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끌로이 Jul 10. 2023

테라피스트



 


보안이 철저한 런던의 고급 주택단지. 얼마 전 연인 레오와 이곳으로 이사왔다. 그런데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수군대는 이웃들, 집들이 파티에 나타난 낯선 남자, 무언가를 감추는 듯한 레오. 인사차 들른 옆집 아주머니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아무도 믿지 말아요.”  


혼란스러운 가운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집 침실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었다고?'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 자살한 사건. 레오는 모든 것을 알고도 왜 말해주지 않았을까? 죽은 여자의 영혼이 도와달라며 집 안을 떠도는 것 같다. 그녀가 정말 남편에게 살해당한 것일까? 레오, 이웃들, 이 집을 소개해준 부동산 중개인까지 주변의 모든 사람이 의심스럽다. 심지어 나조차. 이웃의 말처럼 내가 정말 망상에 빠진 걸까?  


B. A. 패리스의 소설 <테라피스트>는 보안이 철저한 만큼 폐쇄적이며, 이웃과 끈끈한 만큼 서로를 감시하는 눈길을 거두지 않는 런던의 고급 주택 단지라는 특수한 배경에서 출발한다. 비밀번호를 눌러야 단 지안에 들어올 수 있고, 공원을 중심으로 열 두 가구가 동그랗게 원형을 이루는 독특한 구조이다. 각자 집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이 구조는 한 눈에 다 보이는 원형 감시 감옥 판옵티콘(pan-opticon)을 연상시킨다. 안전하다는 고급단지는 어느새 앨리스에게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 그녀를 망상으로 이끄는 비열한 비밀의 장소가 되고 만다. 침실에서 남편의 손에 살해당한 여자의 이름인 ‘니나’가, 이른 나이에 죽은 자신의 친언니 이름과 같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자 앨리스는 니나를 죽인 범인으로 주변 이웃들을 차례대로 의심한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옮긴 삶의 터전에서 행복은커녕 온갖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면 누구나 처음에는 별일 아닐 거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낯선 환경이 어색해서 그럴 거라고 최면을 걸지 않을까. 그러나 처음 느낀 그 직감이 정답인 경우가 많다. <테라피스트>에는 지극히 평범한 이웃들,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평온한 동네 풍경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집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집값이 떨어질까봐 작당하고 쉬쉬하는 동네 사람들의 모습은 어디서 많이 본듯 익숙하다.    


마치 영화 '트루먼쇼'처럼 세상이라는 거대한 영화 세트장에서 주인공 앨리스의 삶이 리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생중계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만큼 이웃들은 작당하고 앨리스를 속인다. 의심은 믿음을 기반으로 하고, 불안은 무언가를 지키고자 할 때 더욱 증폭된다. <테라피스트>에서 앨리스는 레오와 이웃들을 믿거나 믿고 싶었기에 끊임없이 의심한다. 이런 가운데 이웃들의 이기심과, 앨리스의 호기심을 이용해 범인은 앨리스 주변을 서서히 고립시킨다. 


그녀의 긴장감이 방 안에 퍼진다. 나는 펜을 집어 메모지에 ‘완벽’과 ‘불행’이라고 쓴 뒤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뭐라고 했는지 아시나요? ‘행복은 나비와 같다. 쫓으면 쫓을수록 더 멀리 도망가 버린다. 하지만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절로 날아와 어깨 위에 사뿐히 앉을 것이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안심한다. 이 구절은 언제나 먹힌다. - p. 184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의 시점이 교차하면서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천천히 달려간다. 듬성듬성 들어가 있는 과거 파트는 누가 누구에게 심리 치료를 받고 있는지 도무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친절하게 등장하는데, 부부 사이가 순탄하지 않은 여성 내담자의 심리 상담 장면은 이 소설의 중요한 복선이다. 소설에서 이름과 대상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결국 소설의 큰 줄기는 가짜 테라피스트이자 가짜 사립탐정에게 속아 넘어간 앨리스의 이야기이다. 과거시점에 불쑥불쑥 나타난 여성은 또 다른 테라피스트를 찾아가 마음을 터놓는 테라피스트 니나였다.  


테라피스트, 즉 심리치료사는 불안한 마음을 치유하는 전문 직업인이지만 역설적으로 타인의 불안한 마음을 파고들어갈 수 있는 위치이기도 하다. 심리치료사는 착각과 오해를 풀어줄 수도 있으며, 내면 불안을 없애주는 구세주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의심과 불안은 또 다른 의존을 만들어낸다. 테라피스트에게 치료를 받는 테라피스트, 속고 있는 작품 속 주인공을 보면서 본인도 속아 넘어간 독자,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심리 치료를 하는 테라피스트도 상담을 받는다는 작품 속 언급은 이런 전체적인 의심과 의존 구조에 대한 은유인 셈이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수록 앨리스는 자신의 상처까지 치료받는다. 부모님과 언니가 세상을 떠난 이후 죄책감에 짓눌려 부서진 삶을 살던 앨리스는 사건을 마무리 지은 후 비로소 개운해진다. 진정한 테라피스트는 먼 곳에 있는 낯선 이가 아니라 가까운 곳의 뜻밖의 인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콤한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