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러메노피에서 사이렌까지: 럭셔리한 위선의 계보
평범한 화요일 밤이었다. 늘 그렇듯이 스르르 잠들기 위한 의식으로 리모컨을 눌렀다. 누구나 그렇듯 잠들기 전 넷플릭스는 백색소음 역할이다. 그러다가 알고리즘이 추천한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데본은 시몬이 수상하고 섬뜩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카엘라의 화려한 삶은 시몬에게 마치 중독성 강한 마약과 같다.”
호기심에 눌러본 드라마 <사이렌이 노래할 때, Sirens>이다. 처음에는 미국식 막장드라마로 치부했다. 1회를 마치자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이야기는 단순한 생존 게임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 특히 미국 상류사회의 구조와 욕망을 거울처럼 비춘다. 이 칼럼은 드라마에 내포된 상징과 비유를 원작 희곡과 비교해 열어보고자 한다. 페이지를 넘기듯, 한 장면씩 되짚으며 말이다.
드라마는 몰리 스미스 멧즐러(Molly Smith Metzler)의 2011년 희곡 <Elemeno Pea>를 원작으로 한다. 모두 기본 설정은 같다. 데번은 동생 시몬을 찾으러 섬을 들어온다. 대대손손 부유한 올드머니 집안인 피터 켈 가족이 여름휴가를 보내는 개인 섬이다. 시몬은 피터의 두 번째 부인 키키의 개인 비서로 일하는데 관계가 묘하다. 고용주과 노동자의 사이를 넘어 엄마처럼 의지하기도 하고 자매처럼 감정을 나누기도 한다. 이 저택은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어쩐지 분위기가 괴기하다. 섬은 거대한 키키공화국처럼 운영되고 있는데, 엄격한 규칙과 감시, 통제로 이뤄진다. 피터와 키키에 대한 사람들의 추앙은 거의 종교와 같다. 여기서 데번은 시몬을 구출하려 하는데....
구성을 같게 유지하면서 제목을 바꾼 이유는 뭘까? 드라마 제목 사이렌(Sirens)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차용했다. 상체는 인간, 하체는 새의 모습을 한 채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을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존재다. 위험한 유혹과 파멸의 상징이다.
이 상징은 상류층 여성들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타인을 조종하고 통제하는 방식과 겹친다. 동시에 보는 사람들도 어느새 매혹적이지만 불편한 시선을 느끼게 되는데, 그들이 입고 있는 원색 옷과 보석을 나도 소비하고 싶다는 욕망과 계급 모방 욕구를 느끼게 된다.
원작 희곡 제목 <Elemeno Pea>는 실제로 존재하는 단어가 아니라 영어 알파벳 L, M, N, O, P를 빠르게 읽을 때 나는 소리 엘러메노피이다. 유머와 풍자를 뜻하는 말장난이기도 하다. 희곡은 애초에 제목부터 고고한 상류사회 사람들의 원초적인 추함을 비꼬고 있다.
원작은 마사스 빈야드의 한 저택 내부에서 대부분의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드라마는 가상의 섬인 포트 헤이븐 전체를 무대로 설정하여 더 폭넓은 위계구조를 보여준다.
드라마 전반에 백인 상류사회 이중성을 풍자하는 코드가 세련되게 흐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눈이 부시게 쨍한 형광색 의상과 동화 속 궁전 같이 묘사되는 미장센이다. 이것은 단순한 미학이 아닌 계급을 상징한다. 명품 브랜드, 채도 높은 발광 컬러, 고급 액세서리는 권력을 상징하는 갑옷과도 같다. 이 갑옷은 부를 나타냄과 동시에 캐릭터들의 불안정한 정체성과 끊임없는 비교의식을 감추는 장치이기도 하다.
시몬은 백인이지만 버팔로 빈민촌 출신 가난뱅이다. 재미있는 점은 키키 역시 그곳 출신 하층민이었다. 올드머니 백만장자와 결혼해 신분 상승한 여왕님이다. 두 여자 모두 명문대 로스쿨 출신 똑순이지만 결국 혼자 힘으로는 성공하지 못하고 남자 등에 업혀 계급을 사는 방법을 택한다. 물론 돈으로 산건 아니고 젊음과 매력으로 산다.
시몬은 키키에게 나터켓 바구니 목걸이(Nantucket basket necklace)를 선물 받고 황송해하며 눈가가 촉촉해지기까지 한다. 여기에도 큰 상징이 숨어있는데, 이 목걸이는 매사추세츠주 마샤스 빈야드 지역 상류층 사이에서 지위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이 목걸이를 준다는 뜻은 우리 소속으로 인정한다는 허락의 의미이다. 상류층의 배타성과 권력 구조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소재이자 사이렌 제목에 걸맞은 유혹과 파멸의 이미지를 강조한다.
시몬은 섬에서 쫓겨날 뻔 하다가 자발적 속박을 택한다. 키키 자리로 일종의 승진을 이룬 셈이다. 하층민 계급 해방인지 또 다른 감금인지 모호하다. 권력 구조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피터의 세 번째 부인이 되어 내가 이 판을 조종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드라마는 끝난다. 시몬은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지만, 결국 누군가를 다시 새로운 시몬으로 맞이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자기 생존을 위한 복제와 흡수가 반복되는 구조를 드러내면서 사회적 위선에 대한 풍자를 마무리한다.
드라마 <사이렌이 노래할 때>는 <Elemeno Pea>를 기반으로 하되, 단순한 각색을 넘어 현대 사회의 계급 구조와 여성의 역할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작품이다. 마치 한 편의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좋은 학교를 나와서 좋은 직장에 다닌다한들 타고난 계급은 뛰어넘을 수 없으며, 상류층 남자들에게 여자는 시간이 지나면 언제든 갈아치워질 수 있는 대체 가능한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점을 씁쓸하게 드러낸다.
웃기지만 웃고 나면 찝찝하고 아프게 남는 것이 바로 이 드라마가 의도한 풍자의 본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