다. 곶에 자리한 폐허가 된 아소마티 교회는 이전의 포세이돈 신전 위에 지어졌던 것이며 작은 만의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동굴은 지옥의 입구를 알려주는 표시다. - p.76


책에는 ‘신화와 전설이 깃든 곳으로 떠나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제목에서 여행보다 신화를 앞세웠으니, 이 책의 중심은 신화라고 보는 편이 옳다. 장소에 서사를 부여하면 신화나 전설이 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많은 나라들이 그럴싸하게 허풍스러운 이야기로 기원을 설명하곤 한다.  


한국의 한 장소도 소개돼있다. 강화도에 있는 마니산은 단군 신화와 관련이 있다. 천제의 아들 환웅은 인간계로 내려와 웅녀를 아내로 맞았다. 그리고 단군왕검이라는 아들이 태어나 고조선을 세우고 1500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그 통치기간동안 마니산 꼭대기에 제단을 만들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 덕인지 마니산은 기가 아주 강하고 신성한 느낌도 준다고 한다. 


청소년 필독서로 꼽혀 억지로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아직도 나에게 곤욕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그 많은 등장인물의 이름을 다 기억해야 비로소 이야기가 연결될 텐데 첫 단추 끼우기부터 무척이나 난해했다. 게다가 허무맹랑한 이야기 전개가 신비롭기는커녕 대국민 사기로 여겨졌다. 그래서 신화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나보다.  


<신화가 좋다 여행이 좋다>는 그 장소들의 지역적 특성, 문화, 역사는 물론 그곳을 방문했던 유명인들의 이야기들을 곁들여 생생하고 흥미진진하다. 단군 신화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머물러있던 옹졸한 세계관이 세계 곳곳으로 확장된 기분이다. 직접 가보지 않고 책을 통해 몰랐던 다른 세계를 다녀볼 수 있다는 만족감도 크지만 읽다 보면 어느새 그 신비로운 곳을 내 눈으로 한번 보고 싶다는 마음도 생긴다. 그리고 앞으로 여행을 다닐 때 예쁜 카페, 소문난 맛집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 곳의 숨은 이야기를 찾아보는데 초점을 맞추고 싶어진다.  

무엇보다 눈이 편안하고 재미있다. 현실의 고민이나 피로 따위 잊게 한다. 만화영화를 보듯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인류의 뿌리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인류가 부족을 이루고 그들의 제국을 단단하게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신화나 전설일 거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터무니없는 이야기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과학적 논리로 설명하기 힘든 공백을 그렇게 상상력으로 메우고 싶은 인간의 욕심이 전설을 탄생시킨 밑거름인 셈이다. 책에서 이 정도 감상만 건져도 꽤 성공한 독서가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친절한 복희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