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만든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더 인플루언서’에는 스스로 최고라고 자부하는 대한민국 인플루언서 77인이 나온다. 여행컨텐츠를 제작하는 빠니보틀은 “팔 수 있는 모든 걸 팔아야 한다”고 말했고, 아프리카TV에서 활동하는 방송인 창현은 “벗으라면 벗고 짖으라면 짖겠다”고 게임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자신의 모든 것을 셀링(selling)하는 인물로 스스로를 정체화한 셈이다.
사전적 정의로 인플루언서(influencer)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뜻하지만 오늘날에 와서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한 ‘팔이피플’ 등으로 격하되기도 한다. ‘더 인플루언서’의 세계관은 그들을 ‘팔이피플’ 또는 ‘어그로꾼’이라는 멸칭의 세계로 추동한다.
영국의 트렌드 분석가 올리비아 얄롭이 몇 년에 걸쳐 취재하고 탐사보도 하듯 파헤친 책 <인플루언서 탐구>를 보면 우리 주변에서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은 사전적 정의 그 이상이다. 알고리즘에 의해 선택받은 영상 하나로 인해 폐업 위기에 처한 회사가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반대로 인플루언서의 악평 한 줄은 가게 하나를 문닫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런 영향력을 손에 얻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오늘도 더 많은 구독자, 팔로어를 얻고 유명해지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다. 삶을 매분매초 촬영해 브이로그 영상을 만들고, 24시간 내내 카메라에 찍혀야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악플을 감수하며 출연한다.
교황은 팔로워가 거의 1,900만 명에 이르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 @Pontifex 에 동정 마리아를 최초의 인플루언서로 선포하는 트윗을 올려 바이럴을 탔다. '사회적 네트워크도 없이 그분은 최초의 인플루언서가 되셨습니다. 하느님의 인플루언서요.' - p. 94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최고 소득을 올리고 있는 인플루언서 카일리 제너는 게시글 하나당 120만 달러를 받는다. 틱톡 스타들은 패션위크 맨 앞줄을 차지하고 할리우드 영화 배역을 따낸다. 이쯤 되면 ‘나도 한번?’ 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샘솟는다.
올리비아 얄롭은 곧바로 상상을 실천에 옮겼다. 성공한 인플루언서가 되려면 어떤 기술이나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알아보기 위해 그는 소셜 미디어 예비 스타 세대를 위한 1주일짜리 인플루언서 훈련 캠프에 참가한다. 작가가 참여한 프로그램은 유튜버 게이머 지망생 코스. 현재 유튜브 최대 채널 다섯 개 중 두 개가 게이밍 채널이다. 매일 20억 명 이상이 게이밍 영상을 볼 정도로 뜨거운 시장이다. 캠프에 참가한 청소년들은 전업으로 마인 크래프트 플레이어가 되겠다는 간절한 꿈을 품고 있다. 강의는 입으로 말할 때 좋게 들려야 하고 글로 적을 때 좋아보여야 하고, 구글에 검색할 수 있는 채널명을 정하는 법부터 가르친다. 유튜브의 수익 창출 알고리즘, 팬들과 관계를 맺는 법, 안티들을 다루는 법도 훈련한다.
배운 대로 작가는 뷰티 브랜드 전략을 개발하고 브이로그를 촬영한다. 런던에서 잘나가는 인플루언서 전담 사진가의 도움을 받아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영상은 한 차례 바이럴을 타고 반짝 조회수가 늘기도 했지만 결국 파워 인플루언서가 되는 데는 실패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소셜 미디어 공간의 지배자가 되겠다는 꿈은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좇는 일임을 확인하게 된다. 인플루언서는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것”, 즉 시대가 요구한 스타들이기 때문이다.
초창기 기업 광고가 유명 TV 스타들과 스폰서십 모델 계약을 맺고 기업과 공생을 시작했다면 현재는 각자도생의 길을 걷는 중이다. 비교적 희박한 규제를 등에 업고 거침없이 활동 범위를 넓힌 인플루언서들은 기업들이 위기를 맞은 순간에도 영화, 스포츠, 음악, 패션, 정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오로지 팔로어들과의 관계만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제국을 세웠다.
소셜 미디어에서 알고리즘은 강력한 신과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전지전능하고 불가해하며, 그 신민들을 통치한다고 볼 수 있다.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인플루언서들은 모두 긱 노동자(gig worker)이다. 이쯤 되면 '심심한데 유튜브나 해볼까?'라는 소리가 쏙 들어간다.
책에서 소개하는 사례들을 읽다보면 SNS가 만든 멋진 신세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인플루언서 세계는 단순히 일상과 경험을 SNS에 올리는 행위가 아니라 정보가 퍼지고 권력이 축적되고 문화가 생산되는 방식의 근본적인 재구축이 벌어지는 곳이다.
어쨌거나 시대의 흐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 끝이 언제일지도 예측할 수 없다. 전통적인 미디어는 끝났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주말드라마 시간이 되면 거리가 한산했다는 옛말은 무색해졌고 종편도 이제 시들해진 상태다. 누구나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으로 세상 소식을 접한다. 거기다 쓰레드, 틱톡까지. 앞으로 어떤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