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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Apr 30. 2024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


 


청춘은 아름답다. 젊음 특유의 싱그러움이 있다. 다만 그 시절에는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문구는 코앞의 1% 이익을 좇는 트레이더가 아니라 자신의 열정에 가능성을 묻고 우직하게 기다리는 투자를 하라는 희망의 메시지다. 하지만 불안한 미래와 외로운 청춘을 보내고 있는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이런 공허한 위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같은 처지의 청춘이 전하는 덤덤한 자기 고백이 더 와 닿지 않을까. 


정지향의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를 읽으면서 그 시절의 내가 떠올라 문득 울적해졌다. 어떤 시간도 소유하지 못하고, 어떤 공간에도 머무르지 못하고, 먼지처럼 부유하는 내 모습을 마주한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소설은 허공에 대고 하소연하듯 중얼거리는 말투로 시작한다. 주인공 나는 지방 대학에서 소설을 공부한다. 수많은 쓸모없는 주제의 동아리 중에서도 가장 쓸모없는 걸 하는 동아리에 가입했다.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동아리 선배 요조와 같이 산다.  


곧 서울로 캠퍼스를 이전하는 지방 대학가를 이들은 고아의 도시라고 부른다. 고아의 도시는 새벽이면 골목을 돌며 아이들이 내놓은 술병을 주워 모으던 할아버지들이 사라지고, 학사주점과 당구장, 노래방도 문을 닫고, 편의점들만 방공호처럼 덩그러니 남아 24시간 내내 불을 밝히는 공간이다. 창문이 모두 닫혀 있어서 아무도 살지 않는, 버려진 동네처럼 보이지만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기타를 치고, 책을 읽고 있는 '남아 있는 삶'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들은 학생들이 빠져나간 자취촌에서 건조하게 살아간다. 그 일상에 민영이 불쑥 등장한다. 민영은 18살에 여행을 시작해 4년째 세계를 떠돌며 누군가의 소파를 빌려 생활하는 카우치 서퍼이다. 나는 내어줄 소파 하나 없는 방에 살고 있지만 “소파를 내어줄 수 있느냐”는 민영의 물음에 흔쾌히 응답한다. 요조는 투덜거린다. 이 투덜거림에 나는 민영이 관광객이 아니라 여행자이고, 자기의 친구라고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그전에 자신이 살고 있는 방을 둘러본다. 그리고 지방 대학가의 보증금 500에 35만 원짜리 자취방이라고 하면 누구라도 정확하게 그 풍경을 떠올릴 수 있으니까. 그런 방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건 오히려 무례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읊조린다. 


나는 학기가 끝나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자취집에 남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한다. 주인공 나는 이 길이 과연 맞는지 끊임없이 반문하며 글쓰기 같은 건 빨리 때려치우고 토익학원이라도 다녀야 하는 건 아닌지, 재수를 해서 더 좋은 대학에 가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한다. 그렇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뭔가 정상적인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요조도 마찬가지로 부모님과 소원하다. 입양아 민영은 양부모의 이혼으로 강제 독립을 하게 됐다. 서로 닮은 듯 다른 세 명의 청춘이 사회로 진입을 꿈꾸며, 또 동시에 회피하며 청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세 명이 함께 보내는 동안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민영이 오면서 방송사 PD 시험을 준비하는 요조가 자신의 고시원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그래도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거리를 걸을 때는 늘 함께이다. 쓸쓸한 대학가를 담백하게 보여주거나 일상을 나열한 것이 전부이지만 청춘 특유의 불안감이 느껴진다. 그 안에서 묘하게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나만 한심한 존재는 아니라는 안도감도 엿보인다.  


이 소설은 정지향 작가가 대학생 때 쓴 글이다. 실제 청춘인 작가가 본인과 친구들의 풍경을 그렸기에 세 사람의 고민과 갈등, 혼란은 낯설지 않다. 하나의 정답, 하나의 방향이 존재할 수 없는 청춘들의 고민이 고스란히 엿보인다.  


나는 어쩌면 그전까지 민영이 언제까지나 소파를 옮겨 다니면서 지내기를 원했는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것 같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그 애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무척 지쳐 있었어. 나는 민영의 입장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 씩씩하게 보이는 그 애에게 일방적으로 이해받고 싶었던 거야. - p.85 


‘표류기’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으로 진입하는 과정을 담은 성장소설이다. 전형적인 성장소설의 패턴을 인용하면서도 살짝 비트는 방식이 이 소설의 재미를 더한다.

  

청춘은 영원하지 않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듯 그 시절도 끝이 있다. 결국 셋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자신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안고 살아갈 것이다. 낯선 풍경이 불러올 새로운 일들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공존하듯 인생도 늘 설렘과 두려움이 동반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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