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는 새로운 마음으로 효율적으로 일 잘하기, 셀프 브랜딩 같은 키워드를 올해 목표로 삼아보지만 또다시 여러 상황을 핑계로 적당한 선에서 현실과 타협하려는 자아가 튀어나온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분노하는 내 모습 자체가 스트레스다. 하루라도 스트레스 없이 일하기란 과연 판타지인가. 그리고 그 스트레스란 십중팔구 사람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째서 모든 회사에 돌아이가 꼭 한 명씩 있을까? 그 돌아이를 잘 분석해보면 혹시 스트레스를 덜 받는 법도 찾을 수 있을까? 뉴욕대 사회심리학 교수이자 돌아이 프로파일러로 불리는 <사무실의 도른자들> 저자 테사 웨스트에게 답을 물었다.
원제는 'JERKS AT WORK'인데 한국어판 제목인 <사무실의 도른자들>이 더 마음에 든다. ‘맑눈광’ ‘기존쎄’ ‘꼰대 상사’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하는 빌런들을 풍자하는 단어는 다양하다. 그런데 '도른자들'이 유독 와 닿는 이유는 평범하고 점잖은 와중에 차분하게 미친 인간상을 적절히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돌아이 총량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사무실의 도른자는 어디에도 있다. 그렇게 멀리 있지도 않다. 심지어 때로는 온화하고, 어떤 경우에는 배려의 모습까지 엿보인다. 하지만 그 모든 건 돌아이들의 큰 계획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어설프게 대응했다가는 깊은 상처를 입을 수 있기에 철저한 대응이 필요하다. 테사 교수는 ‘연쇄살인범 프로파일링’ 과정에 견주어 말한다. “그들이 무엇을 동력으로 행동하는지 알기 위해서 일단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가 봐야 한다”며 7가지 유형을 소개한다.
강약약강형은 정상에 오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유형이다. 사회지배 지향성이 뛰어나, 사내 정치에 능하다. 이런 유형은 순식간에 권력 우위에 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 성과 도둑은 양의 탈을 쓴 늑대다. 좋은 동료처럼 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뒤통수를 친다.
불도저는 유일하게 겉과 속이 같은 경우다. 굳이 자기 행동을 포장하지 않는다. 대개 인맥이 넓고 경력이 풍부한 경우로, 공포와 겁박을 활용해 상사들을 무력화하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가 맡기를 꺼리는 일을 자청해 조직 내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도 한다. 어찌됐든 자기식대로 밀고나가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한다.
무임승차형은 말 그대로 일하지 않고 보상을 얻으려 한다. 허울만 좋고 노력이 거의 들지 않는 일을 귀신같이 찾아낸다. 직원의 모든 것을 컨트롤하려는 통제광, 아무리 검토와 승인을 요청해도 묵묵부답인 불성실한 상사, 툭하면 거짓말로 나를 설득하려 드는 가스라이팅형이다. 유형의 이름만 들어도 주변의 도른자가 하나 둘 떠오를 텐데 테사 교수가 다양한 사례를 덧붙인 덕분에 더욱 선명하게 그들이 어떻게 도른자들인지 피부로 체감할 수 있다.
도른자에 대해 진심인 이 연구의 최종목표는 그들을 비웃고 손가락질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인간의 어떠한 본성이 그들을 도른자로 만드는지에 대한 집요한 추적이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강력한 경고이다. 다만 추적과 경고는 주로 논문처럼 노잼일 때가 많아 읽기 곤욕인데, 이 책은 능청스러운 저자와 재기 넘치는 번역가가 만나면 연구 보고서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혹시 내가 몸담은 조직에는 도른자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 또는 본인이 도른자인걸 인지하는 못하는 사람을 위해 책 말미에 돌아이 테스트를 첨부했다.
명쾌한 대응법을 파악한 다음 나는 어이없게도 건설적인 결론을 내려버렸다. 우리는 누구나 사무실의 도른자가 될 수 있고, 몇 가지 페르소나를 동시에 지닌 ‘멀티 도른자’가 될 수 있다. 지난 상사들과 동료들 얼굴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컨펌을 차일피일 미루며 불성실한 상사 유형에 가깝던 선배는 어쩌면 완벽주의자가 아니었을까. 내가 그 선배의 위치에 있었다면 반면교사 앞에서 떳떳할 수 있을까.
일은 너무나 중요하다. 월급이라는 보상 외에도 환희와 환멸을 오가며 자기존재 증명 이상의 증표가 된다. 모로 가든 성과가 가장 중요한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도른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와중에 희망이라면 오늘날 사람들 사이에서 관리자의 유형이나 능력에 대한 담론이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CEO의 우매한 댓글 하나에 주가를 널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도른자는 대중에 의해 심판받는다.
돌아이 백과사전처럼 읽히기도 하고, 돌아이 공략집 같기도 한 이 책을 읽고 최소한 이 터널을 정면 돌파하고 싶은 용기가 생겼다. 오늘도 도른자를 피해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오르는 수고를 하는 누군가에게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