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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Aug 17. 2023

대한민국 원주민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서 남의 집 창문 너머로 훔쳐봐야 했던 시절,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인데다 내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지만 그 시대는 분명 존재했다. 겪어보지 않았다 해서 없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가족을 위해 초등학교 졸업 직후부터 공장에서 일하며 동생들 학비를 댔던 장녀,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어깨에 지고 성공하려 애쓰지만 좀처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장남, 5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가족을 위해 아침밥을 지어왔던 엄마, 밖에서 받은 멸시와 스트레스를 술 먹고 가족에게 푸는 아버지. 대하사극 드라마에서나 볼법 하지만 이런 가족은 여전히 흔하다.   


<원주민>은 최규석 만화가가 자신의 가족을 직접 취재하여 쓰고 그린 자전적 이야기면서 동시에 대한민국 60년을 소리 없이 그러나 건강하게 통과해온 ‘가난한’ 보통사람들의 삶을 역사에 비추어 담담하게 추적하는 우리 근현대사에 관한 사려 깊은 기록이다. 21세기인 지금, 이제는 사라지고 없을 것만 같은 가족 모습이지만 놀랍게도 다수를 이루는 가족들의 전형이다.  


작가는 원주민을 갑자기, 그리고 너무 늦게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미처 제 삶의 방식을 손볼 겨를도 없이 허우적대야 했던 사람들이라 정의한다. 대한민국 60년 역사와 삶의 궤를 같이하나 그 존재감은 극히 미미해서 역사책에 ‘민중’이라는 이름으로도 기록되기에는 부적합해 보이는 이들을 가리킨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겪고 파란만장한 현대사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왔으나 그 의미를 알 겨를도 없이 살아남기에 급급해야 했던 사람들 말이다.  


근대적 의미의 세련된 시민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도,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에 국민의 자격으로 참여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 1977년에 태어나 갓 서른을 넘은 젊은 작가가 어떻게 역사의 뒤안길에 서 있는 이들을 대한민국 원주민이라 호명하며 불러낼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작가는 경남 진주 출신이다. 자연스럽게 책의 배경은 진주이다. 당시 서울이 아닌 도시는 얼마나 궁핍했는지, 형제 많은 집의 풍경은 어떤지 내밀하게 보여준다.  


덤덤한 와중에 한국사회의 구석진 시간대를 섬세하게 비춘다. 지금은  KTX타고 두세 시간이면 가는 그곳을 그 시절에는  일곱 시간씩 야간열차를 타고 다녔다.  물론 자가용을 타는 사람도 있었고, 고속버스도 시간마다 있었지만,  매일 밤 떠나는 야간열차는 언제나 출발지인 용산역에서부터 미어터졌다.  그것이 당시 평범한 대한민국 원주민들의 삶이었다. 그림책을 읽으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가 이렇게 아득하게 느껴지는 점이 신기했다가 아버지의 보수적인 사고방식이나 엄마가 가끔씩 보여주는 갑갑함에 실망스러웠다. 그러다 이내 시대와 환경이 이러하니 부모 세대의 세계관은 다를 수밖에 없겠다는 이해가 생긴다.
 

"운동화 없는 게, 집에 텔레비전 없는 게 그리 부끄러워? 너 자꾸 그러면 어른 돼서도 거짓말만 한다?" "옴마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 "왜 또 울어? 거짓말 안하겠습니다 하면 되잖아." "으아아앙" "알았어, 안 그럴께. 내가 잘못했어. 울지 마. 뚝." - p. 40


<원주민>에 등장하는 가족은 일일연속극이 보여주는 화목한 중산층 가족이 아니다. 무턱대고 정의롭고 선한 인물도 없고 무작정 악한 사람도 없다. 과장되거나 아름답게 포장되지 않아 오히려 더욱 진솔하게 다가온다. <원주민>은 때로는 심심한 나물 같기도 하고 때로는 격한 갈등에 휘말리기도 하는, 어느 동네에나 살고 있을 것 같은 가족의 생생한 역사드라마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정말 다른 세계를 살아온 듯한 생경한 이야기에 매료당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이 겹치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경험과 삼촌들 그리고 이모들의 성장기가 겹쳐진다. 무엇보다 가족들의 삶을 관조하는 작가의 시각이 따뜻하다. 술만 마시면  어머니를 쥐 잡듯이 패는 아버지가 어린 아이의 시선에서는 폭군으로 그려질 법도 한데, 오히려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몇 번이고 반추하면서 그의 고단함을 이해하고 있다. 나이를 떠나 작가가 삶을 통찰하는 내공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느껴진다.  


시대는 끊임없이 변하고 이제 대한민국 원주민들이 사라지고 있다.  작가가 원주민의 정의에서도 말했듯이 그때는 일상이었던 것들이 이제는 박물관에나 가야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는 사라져서 다행인 미개한 생활문화도 있고 많이 아쉬운 추억들도 있다. 지금 소망하는 것은 그 당시 우리네 마음,  원주민의 순수하고 열정 가득한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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