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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Oct 10. 2023

타샤의 집



 


지난주, 친구가 책 몇 권을 줬다. 밝고 따스한 이야기로 마음을 채우고 싶어하는 벗을 위한 배려였다. 표지에는 뜨개질을 하는 할머니와 집안 소품이 있었다. 자급자족 공동체인 아미쉬 마을 사람들 이야기인가 싶어 책 머리말을 들춰봤다. 간단하게 정의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집 안과 정원을 소개하는 사진을 하나하나 넘기는 동안 감탄이 절로 나왔고 중세로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아득함이 있었다. 


책 이름은 ‘타샤의 집(Tasha Tudor's Heirloom Crafts). 미국 버몬트주 시골에서 동화 같은 삶을 산 동화작가이자 일러스트 화가 타샤 튜더의 이야기이다. 처세서와 실용서가 넘실거리는 독서 시장에 그녀의 책은 순수함 그 자체다.  


그녀의 집은 마치 오래된 보물 상자 같다. 숲속 물푸레나무로 만든 바구니, 손바느질한 19세기식 드레스, 직접 키운 아마로 짠 리넨, 초지의 미역취를 염료로 물들인 실, 그 실로 베틀질해서 만든 체크무늬 셔츠, 허브로 만든 핸드크림, 양모로 짠 장갑과 숄 등 추억이 깃든 물건들로 가득하다. 책은 타샤의 집과 그곳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핸드메이드 라이프를 글과 사진으로 담은 에세이다.  


이 책의 미덕은 무엇보다 타샤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이 2023년을 사는 우리에게 색다른 울림을 준다는 점이다. 1915년에 태어나 92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메이플라워호에서 막 내린 듯한 청교도적 경건함을 유지하고 살았다. 수십 년간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여 가꾼 30만평 정원에서 아름다움을 넘어선 주인공의 삶의 철학을 볼 수 있다.  


생활은 사부작사부작 매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핸드메이드 라이프이다. 타샤는 진귀한 도구들을 이용하여 지금은 잊혀진 과거의 방식으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직접 만든다. 손수 천을 짜서 옷을 짓고, 장작 스토브로 비스킷을 구우며, 염소젖을 짜 직접 버터와 치즈를 만든다. 가을에는 한 시간씩 뜨거운 냄비 위에 허리를 굽힌 채 일 년 동안 쓸 양초를 만든다. ‘기쁘게 일하고, 해놓은 일을 기뻐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괴테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 같다.  


그렇다고 그냥 몸만 부지런한 노파가 아니다. 동네 어린이들을 위해 마리오네트 인형극을 공연하며, 스스로 키워 말린 허브를 끓여 오후의 티타임을 즐긴다. 본업인 일러스트레이션 작업도 쉬지 않아 끊임없이 새로운 ‘소공녀’를 그려낸다. 연못에 작은 배를 띄우며 오후의 햇살을 즐기기도 한다. 손발은 거칠고 얼굴은 주름으로 가득해도 그녀의 생활에는 평화가 느껴진다.  


공장에서 기계로 대량 생산된 물건들에 둘러싸인 채 살아가는 우리들. 물질의 풍요에도 불구하고 늘 부족하다며 백화점과 대형할인점을 뒤지고 다닌다. 더 고급인 것, 더 편리한 것, 더 최신인 것들을 찾아 헤맨다.  


그러다가도 특별한 날 마음이 담긴 선물을 해주겠다며 털실로 목도리를 뜨고, 공들여 반죽해 구운 쿠키를 선물한다. 한땀 한땀 엮은 비즈 가방을 만들어 짐짓 자랑스럽게 메고 다닌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수제 예술품임을 강조하면서. 이렇듯 우리는 공장제품에 익숙하지만 본능은 자연을 재료로 손수 만든 것들에 끌린다. 그렇게 만든 물건에는 만든 이의 따스한 숨결이 녹아 있기 때문이리라. 


지금 인생에서 시련을 맞닥뜨렸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타샤의 집으로 가보라. 소박하게 누리고 나누는 그녀의 삶에서 편안한 위로를 느낄 것이다. 아흔둘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뜨개질로 스웨터를 만드는 그에게서 희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원 일과 집안 일, 그림 그리기 등 한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영혼에 우울함이나 외로움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스스로를 행복한 사람이라 자부하는 타샤 튜더의 낙천성은 부지런함으로부터 오는 듯하다. 육체의 부지런함은 고요한 물과 같은 정신의 평화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타샤는 ‘게으른 손은 악마의 놀이터가 된다’고 말한다. 그저 손에 일감을 들고 있는 것을 좋아할 뿐이라는 그녀는 한결같이 맑은 소녀 같은 모습이었다. 가을이 짙어지면 타샤의 집이 더욱 그리워질지 모르겠다. 손으로 만드는 기쁨이 충만한 그곳, 염소젖으로 만든 버터를 고풍스러운 무늬의 목각 틀에 찍어 상에 올리는 매혹적인 그녀를 만나고 싶다. 


원래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는 법이다. 또 모든 것은 조화를 이룬다. 정원의 메마른 허브는 겨울에 염소들을 건강하게 해주고, 염소는 손님들에게 대접할 치즈를 만드는 우유를 대준다. 타샤의 생활은 매사가 보기 좋게 어우러진다. - p.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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