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책을 읽어볼까 고민이 될 때는 서점 베스트셀러 섹션부터 뒤진다. 많이 팔린 책이 꼭 좋은 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여론은 참고할만한 좋은 지표가 되기도 한다. 베스트셀러는 시대의 공감이다.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읽힌 책을 살펴보면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고민과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알 수 있다.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흥미로운 제목 하나를 발견했다. 8년 전에 나온 최진영 작가의 소설 <구의 증명>이 2023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사랑과 상실, 행복과 불행에 대한 공감은 시대를 가리지 않기 때문일까.
책을 읽으면 모든 문장에서 역주행 이유를 알 수 있다. 연인의 죽음을 겪지 않았더라도 죽을 것 같이 괴로운 이별을 한 사람이거나 절절한 사랑 한 번쯤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쉬지 않고 책을 읽어나갈 수 있다. 잘 쓰는 작가는 본문을 지나 읽는 ‘작가의 말’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책은 ‘작가의 말’에서도 놓치고 싶은 문장이 없다. 최진영 작가는 “나는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분명 살고 있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빠진다”고 썼다.
<구의 증명>은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연인이 어이없는 죽임을 당하자 식인 행위라는 괴이한 방법으로 사랑을 증명하는 독특한 소재의 단편소설이다. '구는 길바닥에서 죽었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연인인 '담'이 '구'의 신체를 먹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이어진다.
쇄골까지 내려온 구의 머리칼을 어루만지니 푸석한 머리칼이 한 움큼 빠졌다. 담은 손에 쥔 그것을 가만히 보았다. 버릴 수 없어서, 돌돌 말아 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니...
외롭고 처절한 사랑, 길에서 죽은 구를 데리고 와 조금씩 뜯어 먹으며 주검을 은폐하는 담, 참으로 충격적인 내용이다. 담이 이렇게라도 구의 죽음을 증명하려는 의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오싹하게 잔인한 장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숨에 읽히고 가슴이 애잔해지는 이유다.
그리고 이야기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설 속의 인물이자 연인인 구와 담은 어린 시절을 함께했고, 첫 경험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을 동행했다. 이 둘은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거친 세상에 내던져졌지만 서로에게 깊이 의지한다. 척박한 환경은 그들을 놔두지 않고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한참을 만나지 못하다 영혼이 연결된 것처럼 서로를 그리워하던 둘은 다시 만난다. 하지만 구의 부모가 진 사채 빛 때문에 쫓기는 삶을 함께 하다가 구가 길바닥에서 허망하게 죽자 따라 죽기로 했던 담은 마음을 바꿔 구를 먹는다.
호러 판타지인가? 충격으로 시작했다가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면 먹먹하고 뭉클해진 가슴을 쥐게 한다. 문득 애니메이션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일본 소설가 스미노 요루의 데뷔작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떠오른다. 언뜻 제목만 보면 일본의 괴기 호러물쯤으로 착각되는 이 작품은 사실 췌장이 망가져 시한부 인생을 사는 활달한 소녀와 우연히 그녀가 시한부인 걸 알아버린, 혼자인 게 편한 소년의 청춘 로맨스다.
췌장이 아픈 여주인공이, 옛날 사람들은 치료를 목적으로 자신이 아픈 부위와 똑같은 동물의 부위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주인공에게 건네는 말에서 제목을 따왔다. 이 작품은 질풍노도의 시기, 예고 없는 죽음을 마주하면서도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나 관계를 맺고 변화해 가기 위해 노력하는 여정을 그린다. 그렇게 서로 소중한 사람이 되어 간다는 울림을 준다.
두 작품은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죽음을 맞은 연인의 신체를 먹음으로써 모든 것이 소멸되는 이별의 죽음이 아닌 영원히 함께하기를 바라는 애틋함을 그려낸다.
이승에서 너를 사랑했던 기억, 그 기억을 잃고 싶지 않다. 그러니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네가 나를 기억하며 오래도록 살아주기를. 그렇게 오래오래 너를 지켜볼 수 있기를. - p. 173
<구의 증명>에서 담이 구의 시신을 먹어치운 행위는 무엇을 위해서였던가? 소설 제목이 알려준다. 구의 존재 증명을 위해서, 종교적 의식에 가까운 카니발리즘을 행한다. 죽은 그를 아직 살아있는 나의 몸에 받아들임으로써 그가 살아 존재했었고, 또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있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째서 담은 그러한 방식으로 구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냐 묻는다면 특별한 애도 방식이었다고 짧게 말할 수 있겠다. 담이 생각하기에, 살아서 뭇 사람들로부터 생명을 가진 인간 존재로서가 아니라 물건 취급을 받았던 구이기에 그의 죽음을 애도할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구의 죽음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어떤 애도도 표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는 차라리 잘 됐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구의 몸을 땅에 묻을 수도 불에 태울 수도 없기에 담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되살려낸다.
우리는 먹고 싶을 만큼 절실하게 사랑하고 있나요?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달콤했던 그를 기억하고 있나요? 라고 물어주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