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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Jul 01. 2023

달콤한 하루



흔히 하는 말로 미국은 지루한  천국 같고,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 같다고 한다. 두 나라에서 모두 살아본 사람은 이 말에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길에 차만 쌩쌩 달릴 뿐 걸어 다니는 사람 한명 없고, 오후 5시면 문을 닫는 커피숍 풍경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하다못해 그 흔한 pc방조차 찾아보기 힘든 이곳에서 과연 무슨 재미로 살아야 하나.  


메릴랜드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평범하고도 조금은 특별한 일상을 담은 에세이 <행복한 하루>에서 석민진 작가는 행복을 선택하기로 결심한 후 삶을 보는 관점과 살아가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살면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스스로 선택할 수는 없다. 하지만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작가는 지루한 천국 속에서 푸념만 하는 태도 대신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에게 집중하는 태도로 삶을 산다.   

석민진 작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마치 변신로봇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10년 넘게 블로그에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는 일은 물론 음식 칼럼니스트, 케이크 디자이너, 파티시에, 사업가, 유튜버 등 다양한 명함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지나가다 발견한 예쁜 꽃이나 신기한 곤충 사진, 여행지에 대한 글과 사진을 그때그때 감정을 살려 짤막하게 블로그에 올렸다. 그 중 구독자 반응이 유독 좋았던 주제는 만들어 먹은 음식과 레시피에 대한 정보였다. 나이와 사는 곳이 제각각이어도 사람들의 흥미는 비슷하다. '다른 집은 뭐 해먹고 사나?', '가족을 위해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다.  


<달콤한 하루>에는 그동안 블로그에 올린 작가의 유쾌한 에너지 비결이 고스란히 담겼다. 석민진 작가는 기본 재료와 정확한 레시피가 있어야 맛있는 요리가 완성되듯이 일상에서도 기본 체력과 올바른 삶의 지침이 있어야 내가 원하는 삶을 꾸려 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핸드폰 화면 속 누군가의 삶을 마냥 부러워하며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가장 경계한다. 남들이 자랑삼아 올리는 사진을 보면서 ‘저게 바로 내가 원하는 삶이었는데 왜 나는 저렇게 못 살지?’라는 한탄을 하다보면 밑도 끝도 없는 우울의 늪에 빠져버린다. 지금 내가 있는 바로 그곳이 누군가는 꼭 하루쯤 살아보고 싶은 천국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곳이 천국일지 지옥일지는 삶을 바라보는 렌즈에 달려있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책장을 펼쳤다가 나도 모르게 정자세로 고쳐 앉았다. 요즘 들어 부쩍 어쩐지 내 인생은 조금 지루한 것 같다고 느껴서인지 모르겠다. 나 빼고 세상 사람 모두가 즐거워 보이는데 그들은 도대체 무엇이 그리 즐겁고 행복할까. 비교하고 저울질하던 스스로를 반추하게 된다.   


삶이 무료할 때는 뭐라도 하자. 이왕이면 베이킹이 어떨까. <달콤한 하루>에는 석민진 작가가 제안하는 스무 가지 맛보장 베이킹 레시피가 담겼다. 빵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달콤한 위로이다. 살다 보면 빵 한 조각에 금세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지 않은가. 신기하게 빵에도 표정이 있다. 만든 사람의 감정과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싶어 안일한 자세로 대충 구웠다가는 정말 대충 생긴 대충의 빵이 탄생한다. 맛에서 만든이의 귀찮음이 묻어나오기도 한다. 물론 사랑을 담아 즐겁게 요리하면 당연히 탐스럽고 맛좋은 빵이 탄생한다.  


베이킹은 제대로 된 레시피를 정확하게 계량해서 단계별로 따라 하면 원하는 맛과 모양의 빵과 쿠키를 만들 수 있다. 말 그대로 '정석'이 기본이다. 적당히 타협하기란 통하지 않는다. 베이킹을 하면서 삶을 배운다고 하면 너무 거창한 표현일까. 밀가루와 계란에 불과하던 재료가 서로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켜 폭신한 빵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마치 미생에 불과한 인간이 부모와 스승의 가르침으로 꽤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과정 같다. 정석을 무시하고 꼼수를 부렸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우리네 인생사도 비슷하다. 살다보면 인생 선배들의 좋은 레시피를 따라 하면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하니까.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달콤한 하루> 한 권이면 충분하다. 나 역시 긍정적 마음가짐으로 삶을 사는 것보다 긍정의 힘에 대한 책을 사는 게 더 쉬운 사람이긴 하지만, 여전히 글로 읽어야만 이해되는 세계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활자로 마음을 전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린 시절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갑다. 석민진 작가의 책은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달콤한가요, 씁쓸한가요?”라고 안부를 묻고 긍정 에너지를 한 스푼 나눠주는 듯 한 기분이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게 우리의 삶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를 받아들이겠다는 담대한 마음으로 메멘토 모리를 되새긴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 이 하루를 온 마음을 다해 즐기겠다는 마음가짐을 다져보는 것이다. 누구든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존재임을 잊지 않음으로써. 우리의 삶을 해피엔딩으로 만들기 위해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서로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일 외에 더 나은 방법을 나는 아직 모르겠다. - 달콤한 하루 에필로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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