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 소설파 vs <해리포터> 영화파. 이 세상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당신은 어디에 속하는가? 어느 쪽에 더 끌리는지 답하기 위해 영화를 재생하고 책장을 넘기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는 동안 이야기와 또 한 번 사랑에 빠지고, 답을 찾고자 시작했지만 어느새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잊게 된다. 매력적인 캐릭터, 독특한 설정, 결말까지 내달리는 몰입력을 가진 문학 작품들이 부지런히 드라마·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는 요즘, 경계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즐겨보자.
2013년작 <바람이 분다>를 끝으로 영화 제작에서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던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말을 번복하고 10년 만에 복귀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미야자키 감독이 실제로 동명의 책을 읽고 감명 받아 영화 모티브가 됐다고 알려졌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1937년 일본의 언론인이자 지식인이었던 요시노 겐자부로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삶의 지침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시기 군국주의에 반발한 일본 지식인들이 청소년들을 위해 펴낸 ‘소국민 문고’ 16권 시리즈의 마지막 책이다.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 기운이 확산하는 가운데 자유주의자였던 요시노는 아직 청소년들에게는 희망이 남아 있다고 믿었고, 파시즘의 시대에 인본주의 정신을 지키고자 했던 노력을 책에 담았다. 꿈을 가지고 정의롭게 사는 법을 책을 통해 전해주려 했다.
15살 소년 코페르가 학교와 집에서 각종 에피소드를 겪으며 삶과 세상에 대해 사색하면, 그의 외삼촌이 휴머니즘적이고 진보적인 시각과 철학·종교·과학·경제학 지식을 바탕으로 조언을 전하는 일종의 멘토링 형식으로 구성됐다.
주인공의 별명인 ‘코페르’는 지동설로 서구권 세계 인식에 혁명을 일으킨 코페르니쿠스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코페르가 백화점 옥상에서 북적이는 긴자 거리를 내려다본 뒤 “사람은 정말 분자인 것 같아”라는 깨달음을 고백하자, 외삼촌이 “오늘 네가 스스로를 넓은 세상의 분자로 여겼다는 건 정말 큰 사건이란다. 네 인생의 관점이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뀐 것이니까”라고 말한다.
외삼촌은 ‘야심 때문에 수많은 사람을 죽게 한 나폴레옹을 위인이라 할 수 있을까’처럼 파격적인 질문을 던지며 세상의 진리를 스스로 고민해 볼 것을 강조한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살아가지 못한다면 인류가 쌓아 올린 문명은 거짓이 돼. 모두가 똑같이 대접받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은 거짓이야. 정직한 사람이라면 이 생각에 반대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 우리가 정직하게 생각해도 세상은 정직해지지 않는구나. - p.121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만든 영화는 책에 대한 단순한 각색이 아니다. 책 속에 묘사된 것과 유사한 장면이 펼쳐질 만큼 큰 모티브를 얻었을 뿐이다. 영화의 제목이자 주인공 캐릭터가 눈물을 흘리며 읽는 책,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언뜻 영화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감독이 영화에 담으려고 하는 속내이자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관통한다. 주인공 소년의 큰아버지가 말하는 ‘네 힘으로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어라’라는 대사는 미야자키가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메시지인 셈이다.
이번 영화는 전쟁의 그림자 속에서 성장한 또 한 명의 ‘코페르’를 그리고 있다. 전쟁 무기에 대한 동경과 동시에, 일본인으로서 도덕적 결함이 없는 지도자와 평화에 대한 열망을 영화에 담아내려 애쓴 자신의 모순적 행보를 이 영화를 통해 설명하려 한다. 미야자키의 손자를 위해 자서전을 쓰는 심정으로 작품에 임했다는 그가 책 속 외삼촌처럼 미래 세대에게 건네는 질문은 무엇일까?
1년 반 넘게 계속되고 있는 러시아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무력 충돌을 비롯해 여전히 크고 작은 분쟁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자본이 인간성을 압도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인간다움이란 무엇이며, 후대가 살기 편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슨 노력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모두에게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