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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Dec 21. 2023

맘카페라는 세계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는데 어떻게 하죠?” 공휴일 밤늦은 시간에 질문이 올라오자 순식간에 동료 엄마들의 댓글 수십 개가 달린다. 어디로 누굴 찾아가라, 무엇을 챙겨가라 같은 구체적인 조언들이다. 과거 친정엄마나 옆집 문을 두드려야만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가 이제는 '맘카페'라는 온라온 모임으로 해결된다. 병원, 학군, 집구하는 정보부터 어느 마트에 스리라차 소스가 입고됐다는 잔잔한 소식까지 모두 맘카페로 통한다.      


엄마들의 커뮤니티, 맘카페란 도대체 어떤 공간인가? <맘카페라는 세계>는 5년여간 수도권 한 지역의 맘카페를 운영한 현직 경력자 정지섭 작가가 내부자의 시선으로 분석한 책이다. 2000년대 중반 탄생한 맘카페는 대체로 금남의 구역이다. 원래 자녀가 있는 엄마들이 육아 경험과 교육, 지역, 살림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23년 현재 그 수만도 네이버 기준 약 1만2000개 이상이 존재한다. 같은 생활권에 있다는 이유로 맘카페의 구성원이 되고, 이 공간에서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타인과 가감 없이 나눈다.  


맘카페의 실상은 평범하다. 정보에 목마른 엄마들이 육아, 교육, 살림 정보를 공유한다. 엄마들의 고민은 이 소소함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덜컥 떠안게 된 출산과 육아로 인한 공포, 이민자로 살아가는 고충을 이 지역 육아 동지들에게 의존할 뿐이다. 하지만 때로는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 여러 사람의 입과 손을 타고 바람처럼 번지기도 한다. 정지섭 작가는 마치 마녀들이 쑥덕이는 소굴처럼 보이는 맘카페는 대한민국의 모든 것이 압축된 블랙박스라고 고백한다.


평범한 듯 보이는 이 공간에는 불문율이 있다. 둥글둥글함이다. 이용자끼리는 서로를 향한 불편함을 드러내지 않고 공격성을 숨긴다. 맘카페, 특히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모임은 기존에 맺어왔던 우정 기반의 관계가 아니라 아이 매개의 관계이다 보니 급속히 친해졌다가 순식간에 등 돌릴 수 있는 관계이다. 자나 깨나 말조심, 반대의견 숨기기, 자식자랑 금지 등 일명 묻어가는 행동 요령이 필요하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맘카페 내부에 만연한 자신을 약자로 여기는 문화이다. “제가 앞에서 바로 뭐라고 할 성격이 아니어서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 (맘카페에) 올리는 것밖에 없어요”. 맘카페에 단골로 등장하는 표현이다. 작성자는 나는 힘이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명시하며 공감을 유도한다.  


공격성을 숨긴 “저만 불편한가요?”라는 표현이 동조를 끌어내며 무시무시한 폭발력을 가져오고, 정의를 실현한다는 신념에 사로잡혀 저격 대상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약자는 선량하다는 함정이 나의 이기심을 강화하고 집단의 힘을 좇는 일로 이어졌던 건 아닐까.   


어떤 민감한 쟁점에서든 맘카페 구성원으로서 집단의 소속감과 균일함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대세의 의견에 반대하는 의견을 표현하는 일이 적다. 이 공간에서는 트러블메이커가 되어 소외될 위험에 빠지는 것보단 침묵을 선택하는 것이다. - p. 181


끊임없이 맘카페 상업화와 정치화 논란이 터지는 이유는 뭘까. 맘카페는 매력적인 마케팅 공간이다. 회원들은 실사용자의 후기와 진솔한 경험담을 원하는데 식당 벽면에 붙은 광고 전단지보다 “우리 애가 써봤는데 좋더라”는 게시판 칭찬 한 줄을 더 신뢰한다.  


이 특성을 파고들어 광고가 진화하고 있다. 가게에서 홍보비를 받고 좋은 후기를 올리는 등 부업 삼아 카페 활동을 하는 회원들이 있는가하면 운영자가 다른 회원을 제재하거나 탈퇴시킬 수 있는 권한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여론을 몰아가기도 한다. 친정 엄마가 직접 만든 쿠키를 팔아도 되는지 물었다가 '홍보 글을 올렸다'며 이용 정지 처분을 내린다. 카페 이용자들은 홍보하려면 돈을 내라는 것이냐며 진짜 정보를 공유하는 선량한 엄마들만 피해를 본다고 하소연한다.


같은 지역에 사는 엄마들끼리 정을 나누고 집단 지성을 모으는 창구 역할을 해온 맘카페, 맘 깡패로 변질될지 건강한 커뮤니티로 성장할지는 운영자와 사용자 모두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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