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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Oct 04. 2023

유일한, 평범


 


육아는 나의 상상 범위를 넘어서는 무엇이었다. 내가 감당해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하루하루 확인하는 나날이었다. 아이를 돌보며 느끼는 감정이란 경탄, 환희, 신비로움 같은 거라고 배웠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런 아름다운 감정보다 더 자주 공포와 무력감과 부담감에 압도당해야 했다. - p.103 


그의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할까. 9년 동안 MBC(문화방송) 아나운서로 활약하다가 170여일에 걸친 파업 이후 퇴사했다. 2017년, 8년을 기다린 쌍둥이 남매의 탄생과 육아로 경력 단절 여성이 됐다. 전 아나운서, 프리랜서 방송인이자 초보워킹맘 최현정의 인생 2막은 여기서 다시 출발한다.  


아이를 가진 뒤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나라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데 사람들은 엄마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아예 다른 사람이 되는 양 생각하는 것 같다. '나를 챙길 줄 아는 엄마가 되어야지.' '어떻게든 하던 공부도 마무리 지을 거야.' 마음먹어 보지만 내가 세운 계획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삶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에세이 <유일한, 평범>은 경단녀라는 낯선 분류, 프리랜서라는 어색한 호명, 육아라는 새로운 세계 등, 예기치 못했던 여러 변화 속에서 하루를 조금은 더 잘 완성하고자 애쓴 날들의 기록이다. 최현정 작가는 엄마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계획을 차근차근 세워나가면서 조금 느리지만 나만의 속도로 노력한 과정을 담담하게 고백한다.  


책을 읽으며 든 느낌은 단연 솔직함이었다. 예쁘거나 멋지거나 그럴 듯해 보이도록 포장하지 않고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보여준다. 퇴사와 더불어 육아에 몰두하느라 가정생활에 고립된 채 3년을 보낸 뒤, 내가 없는 세상이 너무 잘 돌아간다는 생각에 문득 괴리감이 들었다는 고백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아이 낳고 얼마 만에 복귀했다는 연예인을 보면, 정말 아기 낳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빠르고 완벽하게 산후 조리가 끝난 모습에 놀란다. 여전히 빽빽한 머리숱, 맑고 투명한 피부, 붓기 하나 없는 매끈한 몸, 심지어 선명한 복근까지. 브라운관에 비친 그들의 모습에 반감이 들기도 하면서 스스로 더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최현정 작가는 우선순위를 육아로 정하고 흔들리지 않으려 애썼다. 육아에 몰입하기 어려웠지만, 나가서 일하는 것도 엄두도 안 났던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 


길게 늘어지는 엿가락처럼, 쉼 없던 육아에 지쳐있던 때, 마음속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푸념하고 싶어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난임과 시험관 시술 등 쌍둥이를 출산하기까지의 과정들을 소개하고, 엄마들의 최대 관심사인 교육에 대한 진솔한 고민을 담았다. 대학원을 다니고 상담사 수련을 공부하면서 성찰한 이야기도 넣었다. 그렇게 현실의 삶에 발을 붙이고 있는 콘텐츠에 육아와 일상을 오가며 고군분투한 이야기를 글로 묶어 펴낸 책이 <유일한, 평범>이다. 최현정 작가는 솔직한 마음을 내보였더니, 공감의 마음이 되돌아왔다고 말한다. 


특히 오랜 시간 아이를 기다리는 독자들을 향해서는 자신의 난임 경험을 이야기하며 “시험관 시술 과정에서 아픔도 있고 힘겨움도 있지만, 떨어져도 백 번씩 더 볼 수 있는 시험”이라고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더불어 특별함을 꿈꾸지만 평범에 머무는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에 와 닿기를 희망한다고 전한다. 그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의 시간이 참 예쁘고 소중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첫 번째 직업이자 그의 정체성을 규정했던 명함, 아나운서를 떠나 지금은 심리상담가로 거듭났다. 상담은 인생을 더 이해하고 인간을 깊이 있게 알아가는 인생과업 중 하나로, 상담사가 되어 가는 과정도 하나의 성숙한 인격체로 거듭나는 과정과 같다.  


최현정 작가는 아나운서 출신인 장점을 최대한 살려 연예인 등 대중에게 노출되는 직업군을 대상으로 한 상담에 특히 관심이 많다. 대중에게 사적인 부분까지 노출되는 직업이 정서적으로 취약해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에 이들의 심리 건강을 살피는 상담을 하고 싶다고 한다. 책에는 상담사로의 단계를 밟아가며 느끼는 고민과 일화도 담겨있다. 이 모든 과정을 관통하며 나와 세상, 인생에 대해 발견한 성찰이 잔잔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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