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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Aug 08. 2023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이유 없이 아무나 공격하는 범죄행위.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범죄행위. 바로 묻지마 범죄이다. 텍사스 쇼핑몰 주차장 총기난사나 독립기념일 축제에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 총격사건 등 올해 들어 굵직한 묻지마 사건만 해도 여러 건이다. 최근 한국도 신림역 사건을 비롯한 여러 묻지마 범죄가 우리 사회를 공포로 물들이고 있다. 묻지마 범죄가 사회문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우발적 동기에 의한 범죄는 매년 늘어나고 있는데 문제는 벌어졌다 하면 여러 명의 목숨을 빼앗는 중범죄라는 점이다. 묻지마 범죄, 이들은 왜 이러는 걸까?


연쇄살인 추적기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권일용 프로파일러와 고나무 작가는 “고립된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른다”라고 이야기한다. 묻지마 범죄는 말 그대로 이유 없는 범죄라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회적 동기와 배경이 있는 것으로 본다. 지나친 경쟁, 양극화에 따른 사회적 분노 등이 겹치며 범죄 발생의 압력이 커졌다는 주장이다. 연쇄살인범들에게 공통적으로 뒤틀린 성 관념과 어린 시절의 불우함이 있었다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이다. 소통할 수 있는 주변 사람이 없고 사회 제도적 시스템까지 미비하다면, 분노는 사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권일용 프로파일러가 지나온 진짜 범죄심리분석의 세계를 보여주며 연쇄살인범의 존재가 한국사회에 어떤 의미인지를 분석한다.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등 연쇄살인범의 존재가 한국사회에 어떤 의미인지를 분석하고 프로파일링 세계를 보여준다.  범죄자의 악의 연대기는 끝을 모르고 이어지며, 그들이 대체 왜 범죄를 저지르는가를 추적해 나간다.   


특히 한국에 프로파일링 기술이 도입된 과정이 흥미로운데, 대단한 사명감이나 책임감 없이 순경 공채에 합격한 권일용 순경은 동부경찰서 관할 파출소로 발령받아 처음으로 경찰 제복을 입었다. 가볍게 입기 시작했던 제복은 수많은 사건 현장과 범죄 피해자들을 마주 보면서 점점 무거워졌다. 제복의 무게가 제법 묵직하게 누르던 1999년 겨울 과학수사계 윤외출 계장의 전화를 받고 그동안 한국에는 없었던 ‘프로파일러’가 된다.


프로파일러는 범죄 현장에서 수집한 증거를 바탕으로 범인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가 왜 이 장소에서, 이 사람을, 이런 방식으로 헤쳤는지, 어떻게 움직였고, 무엇을 신경 썼는지, 행동을 분석하고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그들의 전기를 함께 기록한 고나무 작가는 서문에 “이 실화는, 이 돈키호테들이 어떻게 한국 최초의 프로파일링 팀을 만들고 그들이 범죄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밝혔다. 한 명으로 시작한 프로파일러가 팀을 꾸리고,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프로파일링이 경찰 내부에서 자리 잡는 과정은 하나의 의미 있는 기록이 된다.  


과학적인 단서만으로 범인을 잡을 수 있다면 진술을 분석하거나 범인의 행동으로 무언가를 유추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범죄 패턴이 변화하는 지금은 동기와 이유, 과정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유사한 행동이 나왔을 때 분석할 수 있다.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보통 사람의 입장으로 타인에게 접근하면 사고 자체가 안 된다고 말한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범죄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납치범은 자신이 살해한 이웃의 가족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할 일을 했다.” 자신만의 망상 체계 속에서 죄책감은 사라진다. 연쇄살인범은 거짓말탐지기 앞에서도 땀을 흘리지 않는다. 그에게 살인은 정당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 p.238


 ‘왜 범죄자가 되었느냐’보다는 같은 시대와 상황을 교감하면서 누구는 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그가 만난 범죄자들의 특징은 사회로부터 고립돼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었다 해서 누구나 범죄자가 되지는 않는다. 주변에 자신의 고민을 듣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범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은 그 문제를 결국 남에게 발산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뉴스에서 끔찍한 사건 사고를 보면서 늘 생각했다. 악이란 유전일까, 환경일까? 사법적 정의란 무엇이며 어떻게 구현되어야 할까?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지적하듯, 무차별 살인의 안전지대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을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을지, 살인마가 탄생하는 사회 경제적 조건은 무엇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범죄 예방은 문단속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고립되지 않도록 서로 관심을 갖고 살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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