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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독서 클럽

by 끌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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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많이 읽어라!” 어렸을 때부터 수 없이 많이 들은 말이다. 정작 왜 읽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얼마 전 책의 위대함을 새삼 깨우칠 계기가 있었다. 사회적으로 큰 부와 명예를 가진 명사를 인터뷰 할 기회가 있었다. 미국으로 이민 온지 40년이 훌쩍 넘은 어르신이다. 그런데도 한국어와 영어를 완벽하게 분리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교포들이 흔히 쓰는 “나 오늘 너무 타이어드해. 칠 타임이 필요해” 같은 국적불문 문장을 쓰지 않았다.


대화 내내 어르신은 언어 능력과 표현력이 상당히 뛰어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일주일에 한권 이상 책을 꾸준히 읽는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어휘력이 늘어나 더 정확하고 세련된 표현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글을 읽고 쓰는 능력뿐만 아니라 말하는 능력도 좋다. 그리고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은 독서를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자신을 성장시키는 가장 강력한 도구로 쓰고 있었다.


중년의 글읽기는 청소년 시절 독서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길잡이가 되어줄 책이 있다. 김학서 작가의 <질문하는 독서 클럽>이다. 중장년층은 기본적으로 외롭다. 누군가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가족, 친구, 동료가 늘 곁에 있어도 외로운 이유는 곁에 누군가 있기는 하지만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작가가 제안하는 독서 모임은 이렇다. 우선 책의 내용을 질문지로 만든다. 사람들이 마음속 이야기를 끌어낼 도구로 책속 구절을 활용한다. 책을 매개로 하지만 도서 구입이나 완독 부담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모임이다.


핵심은 이야기하기, 힐링, 그리고 들어주기이다. 인간의 원초적인 발화 본능을 일깨워 자신을 스스럼없이 꺼내 펼친다. 독서 모임 참가자들은 자기의 경험이나 감정을 말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치유 받는다고 말한다. 함께하는 사람들 사이에 서로 들어줌, 즉 진지한 경청이 있기에 가능하다.


여기에는 서로 지켜야 할 간단한 규칙이 있다. 바로 ‘3, 2, X’다. 자기 이야기는 3분 동안만 할 수 있다. 그리고 한 사람당 두 번의 발언 기회가 있다. 타인의 이야기에 부정적인 논쟁은 금지한다. 3분짜리 모래시계로 시간을 재서 모래가 다 떨어지면 가차 없이 말을 멈춘다.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으나 방법을 몰라 답답하다면 독서 클럽에 들어가 보자. 어떤 책의 한 구절을 바탕으로 만든 질문지는 파급효과가 대단하다. 평소에 생각지도 않았던 기억이나 경험들이 마구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얘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자존감을 느끼는 것이다.


보통의 중장년은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나 책을 읽는 건 부담스러워한다. 눈이 침침하다, 책을 구하기 어렵다, 읽을 시간이 없다 등 나름의 이유가 있다. 모든 핑계 접어두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읽어보기를 권한다.


철학과 수필이 좋겠다. 철학이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중장년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나침반 역할을 한 가르침들이다. 그렇다면 이 철학서를 갖고 이야기할 거리는 무궁무진하다. 수필은 작가의 현실 체험기를 고스란히 담은 책이 아니던가. 중장년은 어느 세대보다 치열하게 살았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차례로 맛봤을 가능성이 크기에 더 공감이 갈 것이다.


영화마저도 유튜브에서 주요 장면 요약본으로 보는 이가 많은 시대이다. 바쁘고 고단한 시대에 책 한권을 통째로 읽고, 거기에 더해 누군가와 모여 질문지까지 만들어가며 토론을 한다고 하면 대단히 비효율적인 행위로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과정이 주는 기쁨과 성취는 결코 비효율적이지 않다. 내 또래의 타인은 같은 책을 읽고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책 속에서 내 삶과 연결 지을 고리가 생겨나는 게 신기하지 않은가. 책을 읽고 난 뒤 세상을 더 넓게 보고, 다양한 관점을 가진 나를 발견하는 재미를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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