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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니를 찾아서

by 끌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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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문학에 관심이 많다. 태어난 나라를 떠나 저마다의 이유로 타국에 정착하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 디아스포라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나를 포함한 이웃 이민자들은 어떤 애환이 있는지 알게 되고, 미처 몰랐던 면면들을 간접 경험하면서 나 역시 많이 배운다.


<김주니를 찾아서>는 한국계 미국인 중학생 김주니의 이야기다. 미국으로 이민와 정착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 이후로 쭉 미국 매릴랜드에 살고 있는 3세대다. 주니는 7학년, 한국으로 치자면 중학교 1학년 학생이다. 조용한 동양인 여자아이인 주니는 스쿨버스에서 유일한 동양인 학생이다. 매일 스쿨버스에서 '개고기 먹는 애', '공산당'이라는 말을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듣는다.


하지만 주니는 피하는 쪽을 택한다. 많은 한국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참아, 견뎌, 이겨 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언젠간 지나갈 거라고 믿으면서.


그런 와중에 학교에 큰 사건이 일어난다. 누군가가 체육관 벽에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인종 차별적 욕설을 적은 사건이다. 교장 선생님이 전교 방송으로 심각성을 알렸고 경찰을 불렀다. 거기에는 동양계 학생들을 향한 욕도 있었다.


어느 날 주니는 학교 숙제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인터뷰하면서 한국전쟁 경험담을 듣게 된다. 주니와 같은 나이에 굳은 의지로 가족을 지켜낸 할머니, 자칫하면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친구를 도와 인민군이 도처에 숨어 있는 산을 뒤지고, 친구의 무고함을 알리기 위해 권력에 저항하려 애썼던 할아버지. 그러면서 만약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기다리거나, 외면했다면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떠올려 본다. 어떤 침묵은 가해자에게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주니는 이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을 준비한다. 침묵이 아닌 목소리를 내리라 다짐한 것이다.

주니가 정작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는 할아버지였다. 지금 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 상의한다. 애써봤자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주니의 말에 할아버지는 침묵은 총이나 칼이 될 수 있다는 걸 항상 명심하라고 일러준다.


내 이름을 부르라고. 주니. 어려운 거 아니잖아. 우리를 그런 끔찍한 단어로 부르지 말고 같은 사람으로 보라고. 내 이름은 공산당이나 짱깨, 개고기 먹는 사람이나 북한 간첩이 아니야. 내 이름은 주니야. - p.412


이 소설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 엘렌 오(Ellen Oh)의 인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작가 역시 이민 3세대이며 소설 속에 어머니와 이모, 아버지의 경험담을 녹여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한국에 방문해 작품에 등장하는 이화여대와 서울 곳곳을 견학했고, 전쟁기념관 큐레이터, 역사학 교수 등을 만나 인터뷰했다.


실제로 작가는 ‘위 니드 다이버스 북스(We Need Diverse Books)’라는 비영리 단체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름 그대로, 엘렌 오 작가는 미국 학생들이 다양한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읽을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작가의 문제의식은 책 속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책에 나오는 단어와 차별 사례는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보는 내내 숨이 턱턱 막힌다. 매일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언어폭력도 그렇고, 같이 떠들고 비웃을 줄이나 알지 누구도 나쁜 행동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점이 그렇다.


소설 에필로그를 보면 주니가 한국에 와서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줬던 할아버지를 떠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동안 겪었던 마음고생이 하루아침에 쉽게 치유되지는 않을 것이다. 상처가 깊은 곳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흉이 남듯이. 하지만 주니는 더 이상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다. 똑바로 쳐다보고 치료할 것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나도 모르게 가족들이 떠오른다. 나에게 힘이 되어줄 영원한 내편이라는 인식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다. 나도 주니와 발맞춰 하루하루 보람차게 살며 힘들 때는 가족들을 떠올리리라 다짐해본다. 부디 앞으로는 주니가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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