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는 노르웨이의 문학 거장 욘 포세(Jon Fosse). 그의 이름이 발표되자 한 기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포세를 처음 읽는 독자라면 어떤 책부터 읽기를 추천하나요?” 안데르스 올슨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장은 장편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을 강력하게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 소설은 한 어부가 태어나고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인간 존재의 반복되는 서사, 생의 시작과 끝을 압축적으로 담아냈다. 뚜렷한 사건이나 등장인물은 없다. 이 단순한 구조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는 약 150쪽짜리 소설에 마침표가 열 번 남짓 사용된다는 점이다. 간결한 문장 속에 마침표가 있어야 할 자리는 독자가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그림을 그리게 만든다.
이야기는 노르웨이의 작은 해안가 마을에서 요한네스라는 사내아기가 태어나며 시작한다. 늙은 산파가 서둘러 더운물을 방에 들여가고, 아이 아버지는 산모의 절규를 들으며 문 앞에서 서성인다. 소설이 아기 엄마의 산통을 토막토막 전하는 대목은 한 편의 실험적인 시처럼 읽힌다. 희곡에서 언어와 침묵을 뒤섞는 독특한 시도를 해 ‘21세기 사뮈엘 베케트’로 불리는 포세의 작품답다.
2장은 훌쩍 시간을 뛰어넘는다. 어부 할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은 요한네스는 이제 늙은 어부가 되었다. 아내는 먼저 여의고 홀로 남았다. 고기잡이 일마저 예전 같지 않다. 이제 내 몫은 다 했다고 생각하던 즈음, 마을을 서성이던 그의 앞에 오래전 세상을 떠난 친구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급하게 어딘가로 달려가는 막내딸을 발견하고 이름을 불러보지만 딸은 요한네스를 돌아보지 않는다. 달려가던 딸이 도착한 집에는 숨을 거둔 요한네스가 누워 있다.
<아침 그리고 저녁>은 삶과 죽음의 원형을 담은 액자 같다. 소설은 침묵을 통해 여러 해석의 여지를 제공한다. 마침표를 찍지 않은 문장들은 열린 결말을 넘어 열린 장면, 열린 묘사를 보여준다. 예컨대 1장에서 요한네스를 낳은 뒤 말을 잃어가는 산모의 모습은 죽음을 암시하는 듯하지만, 소설은 상황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북유럽 특유의 철학적이고, 허무한, 그러나 반짝이는 순간을 포착해 탁월한 서사로 길어 올리는 재치가 엿보인다. 욘 포세 작가는 간결하고 음악적인 언어, 제자리를 맴도는 듯한 불투명한 서사, 심연에 파묻힌 인생의 환영을 통해 인간 내면에 자리한 불안을 작품에 녹여낸다. 그러면서 생명의 빛을 향한 희망의 시선 또한 놓칠 수 없다. 짙은 허무에 깃든 외로움의 정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욘 포세의 작품 특징은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계속 읽게 되는 마성의 매력이 있다. 삶과 죽음이라는 불멸의 소재에다 여백을 통해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매력적인 글쓰기 방식 덕분이다. 평범한 인물이 태어나고 또 스러지는 과정은 누구나 겪는 일이기 때문에 내면의 불안과 그리움을 툭툭 건드린다. 소설 속 장면들은 어쩌면 우리도 언젠가 맞닥트릴 풍경일 것이다. 비극이 그리 비참하지 않은 이유는 작가가 남긴 따스한 위로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닥칠 일은 닥치는 법이야, 그가 말한다 / 사람이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언젠가는 우리 모두 차례가 오는 걸, 그가 말한다 / 그런 거지 뭐, 그가 말한다. - p. 124
노벨문학상을 심사한 스웨덴 한림원은 욘 포세 작품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에 목소리를 부여한 혁신적인 희곡과 산문”이라 평가했다. 욘 포세는 그동안 여러 작품 속 관계들로 죽음, 상실 등 인간의 어두운 감정들의 사이를 세밀하게 들여다봤다. 문학은 죽음을 배우는 방법이라고 직접 밝힐 정도로 그는 생과 사를 깊이 연구한듯하다.
1959년 노르웨이의 해안도시 헤우게순에서 태어난 욘 포세는 희곡과 소설 등 다채로운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다. 작법이 매우 독특한데, 주로 간결한 대화체 문장을 쓰며 마침표를 사용하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 독백을 들려주는 배우처럼 주인공 내면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울리는 데 비해 인물들끼리의 대화는 과묵하고 삭막하기 그지없다. 침묵이 이어지며 ‘그래’ ‘아니’ ‘그리고’와 같은 단어가 반복될 뿐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현대인들의 소통 방법을 문학적으로 탁월하게 표현해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