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기지촌에서 성매매 하던 양공주, 어쩌다 미국으로 흘러들어와 지독한 인종차별을 경험한다. 남편에게 매를 맞으면서도 억척스럽게 남매를 키워낸다. 하지만 고생이 너무 심했던 탓인지 40대에 조현병 환자가 되었다. 엄마는 이해가 되는 사람이면서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기도 하다.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엄마가 부끄러웠던 적도 많다. 스태튼아일랜드대학 사회학·인류학 교수인 그레이스 엠 조가 어머니 삶을 반추하며 쓴 책 <전쟁 같은 맛>이다.
어머니의 삶을 건조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과 미군정기를 겪었고, 한국전쟁 통에 아버지와 오빠, 언니를 잃었다. 60년대 기지촌에서 일하며 미군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고, 그 뒤엔 미국인 선원을 만나 작가를 낳고 결혼했다. 70년대에 남편을 따라 미국 워싱턴 주 작은 마을에 정착한다. 극심한 외국인 혐오와 조현병에 맞서 세상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격리시킨 채 살다 심근경색으로 숨을 거둔다. 짤막한 서술에서도 전쟁 생존자, 성노동자, 이민자, 소수 인종, 정신질환자 등 활자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복잡한 생애가 짐작된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어머니가 미국에 온 이유는 추방이었다. 당시 정부는 기지촌 성산업을 외화벌이라고 적극 장려했고, 젊은 여성들은 생존을 위해 기지촌에 갔다. 그렇게 등떠밀어 일 시킬 때는 언제고 이내 '양갈보'라는 낙인을 찍어 배척했다. 아버지들은 딸이 일해서 번 돈으로 빚을 갚았으면서도 그 딸을 호적에서 파냈다. 애초 이승만 정부는 혼혈 아동을 한국 국적자에서 배제하고 대통령 긴급명령까지 내려 그들을 국외 입양시킨 바 있다.
엄마는 살아남기 위해 미국으로 왔다. 작가의 가족은 워싱턴 셔헤일리스에 정착한 최초의 아시아인이자 수십 년 만에 나타난 이민자들이었다. ‘칭크’, ‘잽’이라 불러대는 사람들 앞에서 한국인이라 항변하던 작가는 점차 “나는 하프 코리안이야”, “아빠가 미국 사람이야”로 바뀐다. 생존전략으로 배경에서 엄마를 지우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작가가 어릴 때 기억 속 엄마는 미국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사람이었다. 영어와 미국 요리를 열심히 배워 동네 사람들을 초대했다. 딸이 한국 땅에서 ‘양공주 자식’이라고 놀림 받는 대신 비교적 평범한 삶을 살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감시하고 해치려 한다는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가족들은 일과 공부, 독립을 이유로 엄마를 방치했다. 고국에서도, 자유의 땅에서도 보호받지 못한 엄마를 두고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결코 살아남을 운명이 아니었다고, 그리고 그건 사회적 죽음이라고.
이 책의 백미는 작가가 그려내는 엄마의 세 번째 모습이다. 굳게 닫힌 엄마의 세상을 비집고 들어간 건 다름 아닌 딸이 만든 한식이었다. 작가는 들어본 적조차 없던 생태찌개를 끓이고, 생일 밥상에 갈비와 콩나물무침을 올렸다. 한국 음식은 엄마의 과거를 보드랍게 놓아줬고 단조로운 삶을 조직하는 봉홧불이 됐다.
미국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한국 음식이 그리워 힘들다고 토로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음식은 먹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오죽하면 '솔(soul) 푸드'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미국 노예제 시대에 끌려간 흑인들은 싸구려 식재료를 고향의 방식대로 요리해 먹으며 폭력에서 살아남았다. 그들에게 음식은 그리움의 종착점이기도 했다.
작가는 전공을 살려 낙인으로 얼룩진 엄마의 삶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다. 한인 이주여성의 삶의 궤적을 탐구했다. 엄마가 겪어야 했던 고난이 미국 군사주의와 한국의 독재 정권, 외국인 혐오가 평범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조직적 폭력이었다.
지난해 대법원은 미군 기지촌 여성들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기지촌의 조성・관리・운영, 성매매 정당화・조장 등의 불법행위는 원고들의 인격권 내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해 정신적 피해를 입혔다”는 취지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레이스 작가는 “엄마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지금 목소리를 내고 있는 기지촌 여성들과 늘 함께 하는 모습을 상상한다”고 말했다.
엄마의 요리법은 열등하다고 여겨졌던 과거사를 거스르는 주문인 듯싶었다. ···“40년 만에 먹어보네.” 엄마가 말했다. 꿈을 꾸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 p.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