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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May 02. 2024

활활발발



 


끝내주게 명쾌하고 웃기고 섹시한 글을 쓰는 작가를 보면 질투가 난다. 그리고 궁금하다. 어디서 어떻게 배웠기에 이렇게 글을 잘 쓸까. 최근 <활활발발>을 읽고 책을 읽기를 넘어 나도 글을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열망을 느끼게 됐다. 젊은 작가들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김현아 작가가 어딘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지켜온 글방과 글쓰기에 대해 쓴 책이다.   


양다솔, 이길보라, 이다울, 이슬아, 하미나 등 주목받는 1990년대생 작가들은 모두 10대와 20대 어디쯤에서 ‘어딘 글방’을 거쳐 갔다. 매주 각자 글을 들고 이곳에 모여 서로의 글을 꼼꼼하게 비평했다. 작가들은 그곳에서 태어나거나 거듭났다. 작가가 되기 전인 이들이 서로 신랄한 평가를 주고받고, 좋은 글이 무엇일지 탐구하는 그 한가운데 스승 어딘이 있었다. 어딘은 글쓰기를 통해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에 질문을 던지는 법을 가르쳤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글쓰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내 생각을 어떻게 잘 표현해야 할지 어렵고, 너무 솔직하게 적나라하게 드러낸 글은 마치 발가벗은 듯 부끄럽다. 컴퓨터 앞에서 끙끙대다 결국 단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밤을 새기 일쑤다. 그런데 다행인 점은 나만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어딘 작가는 누구나 보편적인 감정이라고 다독인다.  


글쓰기는 재능이나 성실함보다도 용기에서 비롯된다. 어딘 작가는 어디까지 쓸지, 세상과 나를 어디까지 들여다볼지 고민한 뒤 누군가 용기를 내 글을 쓰면 글방이 ‘활활발발’해졌다고 말한다. 그 순간은 바로 글방에 나온 어떤 글이 금기를 넘어설 때였다. 모두의 마음 밑바닥에 있지만 차마 쓰지 않는, 쓰지 못하는 이야기들. 누군가 그중에 어떤 것을 건드렸을 때, 게다가 그 글이 너무 재미있고 잘 썼을 때, 오도도 소름이 돋는다. 저렇게까지 써도 되는 건가, 여기는 이런 글 막 써도 안전한 곳인가 반문하면서 안도감을 느낀다. 그다음 주부터 글방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저마다의 완고한 생각에 균열이 찾아오고, 그렇게 조금씩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게 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이렇게 누군가 발신하면 누군가 뜨겁게 응답하며 작가들은 자라났다. 세상에 없던 것들을 만들어냈다. 합평의 과정은 각자의 뇌 속에 있는 뉴런이 이야기의 다리를 타고 다른 사람의 뉴런으로 전달되고 번지고 옮아 붙고 교잡하는 시간이었다. 글방 키잡이이자 스승인 어딘은 글의 바다 속에서 이들을 이끌기도 하고, 이들이 쓰는 문장에 스스로 이끌리기도 했다. 


세상이 나를 괴롭힐 때, 상처는 글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얼마나 행운인가. 어딘 작가는 글을 쓰면 누추하고 남루할 줄 알았던 내 존재가 다른 수많은 별들과 함께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는 걸 목격할 수 있다고 했다. 상처받은 이에게 글을 쓰라고 이야기하는 건 무정하면서도 다정한 일이다. 


맛있는 밥상을 차릴 줄 아는 사람이 반드시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닐 테다. 내 입에 맛있는 건 다른 사람 입에도 맛있다는 걸 안다고 잘 팔리는 책을 쓰는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닐 테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나임을 안다고 해서 감동적인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닐 테다. 입맛 좋은 소녀들은 어쩌다 나를 만나 밥과 글이 동등하다는 잔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을 뿐이다. - p.82 


세상 모든 일이 결국 글을 쓰는 능력으로 판가름 난다.  대학교수가 되면 논문을 써야 한다. 회사에 가면 보고서, 제안서를 써야 한다.  심지어  치킨 집을 열더라도 전단지 한 장에 홍보 문구를 잘 뽑아야 장사가 잘 된다. 편지로 사랑을 속삭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연애에 성공하려면 연애편지를 잘 써야 했다. 이런 이유로 소규모 글쓰기 모임인 ‘글방’이 유행이다. 곳곳에서 다양한 색깔과 형식을 가진 글방들이 생기고 있다. 귀찮고 위험하기까지 한 쓰기에 우리는 왜 열중할까. 자신이 쓴 글이 어떤 식으로든 내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글쓰기를 통해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에 질문을 던지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활활발발>은 아직 작가라는 이름을 달지 않은 젊은이들이 쓴 끝내주게 멋진 글들이 많이 나온다. 글도 대단하지만 이렇게 뜨겁게 글을 쓰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어딘 글방은 일주일에 한 번, 한 편의 글의 무게를 기꺼이 함께 견디고 싶은 이들이 만들어내는 시공간이다. 누군가 고군분투 써내는 글이 때로는 위안으로 때로는 격려로 환원되어 건네진다.  


어딘 작가는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이지만 글방의 젊은이들과 격의 없이 우정을 나눈다. 이들과 함께 글을 쓰고 밥을 먹고 여행을 한다. 글방 멤버 중에는 중학생도 있고 장애인도 있고 게이도 있다. 어딘 작가는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으며,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평등하고 가치 있다고 얘기한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는 일주일에 한 편씩 한 번도 빠지지 않고 3년 동안 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문현답이다. '정직하고 용감하게, 그리고 꾸준히'를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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