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죽었으면 좋겠다.'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은 여덟 살 아이가 너무 버거워 엄마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이것이 병이라면 분명 치료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믿음에 엄마는 아들과 온갖 치료 시설을 전전하며 완치에 집착한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엄마를 두고 아이를 학대한다고 말한다.
어느 날, 드디어 엄마의 꿈이 이루어졌다. 버지니아의 작은 마을 미라클 크리크에서 한국인 이민자 가족 유씨가 운영하는 고압산소 치료 시설 ‘미라클 서브마린’의 산소탱크가 폭발해 아들이 죽었다. 화재는 단순 사고가 아니라 담뱃불에 의한 의도적인 방화라는 결론이 나고, 엄마가 방화 혐의로 기소된다. 그날 엄마가 쓴 “오늘 끝내자!”라고 적은 메모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자폐아들을 죽인 비정한 엄마일까, 누군가의 치밀한 계략에 휘말린 억울한 엄마일까.
한국계 미국인 작가인 앤지 김(한국명 김수연)의 데뷔작인 장편소설 <미라클 크리크>는 죄와 죄 아닌 것의 구분을 작가 특유의 명료함으로 설명한다. 나흘간의 살인 재판을 따라가면서 그날 정말로 무슨 일어났는지 서서히 밝혀지고, 마침내 삶과 세상의 누추한 비의가 하나둘씩 벗겨진다.
처음에는 고압산소 치료가 비과학적인 자폐 치료이며 아동 학대라 주장하던 시위대가 용의자로 지목됐으나, 조사가 이어질수록 화살은 뜻밖의 곳으로 향한다. 그날따라 미라클 서브마린을 떠나 밖에 홀로 있던 아이의 엄마. 그리고 엄마는 방화에 쓰인 것과 같은 브랜드의 성냥을 갖고 있었다.
그런 게 바로 인생이었다. 모든 인간은 백만 개의 경우의 수가 얽히고설킨 결과물이었다. 백만 개의 정자 가운데 하나가 정확한 시간에 난자에 도달해 탄생하는 인간은 천분의 일 초라도 어긋났다면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되고 만다. 하나씩 놓고 보면 하찮기 짝이 없는 사소한 것들 수백 개가 모여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 p.306
앤지 작가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책 속의 무수한 맥락들이 내 인생의 궤적과 맞닿아 있는 아주 사적인 책”이라고 밝혔다. 과거 법정 변호사였던 경력을 소설로 끌어와 법정 드라마의 현실성을 높인다.
특히 특수 아동을 키우는 부모의 황량한 내면이 섬세하게 그려져 가슴이 아프다. 그날 화재로 뇌성마비 딸과 함께 죽을 뻔한 테리사는 법정에서 자유와 해방감을 느낀다. 몇 년간 치마를 입은 적도, 혼자 있던 적도 없었던 테리사는 늘 휠체어를 타는 중증 장애인 딸과 함께 다녔다. 법정에 서는 시간은 딸에게 장애가 생긴 후 처음으로 홀로 있는 시간이었다. 다른 특수 아동 엄마들도 “여기 오기가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볼멘소리를 내면서도 신난 기색이다. 그들 역시 아이가 죽는 상상을 속삭이다 이내 아이에 대한 사랑을 다짐하는 양가감정을 넘나들고 있었다.
책에는 1980년, 11세 때 미국 볼티모어로 이민을 온 작가의 삶과 경험이 곳곳에 녹아있다. 부모가 식료품점에서 숙식하며 일하는 동안, 작가는 볼티모어의 이모 집에서 지내며 낯선 나라에서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한국에서는 친구도 많은 똑똑한 아이였는데, 미국에선 영어를 말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상한 옷을 입고 아는 사람도 없는 외국인 중학생이 된 현실이 혼란스러웠다.
소설 속 십대 이민자인 메리 유와 가족이 미국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친밀함을 잃는 내용이 작가와 닮았다. 기러기 아빠로 4년을 버텼던 남편 박, 홀로 키운 딸과 멀어진 아내 영, 학교에서 '짱깨'라 놀림당하며 낯선 집에서 밤늦도록 엄마만 기다리는 딸 메리.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미국을 찾았지만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가족의 모습에서 내면에 깊이 막힌 열등감과 상처가 보인다.
<미라클 크리크>는 제목과 달리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저마다 간직한 비밀을 털어놓고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지만 죽은 아들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정의가 완전히 실현될 가능성도 없다. 이 소설은 불공평한 비극 앞에서도 선하고자 노력했지만 끝내는 실패하는, 그럼에도 반성하고 책임지며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들의 기적을 담아냈다. 우연이 겹쳐 재난이 되고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 자신의 책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자리에 인간의 의지가 있고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