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얼데이 연휴가 시작됐다. 달력에 표시된 빨간 날의 다른 이름은 '돈쓰기 좋은 날'이다. 이 시기에 맞춰 리테일러들이 일제히 큰 세일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매트리스를 바꾸려고 일 년째 별렀다. 새 매트리스를 사는데 천불이 훌쩍 넘는 큰돈이 들었지만 크게 속쓰림은 없다. 아깝다는 생각보다 핫딜을 잘 잡아 현명하게 소비했다는 자부심이 더 크다. 지갑이 얇아지는 고통이 어찌하여 뿌듯한 쾌감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 그 비밀을 풀어보자.
신경마케팅 분야의 권위자인 한스 게오르크 호이젤 박사는 <뇌,욕망의 비밀을 풀다>에서 '무의식이 인간의 경제활동을 어떻게 조종할까?’라는 의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의 결정 중 약 70~80%는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며, 의식적인 결정조차도 감정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주장한다.
호이젤 박사는 소비자의 감정과 동기를 이해하는 신경마케팅 모델 ‘림빅R맵’을 소개한다. 인간의 3가지 욕구, 즉 안전·도전·권력에 대한 욕구가 서로 충돌하고 타협하면서 경제활동을 자극하고 통제한다. 책은 림빅R맵을 통해 소비자 성격을 7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각각의 구매 결정 요소를 분석한다.
소비시장에서 남성과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상품은 극명하게 갈린다. 여기에도 뇌와 호르몬이 작용한다.
최근 삼성전자가 내놓은 초슬림 '갤럭시 S25 엣지' 인기가 뜨겁다. 두께는 6㎜대로 스마트폰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초슬림 갤럭시 Z 폴드를 내놓았을 때는 품절 대란이 일어날 정도였다. 구매자를 분석한 결과 남성이 전체 90%로 압도적이었고 그중에서도 20~30대가 60%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왜 2030 남성은 갤럭시 엣지를 선호하는 것일까.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잘 이용한 마케팅 덕분이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의 공격성, 경쟁심, 성취욕, 리스크 감수 성향 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뇌의 지배 시스템과 자극 시스템을 활성화하여 경쟁과 모험을 추구하는 행동을 유도한다. 이것이 마케팅과 만나 남성 특유의 경쟁심, 정복욕을 자극한 결과다.
전체 교도소 수감자의 95퍼센트가 남성이고, 전체 노벨상 수상자의 95퍼센트가 남성이며, 세계에서 일어난 거의 모든 전쟁이 남성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포르쉐 구매자의 90퍼센트도 남성이다. 이 모든 현상에 대한 원인은 바로 테스토스테론이다. - p.169
뇌를 유혹하는 상품은 소비자가 이 상품을 동경하며, 이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믿을 정도로 뇌 속의 감정 시스템을 강하게 활성화한다. 스포츠카, 명품 가방, 디자이너 패션 제품, 최신형 스마트폰 등이 여기에 속한다.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가 감정 시스템을 긍정적으로 자극할수록, 그리고 이 자극에 강해질수록 상품 가치는 높아진다. 아이라이너는 연필보다 약 10배 정도 비싸다. 제조 단가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 애초에 비싸게 가격을 형성하는 이유는 사용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라이너는 '화장→예뻐짐→>섹시함'으로 연결돼 성욕 모듈을 활성화하지만 연필은 기껏해야 손가락을 활성화할 뿐이다. 이런 감정 시스템을 자극하니까 유명브랜드의 100불짜리 아이라이너도 팔릴만하다.
소비시장은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팔려는 판매자와 어떻게든 적은 지출로 최대한의 즐거움을 누리려는 소비자의 기싸움으로 돌아간다. 내가 물건을 살 때를 한번 생각해 본다. 가격 계산과 가치 계산을 동시에 한다. 이것을 삼으로서 쾌감을 얻느냐 고통을 얻느냐 머릿속으로 치열하게 싸운다. 그러니까 돈과 이별하는 소비자의 고통을 누가 누가 더 긍정 감정으로 잘 상쇄시키는가가 경쟁 포인트인 셈이다.
무한 경쟁의 풍랑 속에서 오늘도 우리는 끊임없이 돈을 쓴다. 과연 돈 값을 하는 합리적 지출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본인의 판단이다. 지친 하루에 숨결을 불어넣어준 가치 있는 커피 한 잔이 내일은 비싸빠진 검은 물로 전락할지 모를 일이다.